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24

재밌는 내 인생

by 장재형

내 인생 참 재밌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세 번째 숙소를 가는 길에 나온 말이었다. 늦은 밤이었고 처음 가는 길이었고 피곤하긴 했지만. 내 인생 참 재밌네. 그냥 툭. 하늘을 봤다가 새가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듯. 툭. 내 인생 참 재밌네.


리스본을 갔다가 포르투를 갔다가 다시 리스본에 돌아온 밤에 만난 세 번째 숙소는 욕실과 주방을 셰어하고 침실만 따로 쓰는 곳이었다. 방은 생각보다 넓어 좋았지만 침대가 낮고 글을 쓸 책상이 없어 좀 아쉬웠다. 건물 1층에 위치해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보였고 지나가는 사람도 내가 보였다. 커튼이 얇아서 나를 가릴 수 없었다. 암막 블라인드가 있는데 어떻게 해도 내려가지 않아 포기했다. 날 봐서 뭐 하나 싶기도 했고.


숙소 주인이 보낸 메시지에는 주변 맛집이 소개되어 있었다. 리스트를 좀 훑어보니 이건 ‘찐’이겠다 싶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포르투갈 음식을 판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괜히 가벼웠다.


말 그대로 포르투갈 식당이었다. 우선 들어가서 영어로 말하니 직원들이 당황하면서 누가 상대를 할지 서로에게 핑계를 댄다. 여행객이 안 온다는 뜻이었다.


9시가 넘었는데 꽤 넓은 식당 안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쪽에서는 생일 축하 저녁을 먹으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한 젊은 남자가 고깔모자를 쓴 채로 먹고 있길래 생일임을 알았다. 한쪽에서는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들이 술을 마시며 뭔가 심각하게 얘기하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두 남자는 대학생 정도로 보였는데 끊임없이 수다를 떨며 고기를 먹고 있었다. 대가족이 온 걸로 보이는 테이블에서는 아이들이 삼촌으로 보이는 남자를 끌고 가더니 기어코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매장 안에는 특별한 인테리어 장식이 없었고, TV에는 축구가 나오고, 고기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들렸다.


나는 메뉴판을 손짓하면서 뭐가 베스트인지 물었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들었고, 그거 좋겠다며 오케이 했다. 좀 기다리니 내 앞에는 다양한 고기들과 잔뜩 쌓인 감자튀김이 나왔다. 아름답다고 보기 힘든, 정말 투박한 동네 단골 식당의 느낌이었다.


하루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온 동네 사람들을 위한 식당. 이런 곳에 오다니. 식사는 맛있었고 분위기는 더 맛있었다. 내 인생 참 재밌다.


그날 자기 전 아내에게 쓰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 나도 모르게 내 인생도 참 재밌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여보 덕분에 내 인생도 참 재밌어져 갑니다. 앞으로도 우리 계속 재밌게 만들어가요.’


내일 나는 대서양을 보러 갈 것이다.


KakaoTalk_20241222_003605236_01.jpg


KakaoTalk_20241222_003605236_05.jpg


KakaoTalk_20241222_003605236.jpg


KakaoTalk_20241222_003605236_02.jpg


KakaoTalk_20241222_003605236_04.jpg


ps.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편은 여기 있어요

https://brunch.co.kr/@realmd21/2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