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도 며칠 밤새면 길이 보인다
10. 새로운 일도 며칠 밤새면 길이 보인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내가 나이가 이렇게 들어도 새로운 프로젝트 맡을 때마다 골치가 아파. 이걸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고. 처음에 보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나이가 들면 뭐든 좀 이해하는 눈이 넓어져서 빨라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아.
이건 무슨 말인가, 저건 무슨 말인가, 젊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좀 빨리 이해하면 좋겠는데, 그게 참 어렵네. 뭐든 새로운 건 시간이 많이 걸려.
그래도 계속 읽다 보면 안갯속에서 뭔가 보여. 새로운 일도 며칠 밤새면 길이 보이지. 갑자기 이게 그거구나 하는 순간이 와. 그때부터 진도 빼는 거야.
이렇게 반복하다 보니 새로운 일이 와도 무섭지가 않아. 힘들기는 해도 길이 보일 거라는 자신감이 있지. 그래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아들은 들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커리어 전부를 알지 못한다. 다사다난한 시절이 있었고 본인의 일을 다 말하지 않는 성격이다.
칠십이 넘은 아버지는 지금도 일을 하신다. 정부 용역 보고서 같은 일을 몇몇 교수님과 작업하신다. 살면서 이런 일을 했던 사람이 아니다. 그냥 십여 년 전부터 지인 일을 도와주다 여기까지 오셨다. 참고로 아버지는 학사다.
아버지 이력서를 쓴다고 가정해 보면 맥락이 이상한 부분들이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인생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계속 새로운 문이 앞에 나타나고 기어코 그 문을 열고 가는 건 아버지의 밤샘 덕분이라는 걸 알 뿐이다.
아들도 커리어에서 공통점을 보기 힘들다. 다른 분야의 일을 하면서 밥 먹고 살았다. 아들은 자신의 느림에 대해서 짜증 나고 한탄할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도 느리다고 말할 때 아들은 조금의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어떻게든 밤새면 길이 보인다는 말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지만 아버지에겐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게 아버지가 일을 지속해 온 방법이었다. 이런 방법 하나 있다는 건 꽤 위안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