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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8

상 도밍고 성당

by 장재형

리스본 첫날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상 도밍고 성당’이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진도 9가 넘었다고 하며 커다란 해일이 도시를 덮치기도 했다. 마침 그 시간에 많은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고 한다. 순식간에 진노의 벌인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홍해가 갈라져 큰 물살이 하늘로 일어나듯 거대한 파도가 도시를 덮쳤다. 울음과 비명이 아름다운 도시를 울렸을까 상상하다가 그 소리를 낼 사람들 마저 없어진 비참한 침묵이 들렸다.


그때 살아남은 성당이 ‘상 도밍고 성당’이다. 기적의 성당. 이 성당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1959년 일어난 리스본 대화재 때도 이 성당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죽지 않았다. 1241년에 태어나 1536년에 다시 지어졌다는 이 성당은 5백 년 넘게 리스본에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행객의 줄을 따라 들어갔다. 의자에 모두 앉으면 3백 명 넘게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예배당이었다. 이 교회는 지진과 화재의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 당시 남은 흔적을 그대로 남겨뒀다.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앉아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보니 화려하지 않은 회색빛이 담담한 어조로 들떠있는 여행자의 마음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걸어가도 발소리가 바닥부터 벽을 타서 지붕에서 다시 내게 돌아왔다. 이 성당의 발걸음이 어땠는지 들어보라고 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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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은 천주교 신자가 90% 넘는다고 들었다. 어느 성당을 들어가도 예배당의 앞은 화려한 빛으로 신자를 압도하는 기분을 선사했다. 하지만 상 도밍고 성당은 다른 성당에 비해 화려함을 최소화했다. 그을음과 부서짐을 그대로 남겨뒀고, 동상이 있을 법한 자리가 비어 있는 곳도 있었다. 현대 조명도 더하지 않아 회색이 더 짙어 보였다.


신앙은 고통과 가까웠다. 고통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힘이다. 그렇게 이 성당은 건물 전체로 믿음과 도시와 부활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예배당 밖을 나와 조금 앞으로 가면 유대인 학살의 비극이 기록된 작은 비석이 있다. 포르투갈 역사에서도 유대인 학살이 있었는데 나치가 아니라 포르투갈 민족이 자행한 것이었다. 종교재판을 벌여 유대인을 죽였던 곳이 기적의 성당 앞이라는 아이러니.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그 피냄새를 맡으며 예배당에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러고 보니 이 성당의 벽에는 5백 년 넘게 수많은 사람들의 피비린내가 강바람을 타고 묻고 묻고 묻어 배겼을 것이다.


슬픔과 잘못은 잊기 쉽다. 그러나 상 도밍고 성당이 있었다. 리스본은 이렇게 잊지 않고 있었다.


아름다운 도시를 보다가 슬픔을 읽고 나니 이제 진짜 이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마냥 예쁜 사진만 찍고 돌아갔다면 리스본을 달력의 풍경 사진처럼 기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성당을 들어오고 나온 후로 역사 속 사람들의 비극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의 꿋꿋한 힘으로 리스본을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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