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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26

배고프고 목말랐던 길

by 장재형

뭐라도 먹고 출발했어야 했다. 물을 좀 마시고 출발했어야 했다.


여행 오기 전에 유현준 교수의 유튜브에서 리스본을 소개한 영상을 봤다. 대서양에 붙어 있는 건물과 수영장을 소개하면서 해산물이 정말 맛있다는 레스토랑이 나왔다. 아, 저기 비싸도 한번 가서 먹어보자. 서울에서 나의 다심은 리스본까지 내 마음의 주머니에 있었다.


‘카보 다 호카’에서 걸어가면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구글맵이 알려줬다. 그 정도면 천천히 걸어가면 금방 가겠네. 길도 쭉 나있으니 어렵지 않겠다. 구글보다 더 빨리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때는 12시지만 아직 배고프지 않았다. 가서 더 맛있게 먹자는 마음에 그냥 출발했다.


대서양을 따라 절벽 옆으로 난 길은 꽤 가팔랐다. 생각보다 햇빛이 강했지만 바닷바람이 시원해서 다행이었다. 바람막이를 벗고 반팔로 걸었다. 산책이라기보다는 트래킹에 어울리는 산길이었다. 영화 속에서 볼법한 아름다운 풍경에 기분이 마냥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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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점점 주변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 길을 혼자 누리는 것 같은 기쁨에 이어진 건 좀 힘들어지고 좀 배고파진다는 살짝 투덜거리는 감정이었다. 여기서 돌아설 수 없다. 3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불과한데 쉽게 생각하자.


그때 갑자기 길에 나타난 한 남자. 그는 물과 과자를 팔고 있었다.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와 마주한 절벽 위에서 홀로 있던 그는 나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초과이익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지만 감자칩 한 봉지에 2유로만 받았다. 감사한 은인이었다.


길을 걷다가 주변에 너무 사람이 안 보여 구글맵을 다시 켜보니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다. 분명히 길을 따라가면서 갈림길이 없었는데 난 이상한 길을 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그래도 이 길로 걷다 보면 또다른 연결된 길이 있길래 일단 앞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참 걷다가 구글맵을 보니 나를 뜻하는 파란 동그라미가 이상한 길에 있었다.


그렇게 방향을 잃었다 찾았다 하다가 아담한 해수욕장에 갔다. 높은 절벽이 좀 낮아지다가 모래사장을 이룬 곳이었다. 작은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차들이 옆에 줄줄이 주차되어 있고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찼다. 아마도 여기 주민이거나 리스본에서 온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자판기에서 뽑은 콜라와 함께 벤치에 앉아 놀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번 여행 중 가장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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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었다. 처음 목표로 봤던 2시간 30분은 이미 지나버렸다. 아직도 1시간 이상 더 걸어야 했다. 어쩌겠는가. 걸어야지. 대서양은 이제 눈길도 안 가고 걸었다. 산길에서 벗어나 차도를 따라 걷다가 발견한 작은 캠핑장 같은 곳에서 물을 사 먹었다. 귀한 물이었다. 그제야 짜증은 흐려지고 미소가 났다. 이런 여행을 언제 또 해보겠는가. 시간은 생각하지 말고 목표했던 곳까지 계속 가보자.


그때부터 지도에 더 신경 쓰지 않고 걸었다. 목마르지 않으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 다시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어떤 사람들이 있나 주변을 볼 수 있게 됐다.


처음 걷기 시작한 ‘카보 다 호카’에서 4시간 30분이 지났을 때, 목표로 했던 그곳이 나왔다. 파도가 치면 물이 들어오는 수영장, 그리고 그 위에 보이는 절벽에 붙어 있는 레스토랑. 뭉클함 같은 감정보다는 이제 더 걷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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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 들어가니 대부분 잘 차려입은 백인만 있었다. 검은 머리에 흰 티를 입고 땀냄새나는 차림으로 들어간 나는 당당히 혼자 왔다고 말했다. 제일 맛있는 요리가 뭐냐고 물었고 문어 요리라는 말에 그걸 바로 달라고 했다. 뭘 먹어도 맛있는 상태인데 싱싱한 문어를 삶아서 소스와 함께 나오니 최고의 맛이 아닐 수 없었다. 나름 이 시간을 음미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해치웠다.


식당을 나와 한 시간에 한두 대 있는 버스를 기다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열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하루 종일 햇빛을 너무 많이 쬐었는지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래도 얘깃거리가 하나 생겼다.


무식하게 계속 걸어서 사서 고생하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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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편은 여기 있어요

https://brunch.co.kr/@realmd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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