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포르투
포르투에 비가 왔다. 아침에는 좀 부슬부슬 오다가 오후에는 한 번씩 비바람이 몰아치다가 잠시 잠잠하다가 다시 몰아치기가 반복되는 하루였다. 여행지에서 비는 그렇게 반가운 손님이 아니지만, 사실 포르투의 비에겐 내가 손님이었다. 10월부터 포르투는 우기가 서서히 시작된다. 나는 마침 그때 온 것일 뿐. 비가 말하길, 여기가 포르투라고.
늦잠을 잤다. 자다가 한번 살짝 깼지만 쭉 잤다. 여행 와서 처음으로 깊게 잤다. 이 집에는 포근함이라고 부르는 기운이 있었다. 돌로 된 우둘투둘한 벽 옆에 있는 침대는 푹신했다. 이불은 얇지만 보들보들한 강아지털 같은 느낌으로 나를 안아줬다. 늦게 일어난 내게 실망하거나 짜증이 나지 않는 아침이었다.
천천히 나와 우산을 쓰고 전에 구글맵에 체크해 놓은 베이커리 카페에 갔다. 큰 성당의 맞은편에 자리해서 노천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비가 조금 멈춰 구름이 자욱한 하늘 아래 성당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내가 주문한 건 카푸치노와 에그타르트.
혼자 앉은 테이블 맞은편 자리에 뜻밖의 손님이 내려와 앉았다. 비둘기였다. 비둘기는 담대하게 테이블 위까지 올라왔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손을 휘저으니 잠깐 물러갔다가 다시 왔다. 너무 뻔뻔하게 테이블 위에서 한 걸음씩 내게 다가오니 약간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혹은 그녀의, 눈은 나와 에그타르트와 카푸치노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아, 이 정도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내가 이길 수 없겠다 싶었다. 얼른 에그타르트를 먹고 카푸치노를 들이켜고 일어섰다.
길을 걷다가 괜찮아 보이는 가게는 무작정 들어갔다. 패션이나 소품 편집샵을 주로 갔는데 흥미로운 브랜드들이 많이 보여서 재밌었다. 포르투갈 혹은 스페인에서 시작한 브랜드가 여기저기 소개되고 있었다.
‘EMENTA’라는 포르투갈 친구들끼리 만든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가 좀 특별하게 보였다. 골덴으로 만든 가방과 자켓, 그리고 브랜드의 모토 ‘Moved by Friendship’이 인상적이었다. 전 세계 브랜드들이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생겨났다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또 어디선가 누군가 이렇게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차근차근 축적하면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들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참 흥미롭다.
바람 불고 쌀쌀한 날에는 미술관 구경하기 좋다. 다음 방문지는 ‘소아레스 두스 레이스 국립박물관’ (이름은 박물관이지만 미술관) 관광지의 유난스러움과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조용한 미술관에 들어오니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여전히 밖에 있었을 텐데 날씨가 안내한 여행길이었다.
포르투의 옛 모습을 그린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다. 땅과 강의 모양은 바뀌지 않았지만, 삶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손과 종이로 재생된 과거의 순간들을 보는 시간은 또다른 여행이었다. 그림이 더 아름다운 건 인간의 감정과 해석 덕분 아닐까.
조각상 중에 정치가 혹은 주교인 거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얼굴에 온갖 고민을 하는 자의 표정이 잘 살아있어서 한참을 봤다. 조각상들이 전시된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갔는데 거기서 내 얼굴을 보니 그 순간 주름이 거의 없어 보였다. 홀로 여행에서는 외로움의 대가로 진지함을 몸에서 덜어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미간이 평평했다. 다행이었다.
ps.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편은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