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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배운 일 9 : 불황에 대하여

불황은 자본주의의 꽃이다

by 장재형

9. 불황은 자본주의의 꽃이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불황은 자본주의의 꽃이야. 호황만 계속되면 그 사회는 망해. 제대로 안 하는 기업들도 돈을 벌고 있다는 거잖아.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거야. 어떻게 모든 일이 잘 벌 수 있다고 생각해.


쭉정이가 한번 쫙 빠지는 시기야. 물론 힘들지. 하지만 살아남는 기업에는 축복이지. 오히려 잘하는 회사들이 돋보일 수 있는 거야.


사회적으로는 불황이 정화작용 역할을 해. 이상한 곳에 있던 자원이 제대로 된 위치를 찾아가는 거야. 물론 개인은 힘든데, 불황이 한 번씩 닥쳐야 사회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어. 생존의 문제 앞에서 허리띠 졸라매면 교만했던 허황된 생각이 사라지지.


자본주의가 이길 수 있던 건 불황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 이때 생존력이랑 경쟁력이 강해지는 시기거든.


돈을 잘 벌고 삶이 풍성하면 모든 걸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역사적으로 그럴 때 나라가 망해. 망할 수도 있으니 미리 불황이라는 신호를 주시는 거야.


그러니까 불황이 오면 태풍이 한번 왔구나 생각해. 살아남으면 맑은 하늘이 보여.


아들은 들었다.


이 말을 몇 번이나 들은 아들은 사실 이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피곤하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이론으로 경제학을 공부한 아저씨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IMF 당시 아버지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 후로 쉬는 날들도 있었고, 아주 바쁜 날들도 있었고, 하던 일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날도 있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누구 탓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불황은 사회에 필요한 ‘꽃’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붙였다.


아버지는 자기 내일보다 사회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경제학이 어울리는 분이었다. 아들은 경영학을 선택했다. 사회보다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매년 불황이라는 말을 듣는다. 어떻게 매년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아들이 일했던 곳마다 그곳이 불황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말 덕분에 아들은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었다. 그래, 잘하는 기업은 살아남는다. 그때 빛을 본다. 그러니까 지금 더 잘하자.


아버지는 시장의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는 아들에게 위로의 말을 미리 해준 건 아닐까 싶다. 아, 사실 그렇게 감성적인 분은 아니니, 위로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정말 그가 생각하고 믿는 걸 말해준 것이다.


아들은 꽃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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