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10년 차

by 미선씨

얼마 전의 일이다. 첫째가 용돈을 놀고먹는데 다 써버린 상태에서, 급하게 친구 생일 선물을 사야 하는 일이 있다 하여 대신 돈을 내주었다. '다음 주 용돈 가불 해주는 거야' 덧붙이면서.

아이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내심 돈은 없는데 친구 선물을 어떻게 사야 하나 고민이 많았나 보다.

그래서 슬쩍 찔러보았다.

" 엄마한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해야지."

씩 웃기만 할 뿐 말이 없다. 문방구 사장님도 옆에서 거든다.

"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말도 안 하네? 뭐하러 돈 내준대? 거 사주지 마소."

아이는 부끄러운 건지 어쩐 건지 배배 꼬다가 겨우 내 귀에 대고 말한다.

"엄마 고마워."


한동안 이 아이에게 엄마인 내가 전부일 때가 있었는데. 이제 이 아이에게 엄마는 제 '필요'에 의해서만 찾는 존재가 된 건가 싶어 씁쓸하기도 하고,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싶어 대견하기도 하다 .


십여 년간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내 정체성의 99%는 '엄마'가 되어버렸다. 십 년 전 첫째가 갓 태어났을 때, 나는 이 낯선 존재를 키워야 하는 게 너무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하루 24시간 말도 안 통하는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달래는 엄마로서의 인생이 너무 고달파서 솔직히 가끔은 도망가고 싶었다. 그런 나를 붙잡은 건,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눈빛과 몸짓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가면 징징대는데 내가 안아주면 곤히 잠드는 아이, 처음으로 '엄마'를 말하고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찾으며 내 곁을 맴맴 도는 아이.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절대적인 존재가 된 적이 있던가 싶었고, 그 점이 한편으로는 어깨를 무겁게 누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좋았다.


그렇게 해가 쌓여, 나는 아이 옆을 든든히 지키는 엄마로 훈련되었다. 이제야 '엄마' 역할에 좀 익숙해진 것 같은데, 이제 아이에겐 엄마가 절대적이지 않다. 첫째는 엄마 없이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하고, 놀기 위해서 필요한 '돈'과 놀아도 되냐는 '허락'만 엄마한테 요구한다. 가끔 일기장을 훔쳐보면 '우리 엄마는 돈 아낀다고 장난감을 사주는 법이 없다''엄마는 공부하라고만 하지 놀아주지 않는다' 등, 엄마에 대한 원망만 가득하다. 엄마가 해준 맛있는 밥과 엄마가 데려가 준 야외 놀이터와 엄마가 사준 수많은 보드게임과 엄마가 꾹꾹 삼키고 차마 말로 꺼내지 않은 잔소리는,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의 엄마가 나에게 하던 이 말을 나는 절대 내 아이에게 안하리라 다짐했건만. 마음속 깊은 곳이 부글부글한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알아주길 바라고 키운 것은 아니나, 속상한 마음이 스멀스멀 드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제 어른답게, 의연하게, 아이의 홀로서기를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또 많이 힘들 것 같다. 처음 갓난애의 엄마가 되어 겪었던 어려움과 비슷한, 어떤 시기를 또 지나야 될 테니까. 솔직히 곧 다가올 첫째 아이의 사춘기가 너무 두렵다. 큰 갈등 없이 넘어갔음 하지만 이건 그저 바람일 뿐일 테고, 그저 갈등이 폭발하여 서로 상처를 받더라도 잘 아물어서 후에 건강한 모녀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지극정성으로 키운 이 아이는 이런 엄마 마음을 알까. 아 참,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지. 씁씁후후.좀 더 내려놓자. 나도, 10년 차 엄마로 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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