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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배운 일 7 : 모든 확률은 1:1

그러니까 떨지 마

by 장재형

7. 모든 확률은 1:1 이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떨지 마. 모든 확률은 일대일이야. 되냐, 안 되냐. 사느냐 죽느냐. 다 거기서 끝나.


여기저기서 경쟁률이 얼마다, 이거 확률이 얼마다 떠들어도, 그게 적용되는 건 집단이 아니라 한 명 개인이야. 그게 너지.


시험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야. 일에서도 그래. 사실 확률은 어찌 보면 무의미해. 그걸 그냥 하면 되는 거야. 안 될 일은 어떻게 해도 안 될 거고.


그러니까 떨지 마.


아들은 들었다.


아들은 걱정이 많은 학생이었다. 사소한 시험이라도 부정적인 결과를 어떻게 하면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인가를 걱정했다. 기껏해야 중간고사인데도 전날 손이 떨린 적도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됐지만 이 성격을 어떻게든 감추려 애썼다.


아들에게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경쟁률 숫자들을 들으며 그의 합격 확률을 생각했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대일 이론을 말했다. 그 순간 아들은 결정의 기준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에 흔들리지 않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미리 확률을 생각해 보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일대일이다. 되냐, 안 되냐, 사느냐 죽느냐.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건 소설을 쓸 때만 필요하고 의사결정에 있어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근거 없는 낙관으로만 사는 건 안 된다. 그러나 이미 비관적인 생각은 본능적으로 자동으로 떠오르기에 무조건적인 긍정은 아들의 삶에서 불가능하다.


아들은 가끔 의아한 도전을 해왔다. 걱정하는 말에는 대안을 말했고 비전과 명분으로 설득했다. 아무것도 안 해서 안 되는 것 보다 일대일 확률로 편하게 생각하고 덤볐다.


아들의 맘속에는 여전히 끊임없이 부정의 검은 개가 짖는다. 아버지의 일대일이 없었다면 더 크게 보이는 숫자에 무서워했을 것이다.


ps,

그런데, 사실, 아버지가 말한 의도를 확률로 표현할 때 ‘1:1’이 아니라 ‘1:2’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그래도 일대일 이라고 말하는 게 직관적으로 더 맞아서 그냥 그대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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