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조심해야 될 거 같아
5. 넌 화투 배우지 마라.
아버지는 말하셨다.
남자라면 잡기를 할 줄 알아야 해. 바둑, 장기, 이런 거 둘 줄 알아야지. 잡다한 거에 관심 갖고 알아야 해. 로마사도 알아야 하고, 무협소설도 읽어야 돼.
그런데 넌 화투 배우지 마라. 내가 봤을 때 너 성격에 화투 배우면 금방 빠질 거야. 그러면 하루 종일 화투패만 생각하지. 뭐 하나 꽂히면 빠지는 사람들이 도박에 위험해.
게다가 좀 잘해서 돈 좀 따면 그때부터 밤새는 거야. 안 그럴 거로 생각하고 시작해도 그렇게 돼. 그러다가 망하는 거 순식간이야.
너는 조심해야 해. 그러니까 화투 배우지 마라.
아들은 들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화투 배우지 말라는 말을 초등학생 때 들었다. 친구들은 집에서 화투 배워와서 수련회 같은 데 가면 어쭙잖게 화투를 치는데 아들은 구경만 하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빠지곤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아들은 패가망신이 더 두려웠다.
아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화투 칠 줄 모른다. 당연히 포커 같은 게임도 할 줄 모른다. 아버지의 말이 그만큼 크게 박혔고, 배울 시기를 지나니 관심도 없어졌다.
누군가 자기 약점을 알아봐 주는 건 행운이다. 아들은 꽂히면 확 몰입하는 성격이 없지 않다. 게다가 대담하게 확 승부를 보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갖고 있다.
바둑에서 차근차근 집을 쌓는 스타일이 아니라 적진에 확 들어가서 전투를 벌이는 걸 즐겼다. 승률이 낮아져도 제대로 싸움을 붙어야 바둑 두는 맛을 느꼈다.
아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에 자기 성격의 약점을 떠올린다. 혹시 도박처럼 승부를 보려는 건 아닌지, 혹시 너무 몰입된 나머지 다른 건 생각하지 않는지. 화투 배우지 말라는 말에서 배운 삶의 원칙이다.
아들이 아버지 나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젊을 때 화투와 포커에 빠졌던 자신을 아들에게 말해줬다. 퇴근하면 정신없이 쳤다고 했다. 그러다 돈 잃고 피폐해지니 손 떼셨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화투 배우지 말라고 했던 건, 자신의 유전자를 받은 아들에게 넘겨준 경고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