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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배운 일 8 : 회사 안의 통역

회에는 통역관이 필요하다

by 장재형

8. 회사에는 통역관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회의할 때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는데 과연 다 이해하고 나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거 같아? 사실 각자 자기 하고 싶은 말 하고 나올 때가 많아. 저 사람 말이 이해가 안 돼도 귀찮으니까 더 안 물어봐.


그래서 회사에는 통역관이 필요해.


우선 각자의 전문성이 다 달라. 그래서 관점도 용어도 달라. 그걸 한꺼번에 이해하고 쉽게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해.


각 팀의 사정뿐만 아니라 회사 전체 큰그림으로 볼 줄도 알아야 돼. 미시적인 것만 보는 사람과 거시적인 것만 보는 사람은 당연히 회사에 대한 이해가 차이가 나. 그렇다고 회사 전체적인 것만 강요해서는 실무가 안 돌아가지.


나는 예전부터 이런 게 좀 잘 됐던 거 같아. 듣고 있으면 ‘아, 이 사람이 무슨 말하는 거고, 뭐가 필요하구나’ 이런 게 빨리 캐치가 됐지. 그걸 내 식으로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아 그게 그 말이었군요’ 그랬어. 그게 강점이었지.


통역만 잘 돼도 일에 성과가 나와. 회사 대부분이 남의 말을 잘 듣지도 않고 관심도 없거든. 중간에 말로 잘 정리하고 잘 전달만 해도, 이상한 일로 싸우거나 불평 생기는 일이 없어져. 그거 잘한다고 월급 더 받는 건 아닌데 일이 돌아가려면 필요해.


아들은 들었다.


아들은 듣고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덕분에 일찍 알았다. 일을 하면서 잘 듣는 것만으로도 차별화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뾰족한 강점이 없던 아들은 진작에 이 일을 잘만 해도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한 지식이 점점 쌓이니 해석하는 능력도 조금씩 괜찮아졌다. 자연스럽게 통역하는 힘도 길러졌다. 특히 영업맨 시절 고객의 말과 회사의 말 중간에서 통역했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다. 사실 동료도 고객 아닌가.


가끔은 말 듣고 말 이해하고 말 전달하는 데 하루를 다 쓸 때도 있다. 아들은 자신의 업무를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까 고민됐지만, 그냥 이게 맞다고 생각해서, 그냥 꾸준히 부족하나마 통역의 일을 해왔다.


아들은 몇몇 후배들에게도 아버지와 같은 말을 한 적 있다. 이제는 말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통역은 개인 성과로 인정받을 수도 없고 이력에 쓸 수도 없는 일이다. 과업 정의에 사내 통역이 들어간 회사는 없다. 남 좋은 일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실속 없이 통역의 일을 계속해왔고, 앞으로도 어디 가서도 통역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피라는 게 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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