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나의 엄마는 신기한 일을 많이 했었다. 워킹맘이었고, 도우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52시간 제도도 없었고, 아빠가 서포트 하지도 않았으니 아마 지금 나보다 훨씬 더 바빴을 텐데도 종종 특이한 걸 하러 가자고 했다. 예를 들면, 한강에서 하는 윈드서핑을 하러 가기도 했고, 남녀가 커플로 추는 댄스 강습을 받으러 가자며 아빠와 우리들을 데려가기도 했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아예 정기권을 끊었는지 거의 매달 갔던 것 같고, 어떻게 알았는지 가야금 선생님을 모셔와서 엄마도 배우고 나도 배웠다.
이상했던 건, 정작 엄마는 이런 다양한 아이템들을 잘하지도, 즐기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운동신경이 없어서 윈드서핑은 물 위에서 일어나는 것도 성공하지 못하고 강습이 끝나버렸고, 댄스도 두어 번 가고는 말았다. 가야금은 엄마가 배우다 안 되겠으니 나를 시킨 것 같고, 음악회는 자주 갔지만 엄마는 늘 가서 졸곤 했다. 솔직히 '바쁘다면서, 힘들다면서 왜 그러지', '돈 아깝다'라고 생각했었다.
작년 말, 모 사이트에서 할인 코드가 있기에 뒤적거리다 충동적으로 '프로필 사진 찍기'를 결제했다. 정확히는 이전부터 눈독 들이고 있던 것을 할인을 핑계삼아 실행에 옮긴 거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왠지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가장 젊은 나를 어디엔가 남겨놓고 싶었다.
마음 먹기가 어렵지 실행은 쉬웠다. 뚝딱 결제를 하고, 사진 찍을 날짜를 확정하고 나니, 기왕이면 잘 찍고 싶어 진다. 어떤 옷을 입어야 사진이 잘 나올지, 어떤 콘셉트로 찍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친구가 헤어와 메이크업은 꼭 해야 한다고 한다. 귀가 팔랑팔랑 한다. 그래? 그렇다면 메이크업 샵도 예약해보자며 큰애 돌잔치 이후 십 년 만에 메이크업이라는 걸 예약한다.
이벤트가 생기니 마음이 두근두근하고 설렌다. 그 날은 나를 위한 날이다. 가족들에겐, 예쁘게 차려입고 사진도 찍고 친구도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을 거라며, 그 날 아내이자 엄마인 나는 없을 거라고 말한다. 이미 한 달 전부터 하겠다고 하고 싶다고 계속 말해온 데다, 한창 신난다고 들떠있으니 가족들은 그저 알았다고 잘 다녀오라고 한다. 사진 찍기 일주일 전부터는 어쩐지 다이어트도 해야 할 것 같다. 뭐 먹을 때마다 사진 찍을 거야 다이어트할 거야 운운하니 주변 사람들이 제발 말을 말던가 먹질 말던가 하라며 진저리를 낸다. 그러는 와중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내가 프로필 사진을 찍을 예정임은 다 소문이 났다.
프로필 사진 찍을 거거든. 얘기하면 사람들이 꼭 묻는다.
'누구랑? 가족이랑?'
'아니, 혼자'
그러면 십중팔구 못 믿겠다는 듯이 되묻는다.
'친구랑도 아니고? 혼자?'
하도 얘기하는 사람마다 의아해하니까 프로필 사진을 찍는 내가 이상해 보일 지경이다. 순간, 과거의 엄마가 오버랩된다. 엄마가 나쁜 짓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남들이 잘 안 하는 걸 했을 뿐인데, 이런 시선을 받았었구나 깨닫는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겠지만, 질리도록 해야 할 일이 많았던 엄마는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일상을 이어나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메이크업을 하러 간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묻는데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모르겠다. 언제 해봤어야 알지. 사진 샘플을 보여주며 이런 거 찍을 거라고 알아서 잘해달라고 요청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울 속 모습이 낯설어진다. 눈썹은 너무 진하고 두꺼운 것 같고, 눈썹과 눈의 밸런스도 안 맞는 거 같고, 머리도 자연스러운 스타일이라기보단 너무 우아한 스타일 같고...... 촬영 메이크업 전문가일 테니 믿어보자, 메이크업을 했는데 평소랑 같으면 안 되는 거 아니겠냐고 속으로 생각하며 두어 시간의 기다림을 버티고 나니 메이크업이 완성되었다.
'호오, 예전엔 속눈썹 붙이면 무거웠는데 요즘은 가닥가닥 붙이는군. 눈 깜박여도 메이크업이 안 번지고.'
메이크업 기술의 진보를 체험한다. 전체적으로 선명해지고 과하다는 느낌은 없어서 마음에 든다.
그리고 한 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사진관. 입구에서 기타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인사하고 들어가니 차를 내준다. 첫인상이 좋다. 사진을 바로 찍지 않고, 두런두런 한참을 이야기한다. 어느새 잘 찍어야겠다는 마음은 사그라들고 그저 즐기면 되겠다는 확신이 생긴다. 도구를 사용한 워밍업 사진도 찍어보고, 내가 혼자 리모컨으로 찍어도 보고, 이렇게 긴장을 내려놓고 찍은 사진은 처음이다. 생기 있고 기분 좋고 역동적인 내 모습이 찍혀있다. 사진들이 말해준다.
'이게 네 본모습이야.'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젊을 때니까, 기회 될 때 해보자고 시도한 거였는데 마음에 쏙 든다. 누가 칭찬은 안 해주니까 스스로 칭찬한다. 참 잘했다. 앞으로 매년 찍어야지. 누가 뭐라 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