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아내와 통화
혼자 하는 여행이다.
2달 후면 아내의 손을 처음 잡은 지 만으로 9년이다. 9년 동안 출장 같은 이유로 잠깐 떨어진 시간은 있었지만 이렇게 나의 일주일 넘는 여행으로 떨어진 건 처음이다. 아이들과 이렇게 떨어진 시간도 처음이었다. 낯선 곳에 오로지 나 혼자 서있는 것 자체가 아주 오랜만이었다.
여행지에서 온전히 나 혼자만 시간을 보냈던 건 대학 졸업 후 상해 여행을 갔을 때였다. 중국이 발전했다는 건 글과 사진으로만 알았지만 직접 그 현장을 가보고 싶었다. 일주일간 상해에 있으면서 외롭다는 생각보다 참 재밌다는 생각만 많이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외롭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 ‘내 가족’이 생겼고 ‘내 가족’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잘해주지도 못하면서, 지금 포르투갈에서는 단신으로 있으니 이제야 내 마음이 꽤 남루했는데 가족이 마음을 덮어줬다는 걸 알았다.
아내와 통화를 했다. 포르투갈에서 하는 첫 통화였다. 길을 걷다 흥미로워 보이는 식료품 시장에 들어갔고 거기서 과일, 치즈, 와인, 아이스크림, 햄, 굴, 그리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사이에서 아내와 통화를 했다.
하루에 말을 할 일이 별로 없다. 구글 덕분에 길을 물을 일도 없다. 식당에서는 메뉴에 손가락질하면 된다. 묵언수행처럼 계속 말을 하지 않으니 입술이 살짝 말라있는 걸 느낀다. 침묵에서 살다가 ‘여보세요’라고 말하고 ‘여보세요’를 들으니 숨이 탁 트인다.
그녀는 굳이 거기서까지 전화하지 말고 지금의 여행을 즐겨야 한다는 중요한 진리를 친절하고 따뜻하게 말했다. 하지만 좋은 곳에서 더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었다. 길지 않은 통화를 하며 다음 여행은 꼭 아내와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굳건히 새겼다. 리스본은 너무 언덕이 많으니 좀 더 평지인 곳으로.
포르투를 헤매며 걸었다. 여기서도 길을 잃으며 여행하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기 시작했고, 난 그제야 포르투의 도우루강에서 보는 유명한 노을 지는 장면을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내와 있었다면 난 그 노을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홀로 있는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걸었다. 길에 있는 나를 여행했다.
저녁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흔하게 먹는다는 정어리 통조림을 먹었다. 올리브유에 담긴 꽁치 통조림 같은 맛이었다. 한국 사람들 입맛에는 맞지 않다고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숙소에서 맛있게 먹었다. 꽤 좋은 시간이었다. 고양이는 아직도 나를 경계했지만.
ps.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편은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