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타르트를 먹은 아침
서울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큰 리스본의 방에 홀로 누우니 잠이 더 오지 않았다. 에어비앤비로 잘 찾았다 생각이 들었지만, 여섯 명이 살던 집에서 살던 내가 혼자 있는 집으로 오니 방 안의 공기가 날 외면하며 잠을 뺏어간 것만 같았다.
해가 뜨는 걸 기다렸다가 러닝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해변가로 가서 뛰고 싶었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 포기했지만 새벽에 창가를 보니 날씨가 괜찮았다. 뉴스 덕분에 따로 운동할만한 옷을 챙기지 않아 활동하기 편한 청남방과 면바지를 입고 나갔다. 좁고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뛰어가니 거대한 물과 구름이 보였고 나는 그 결을 따라 바람을 맞으며 뛰기 시작했다.
목표는 3km였지만 뛰다가 둘러보고 뛰다가 둘러보다 그냥 1km에서 뛰는 걸 포기했다. 리스본의 아침 풍경을 처음 본 사람에게 이곳은 러닝에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다. 건물 유리문에 비친 나를 보니 러닝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급하게 출근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 사실 해변이 아니라 강가였다. 타구스강은 리스본 앞에 와서 강폭이 굉장히 넓어져 모두가 바다라고 생각하기 쉬울 정도다. 어쩐지 바다 특유의 짠내가 나지 않았다. 거대한 크루즈 선박이 입항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침의 푸른빛이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바다에서부터 온 갈매기들이 도시를 깨우듯 외치고 있었다.
길을 잃었다. 의도적으로 길을 잃었다. 그냥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었다가 그냥 걷다가 왼쪽으로 꺾었다. 여행 오기 전에 책에서 봤던 풍경이 약속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씩 나타나 인사를 건넸다.
에든버러 여행했을 때의 풍경과 살짝 겹치기도 했다. 아마도 둘 다 세계대전을 겪지 않고 현대적인 통유리로 된 건물이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가. 골목이 정리되지 않은 채 주머니에서 꼬여버린 이어폰 같은 길모양 같아서 그런가. 리스본의 길은 에든버러 보다 더 좁았고 온통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길이라는 게 달랐다. 미리 알고 왔음에도 직접 발로 밟아보니 오르락내리락하는 언덕길이 몸으로 느껴졌다. 아직은 그 길이 피곤하지 않고 마냥 재밌었다. 아직은.
아침을 뭘 먹을까 하다가 주민들이 대여섯 명 계산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베이커리 카페로 들어갔다. 첫 아침이라서 그랬나, 욕심을 부렸다. 리스본에서 태어난 에그타르트만 먹으려 했지만 포르투 와인이 섞인 크라상, 먹음직스럽게 컸던 소시지빵을 함께 시켰다. 카푸치노까지 곁들여서. 크라상은 생각보다 퍽퍽해서 놀랐고 소시지빵은 생각보다 흔한 동네 빵 같아서 놀랐다.
하지만, 오, 에그타르트, 에그타르트, 에그타르트.
에그타르트의 고향은 포르투갈. 그중에서도 리스본이다. 출국 전날 아내에게 하루에 에그타르트 두 개씩 먹는 호사를 누리겠다고 선언하고 왔다. 그리고 맛본 첫 에그타르트는, 처음 입에 닿을 때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속삭이며 들어와서는 감춰둔 부드러운 계란 크림을 혀에 쑥 내밀어 입 안에 에그타르트의 향을 가득 채운다. 오, 이거 맛있잖아! 하는 마음으로 한 입 깨문 에그타르트를 보면 남아 있는 반쪽에서는 노오란 향기가 봄처럼 반갑게 인사를 한다.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입의 쾌감이 더 급하여 어서 나머지도 먹고 만다. 반가워, 에그타르트.
포르투갈에서는 에그타르트를 에그타르트라고 부르지 않는다. 정확한 이름은 pastel de nata. pastel은 빵 반죽을 얇게 하고 그 안에 다른 음식을 넣고 굽거나 튀기는 요리의 대명사다. nata는 크림. 대충 ‘크림을 넣은 파이’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가게에서 ‘나타’라고 말하면 에그타르트를 준다. 메뉴명을 볼 때마다 ‘계란 크림으로 만든 파스텔화’라고 해석하고 싶어 진다.
강가에서 뛰었고, 길을 잃었고, 에그타르트를 먹었다. 리스본의 첫 시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