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인 나에게 자유시간의 정의는, 회사일이나 육아와 같이 필수로 해야 하는 일이 없고, 나의 자유의지로 나를 위한 시간을 꾸려갈 수 있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평소 아침엔 애들 등원, 등교 챙기고 낮엔 회사 가고 저녁엔 애들 저녁밥과 일상을 챙겨야 하는 데다, 잠잘 때조차도 아이와 함께하며 애가 기침하는지 이불을 걷어차는지 챙기고 돌보고 있으니, 자유시간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게 현실이다. 나의 24시간은 죄다 업무뿐인 것 같지만, 어쩌랴, 워킹맘인 것을.
몇 주 전에 신랑이 말했다.
"회사 사람들이랑 '아빠 어디 가'를 할까 해. 1박 2일로"
이렇게 부부가 떨어져야 할 때, 아이가 셋인 우리 집은 보통 아이 하나, 둘로 나눠서 맡곤 한다.
"응, 누구누구 데리고 갈 건데?"
"이번엔 큰애까지 셋을 다 데리고 갈까 싶어."
"??!!"
'아니 둘도 아니고 셋을 전부 데리고 간다고! 세상에 이런 기특한 모임이 있나. 오! 무려 1박 2일의 자유시간이 생기는 건가. 1박 2일이면 뭘 할 수 있지. 이렇게 귀한 시간은 허투루 보내면 안 되는데. 특별하면서 재미있는 일을 해야겠다. 뭐하지? 와 오랜만에 할라니까 하고 싶은 일이 생각이 안나잖아'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자유시간이라니, 자유시간이라니!!
아직 나의 자유시간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아이들이 갑자기 안 간다고 변덕 부리는 사태를 막으려면, 아이들이 스스로 '아빠 어디 가' 모임에 참석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아이들을 은근히 떠본다.
"얘들아, 아빠 친구들이랑 애들이랑 놀러 간다는데, 갈래?"
"안가. 가서 뭐하는데? 재밌는 거 해? 그냥 안 갈래"
이런, 큰 애가 엄마 속도 모르고 튕겨낸다.
"빙어 낚시한대. 눈썰매도 타고"
"누구누구 오는데? 오는 애들은 몇 살인데?"
"아저씨들이랑 너보다 어린애들 몇 명이 온다는데, 근데 오늘까지 결정해야 해. 표 사야 하거든"
"음.... 지금? "
따지려던 큰 아이는 시간에 떠밀려 가기로 결정을 했다.(꺄아!) 둘째는 처음부터 간다고 호의적이다. 다 됐다 싶었는데 이번엔 셋째가 말썽이다.
"엄마는 같이 안 가? 엄마랑 잘 거야... 으앙 ㅠㅠ"
"딱 하룻밤인걸. 우리 셋째 눈썰매 타고 싶다며. 내일 눈도 온다는데, 눈썰매 진짜 재밌을 텐데. 안 갈 거야? 언니들도 다 같이 간대~"
"눈썰매? 눈썰매 탈래!!"
와, 가기로 마음먹어준 아이들한테 용돈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맘 편히 1박 2일 동안 뭐 할지를 고민하려는데, 운전을 못하다 보니 어디 가기도 그렇고, 영 마땅치가 않다. 보고 싶었던 동생 불러서 집에서 쉬다가, 집 앞 호수 한 바퀴 돌면서 운동하고, 영화 한 편 보고, 맛집 찾아가서 맛있는 거나 먹을까 싶다. 회사 사람들이랑 주말에 뭐하는지 얘기하던 와중 이 소식을 전하니, 회사 사람들이 1박 2일은 꽤나 긴 시간이라며 호수는 지금 가서 걸어도 되는 거니까, 좀 더 특별하게 혼자 여행이라도 다녀오라 한다. 영종도나 강릉을 가던지, 제주도를 가던지 하란다. 얘기를 듣고 보니 그냥 집 근처에서 이렇게 보내는 일정은 아무래도 좀 아쉬워진다.
고민하며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문득 이 인디밴드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검색해보니 마침 일요일에, 딱 신랑과 아이들이 어디 간 그날에,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고 한다. 바로 이거다. 이거야말로 특별한 자유시간에 딱 맞는 이벤트다. 8팀의 연합공연이라 이 밴드는 30분밖에 못 볼 테지만, 2만 원에 여러 밴드의 공연을 보는 것도 괜찮지 아니한가. 평생 못 가봤던 홍대 클럽이란 곳도 가보고 말이다.
대망의 자유시간을 앞두고, 전날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아이들과 신랑을 빨리 내보내야 내 자유시간이 길어질 테니, 자유시간을 갉아먹을만한 일은 전날에 미리 해치워두려는 심산이다. 쌓여있는 설거지도 해놓고, 분리수거도 해두고, '아빠 어디 가'팀에 협찬할 밑반찬과 술안주는 미리 챙겨두고, 아이들이 1박 2일 입을 옷도 미리 꺼내어 싸 두고, 아침밥은 일어나면 바로 꺼내서 먹을 수 있게 세팅해두고 기대에 부풀어 잠이 든다.
당일 아침, 아이들과 신랑은 후딱 아침을 먹고 9시 반에 나갔다. 아이들 보내 놓고 너무 좋아한 게 조금 미안해져서, 평소와 다르게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나간다.
"잘 다녀와 얘들아. 신랑, 진짜 진짜 사랑해"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니, 집안이 세상 적막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게,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나 혼자뿐이라는 게 너무 이상하다. 지금부터 1박 2일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다. 적어도 이 시간은, 나 몰래 누군가가 집안을 어지럽히거나,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싸운다거나, 누군가가 무얼 해달라고 나한테 주문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일단 좀 쉬고 싶은데,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진 집안 꼴이 눈에 밟힌다. 어제 그렇게 미리 정리한다고 했는데도 밤사이에 다시 초토화되었다. 거실 바닥엔 옷가지가, 식탁 위엔 지저분하게 먹다 남은 석류가, 책상 위엔 각종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다. 하... 이따 나갔다 왔을 때 집안이 이 꼴인 건 싫은데, 그렇다고 지금 시간을 써가며 치우기도 싫고... 어쩌겠나. 앞으로의 자유시간을 위해 지금은 청소를 하기로 한다. 다만, 시간이 아까우니까 최대한 빠르게, 눈에 거슬리지 않는 정도로만 하자. 옷가지는 대충 뭉쳐서 소파에 얹어놓고, 석류는 괜찮은 것만 떼어 정리하고 나머지는 버리고, 바닥의 자질구레한 쓰레기는 잘 안보이니까 무시하기로 하고, 아침 먹은 것 설거지는 기름 없는 것들만 휘릭 한다. 그렇게 대충 했는데도 한 시간이 지났다. 힘이 부친다. 이제 정말 쉬어야겠다. 공연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한숨 자기로 한다. 자유시간을 '낮잠'으로 시작하는 것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에 동생을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고 4시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평소와 달리 느긋하게 씻고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느낌이 생경하다. 오랜만에 가 본 신촌 거리에서 20년 전 흔적도 찾아보고, 맛집에서 사진도 찍어가며 밥을 먹고는 홍대로 향한다. 홍대 거리도 예전에 비해 많이 정비가 되었는데, 꽤나 아기자기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어물어물 길을 더듬어가며 홍대 구석에 있는 락 공연장에 도착했는데, 세상에, 내가 보려던 그 밴드가 공연장 앞에 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리허설을 마치고 나왔는가 본데, 공연 시작 전에 미리 오길 참 잘했다. 사진을 요청해도 되나 잠깐 고민했는데, 이건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나.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다. 멤버들에게 곧바로 다가가 공연 보러 왔는데 사진 좀 찍어도 되겠냐고 부탁하니 흔쾌히 사진 찍어주셨다. 꺄앗!
라인업이 8개 팀이고 공연 시간이 총 5시간 되다 보니, 마지막으로 공연하는 이 분들은 어디 갔다가 시간 맞춰 다시 오는 모양이다. 시간 여유가 좀 있길래 옆에 전시회도 보고, 홍대 거리 구경하며 쇼핑도 하고, 간식도 산다. 전시회 느낌도 따뜻하니 예쁘고, 홍대 거리에 재미난 가게도 많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참 소소한 일인데, 이게 무슨 큰 일이라고, 참 오랜만에 해본다.
어느덧 4시라 공연장으로 향한다. 공연장 입구부터 전자기타의 찢어지는 소리와 드럼의 쿵쿵대는 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운 공연장에서는 말로 소통을 할 수가 없다. 손짓과 눈빛으로 의사소통을 해가며 표를 사고 손목 입장권을 차고 공연장을 둘러본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이라, 밴드와의 거리가 가깝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인다.
밴드마다 개성이 있는 게 재미있다. 앞 순번으로 공연하는 밴드는 아직 경험이 적은 게 보여서 귀여울 지경이다. 로큰롤 밴드에겐 왠지 정이 가고, 어떤 밴드의 공연은 정말 신이 나서 기분이 좋아진다. 헤비메탈은 노래 자체의 매력은 잘 모르겠으나 보컬의 퍼포먼스가 박력 있어 멋지다.
네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 공연, 그동안은 뒤에서 의자에 앉았다 기댔다 하며 쉬엄쉬엄 봤지만 이 공연은 그렇게 보면 안 된다. 공연 준비할 때부터 맨 앞줄에 자리를 잡는다. 시작한다. 온몸에 진동을 울리게 하는 공연장의 사운드가 너무 좋다. 특히 이 팀은 단단한 베이스와 드럼, 귀에 쏙 들어오는 기타 리프가 매력적이고, 멜로디가 대중적인 편이고 노래 가사도 깊이 있어 좋다. 하. 음악에 조예가 있는 게 아니라서 더 이상 어떻게 표현을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
30분여의 짧은 공연이 끝나버렸다. 여운을 안고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다. 집에서 휴대폰이나 블루투스 스피커로 듣던 노래를 실물로 영접한 느낌이다. 가슴을 뛰게 하는 공연장의 사운드는 꼭 공연장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기분전환을 위해서 종종 와야 될 것 같은데, 매일매일 '아빠 어디 가' 행사를 할 수도 없고, 어쩐다지.
내일은 회사 출근을 해야 해서, 사실상의 자유시간은 끝났다. 이 날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얼굴이 환한 것이, 신나고 기분 좋은 게 느껴진다.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아이들을 볼 때 애들이 예뻐서 웃는 엄마이지만, 하고 싶은 걸 할 때도 신이 나서 웃는 사람이다. 그러니 둘을 잘 병행해야 한다. 나는 소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