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열쇠가 되기도 한다
14. 쓸데없어 보이는 지식이 물꼬를 트기도 한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내가 어디 사장님을 만난 날이었어. 거기랑 관계를 잘 맺어야 해서 살짝 긴장했지. 회사 가니까 사장실로 안내하더라고.
사장실 들어가서 마주 앉았는데 그분 표정이 좋지 않았어. 어떻게 얘기를 풀어가야 하나 생각하면서 방을 돌아보는데 큰 액자가 눈에 띄었어. 한자로 쭉 쓰여 있는데 저건 무슨 글일까 하며 봤지.
보다 보니까 중간에 아는 한자들이 있는데 어디서 읽어 본 기억이 나는 거야. 뭐였지, 뭐였더라, 곰곰이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 사장님, 저 글 중국 고전 ㅇㅇㅇ에 나온 글 아닙니까.
사장님이 화들짝 놀라더라구. 저걸 알아본 사람이 처음이래. 껄껄 웃으면서 왜 저 글을 썼고 여기에 뒀는지 한참 얘기했어. 그다음 일은 일사천리였지. 상대가 말을 많이 하면 일은 쉽게 풀리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알아본 건 네다섯 글자뿐이었어. 전체 글이 어떤 내용인지도 몰랐어. 그냥 어쭙잖게 책에서 본 걸 간신히 기억했다가 그 순간에 인연이 닿은 거야.
이것저것 많이 알아둬. 뭐가 어디서 연결될지 몰라. 쓸데없어 보이는 지식이라도 그게 물꼬를 트기도 하는 거야.
아들은 들었다.
아들은 고객사를 방문하면 사무실을 쭉 훑어봤다. 아버지의 경험 때문이었다. 책장에 꽂힌 책을 빠르게 캐치해서 담당 직원이 알고 보니 미술사를 전공했던 거나 상대 회사의 현재 고민을 알아낸 적도 있었다. 아들의 비즈니스 노하우 중 하나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교훈으로 지식이 깊을 필요보다 넓을 필요를 먼저 느꼈다. 물론 아들의 성향에도 어울렸다. 얕아도 넓게 알면 자연스럽게 그게 서로 엉켜서 손가락 정도라도 조금씩 더 깊어졌다.
아버지는 지금도 참 넓은 관심을 가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추세를 계속 팔로우하고, 인쇄업의 미래에 대해 떠드시다가, 로제의 ‘아파트’가 1위라고 어머니께 가르치신다. 덕분에 지금도 훨씬 젊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셔도 즐겁게 대화하신다. (물론 그 ‘훨씬 젊은 사람들’은 50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