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서 걷는다는 것
리스본은 여러 언덕으로 이뤄진 도시라서 전망대라고 불리는 곳이 여럿 있다. 길을 따라서 생각 없이 가다 보면 흔하게 도시의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에 와있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전망대에 서있으면 넓은 하늘과 넓은 바다 같은 넓은 강, 언덕을 따라 계단처럼 층층이 있는 건물의 주황색 지붕들, 그리고 어떻게든 멋진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안 찍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여기 주민이거나 이제 사진을 찍을 만큼 찍어서 피곤해진 관광객일 것이다.
도시의 전망은 시각의 영역이 아니라 촉각의 영역이었다.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어도 구글에 검색해서 나오는 사진보다 멋진 사진을 갖기는 어려웠다. 다만 지금 눈에 와닿는 전망의 촉감은 잊기 어려운 찰나가 되었다. 아직 정오가 되지 않은 햇볕과 대서양부터 불어오는 것만 같은 담담하고 선선한 바람이 리스본의 오래된 건물에서 반사된 빛을 품고 내 눈에 닿았다. 아내가 사진을 덜 찍고 바라보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만 찍고 더 봤다. 눈의 촉감으로 기억된 풍경이었다.
다시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다가 영화<시네마 천국>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봤던 전후 이태리 시골 마을의 풍경이 묘하게 리스본 알파마 지역의 길과 겹쳤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반질반질해진 오돌토돌한 돌길과 질서 없이 두서없이 지어진 옛집들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노스탤지어를 자아냈다. 이것은 내가 막연히 품었던, 어딘가에서 한 번은 들어가 보고 싶었던, 영화 속 노스탤지어의 현실에 더 가까웠다.
리스본에서 이태리를 떠올린 건 로마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로마 시대의 영향 속에서 살고 있는 걸까. 지금의 유럽 여행은 현재까지 꾸준히 확장해 온 로마 문화를 경험하는 건 아닐까. 길에서 떠오르는 질문을 갖고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지나가던 할머니를 보았다. 그녀는 날 귀찮다는 듯 바라보고 고개를 숙이고 갈 길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이곳에서 평생을 산 사람의 눈에는 이 길이 어떻게 보일까. 질문이 하나 더 늘었다.
내게 리스본은 길로 기억에 남았다. 이 도시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길이다. 랜드마크를 보는 여행이 아니라 길을 즐기기 위해 간 곳이었다. 난 길을 계속 잃었고, 그렇게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까 왔던 곳을 다시 와도 재밌기만 했던 리스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