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 좋다는 말만 하면 앉아있을 필요 없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임원들이 모여서 보고할 때 경기가 안 좋다는 말만 하는 사람들이 꼭 있어. 그러면 거기 앉아있을 필요가 없는 거야. 경기 안 좋은 건 거기 앉은 사람 다 알아. 그거 해결하라고 앉혀 놓은 건데 경기 안 좋다는 말 해서 뭐해.
대안을 내야 돼. 어차피 문제는 다 알아. 거기서 대표가 모르는 얘기를 할 줄 알아야 해. 대표가 하는 얘기 또 해 봤자 대표는 쟤 말고 다른 애 누구 앉힐까 생각밖에 안 들어. 그때 다른 얘기 들고 가야지.
물론 잘 안될 수도 있어. 실패할 수도 있어. 그래도 맨날 똑같이 안 된다는 말 해서 뭐해. 그 자리에 앉아서 아무 말도 안 하는 사람들 수두룩해. 대안 얘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그러니까 임시직이 되는 거야.
부딪혀 봐야돼. 인생 뭐 별거 있냐. 그래야 다음 문제 생길 때 지난번에 의견 말했던 사람 찾는 거야. 늘 생각을 품고 언제든 꺼낼 준비를 하는 거야. 내 차례가 됐을 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라고 말해. 그게 더 신나는 인생 아니겠어.
아들은 들었다.
아들은 덕분에 시장 상황 얘기를 하지 않는 회사원이 되었다. 사고로, 병균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로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핑계를 대지 않았다. 그 대신에 다른 거 해보자고 말하는 약간 황당한 직장인이 되었다. (회사 영업이 중단됐을 때도 영업을 나가는 이상한 직원이었다)
그것이 아들이 회사에서 생존하는 법이었다. 늘 마음속에 대안들을 품고 다니려 했고, 침묵하지 않으려 했다. (말이 많다)
물론 어떤 의견도 피력하지 않은 편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때는 안정적이더라도 스스로 오래 갈 수 없다는 위험을 느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지혜와 함께 위기감을 심어준 것이다.
아들은 회의실에서 내 생각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늘 묻는다. 의사결정 타석에서 타율을 높이기 위한 꾸준한 훈련이다.
‘경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을 막을 수는 없다. 아들은 적어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걸로 침전의 마음이 더 커지지 않게 노력했다.
사실 거시적인 시장 상황이 어려우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건 아버지도 아들도 알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더 신나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덕분에 삶은 좀 더 힘들어졌고 좀 이상한 어른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래도 그것이 일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아들은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