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욕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날 욕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돼. 나랑 같이 일하는 거 쉽지 않다는 거 나도 알아. 내가 뭐 봐주면서 일했을 거 같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목표 보이면 달려가잖아. 먹잇감 보고 맹수처럼 달려가는데 다들 힘들지. 실컷 욕도 좀 해야 숨통도 트이는 거 아니겠어.
회식하면 얼른 일어나. 계산만 하면 돼. 거기 앉아서 어떻게 어울려봐야지 그런 생각할 필요 없어. 일어나면서 말해. 내 욕 잘해라.
욕 안 먹고 싶어 하면 아무것도 못 해. 그냥 욕먹을 생각 하면 일하기 편해. 어떻게 욕 안 먹을 수 있겠어. 다들 내 생각 같지 않아. 전부 다 다른 생각 하고 있어. 나부터 다른 사람 말하는 거 다 듣지 않잖아. 그런데 내 맘같이 다 일하길 바란다? 그건 어불성설이지.
누가 내 욕 하나 감시하고 다니는 사장들은 오래가지 못해. 그거 신경 쓰느라 제대로 사업을 못 해. 그런 사장들은 누가 좋은 말 해 주면 좋다고 신나서 들뜨지. 그러면 다들 좋은 말만 하고, 나중에는 누구도 진짜 중요한 말을 하지 않아. 그러다 망하는 거지. 간신은 왕이 만드는 거야.
아들은 들었다.
아들은 누구든 나를 욕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일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시작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도 없지 않았다.
인간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다. 아들도 인간이다. 그래서 그도 사랑받고 싶은 존재다.
아들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인정과 격려와 사소한 관심과 애정이 힘이 된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동시에 그 달콤함에 머물지 않으려 했다. 아들은 전략을 위하여 거절을 해야 했고, 반대를 해야 했고, 잔소리를 해야 했고, 듣기 싫은 말을 꺼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자신이 욕먹는 자리라는 걸 잊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은 아들을 더 냉정하게 만들어줬다.
날 좋아해 줄 거라는 기대가 없으니 사람에게 받는 실망도 작아질 수 있다. 섭섭함은 기대에서 온다. 바라지 않아야 할걸 굳이 바라니 서운해진다. 내 뒤에서 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임하면 작은 호감의 표현에도 감동할 수 있다. 일을 계속할 만한 감동이다.
욕먹을 수도 있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면 생각도 단순해진다. 감정이 섞이지 않고 결정의 속도가 더 빨라진다. 어떤 생각이 더 나은가만 생각하면 된다.
아들은 사람 좋아하는 사람이라 자꾸 아버지의 말과 어긋나게 같이 밥 먹는 자리에 더 오래 있으려 했다. 아들은 집에 오는 길에서야 오늘도 눈치 없이 있었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