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다시 느끼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 관람 기록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이전에도 한 번 가보려 했다가 별 것 없어 보여 돌아왔었는데, 연휴 때 그냥 집에 있기도 좀 그렇고,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도 이것저것 있다고 하고, 설이라 행사도 한다 하여 아침부터 부지런히 출발했다.
아이들을 교육 프로그램에 넣어두고 마을을 쓱 둘러보니, 꽤나 재미있는 곳이었다. 이십여 채쯤 되는 집이 오밀조밀 모여있는데, 집집마다 여관, 미용원, 콤퓨타 게임장 등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테마로 꾸며져 있었다. 스탬프를 찍어오면 떡국을 주는 행사도 있어서 스탬프도 찍을 겸 하나하나 둘러보기 시작했다.
영화관에 가보니 500원짜리 영화표를 팔던 옛 영화관의 모습이 보인다. 1세대 배우 트로이카가 누구니 하는 설명이 줄줄 쓰여있었지만 나는 그 세대가 아니어서 그런가 눈에 잘 들어오진 않는다. 1956년 개봉했다는 영화도 볼 수 있었는데, 영 재미도 없고 특유의 대사톤이 거북스럽기만 하다. (왜 남자들은 중저음으로 명령하듯 말하고, 여자들은 높은 솔 톤의 존댓말로 톡톡 치는 대사톤 있지 않은가.) 2층에선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같은 만화영화를 계속 틀어준다. 아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초 그거! 어릴 적에 볼 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 뭔가 정돈되지 않은 손 그림체며, 살짝 거친 티키타카가 오가는 대화, 은근히 철학적이고 뽕삘 나는 저팔계 노래가 툭툭 나오는 감성이 예사롭지 않다. 2020년, 이 시대에 저런 만화는 제작하지 못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사가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던가, 폭력적인 부분이 아이들 관람불가 등급이라던가,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어떤 전시관에 들어가니, 반가운 물건들이 잔뜩 놓여있었다. 내가 써왔던 삐삐, 시티폰, 핸드폰들. 그리고 전화카드들. 신이 나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준다.
"이게 그때 가로본능이라고 화면이 돌아가는 폰이었어. 엄청 센세이셔널했지. 우와, 이 폰도 인기가 많았어. 화면을 밖에서도 볼 수 있는 거 보여? 그 전엔 꼭 폴더를 열어야 했었거든. 오 이 언니 알지? 예전에 정말 인기 많았었어."
아이들은 영 뜨뜻미지근하다. 음? 내가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 한 걸까.
서울 미래유산 전시관에 가니, 88 올림픽 관련 영상이 나온다. 나는 또 신이 난다.
"얘들아 이거 보이지. 여기가 지금 잠실운동장이야. 여기 호돌이는 그때 마스코트고.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건 세계적인 행사여서 다들 관심이 대단했어. 여기 개회식 나오지? 이 날이 딱 엄마 생일이거든. 그래서 할머니가 엄마 생일선물로 여기 데려가 주셨어. 엄마가 여기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던 거지. 그때 저 모자랑 여러 기념품을 줬었는데, 그거 엄마 집에 있었다?"
나에겐 너무도 반갑고 신기한 과거인데,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로 들리나보다. 그렇겠지, 내가 1세대 트로이카에게 관심이 없듯이, 올림픽을 겪지 않은 아이들에게 삐삐를 사용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강요해서는 안 될 일일 테지.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서운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스코필드 박물관에 들어갔다. 솔직히 그전에 몰랐던 분인데, 살펴보니 3.1 운동을 사진을 찍어 해외로 알리고 지인 등에게 각종 원조를 받아 어려운 시절의 한국을 도왔던 캐나다인이다. 민족대표 34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을 사랑했던 분이었고, 죽어서도 한국에 묻히길 희망하여 현재 현충원에 모셔져 있는 분으로, 한국 이름은 '석호필'인 듯하다. 이런 고맙고 대단한 분이 있다는 것을 이전에 전혀 몰랐는데, 내가 전혀 몰랐다는 게 충격이었다. 이 분이 자신의 행적을 알아주길 바라며 헌신하진 않으셨겠지만, 적어도 이 분의 덕을 본 한국인의 후손으로서 이름 석자는 알아야 하지 않았나 싶어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구락부라는 곳이 있어 대체 뭔가 하고 들어가 봤다. 요즘 말로 하자면 클럽이다.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고 모임도 하는 연회장 같은 곳. 1920년 그 시대에 연회장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그 시기에 한국에 들어와서 제너럴 모터스의 쉐보레 차를 팔던 미국인이 있다는 것도 놀랍다. 내 머릿속에 1920년대에 대한 이미지는, 막연하게 일제강점기 직후로 먹고살기 바빴던 시대였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그 시기에도 누군가는 신문물인 자동차를 사고팔았을 테니, 그를 위한 교역도 있었을 테고, 분쟁을 조절할 재판도 있었을 테도, 큰 금액을 주고받기 위한 은행도 있었을 터, 내가 역사를 너무 단편적으로만 배우고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 하루였다. 나의 역사는 알아주길 바라면서, 선조의 역사는 잘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고, 내 과거도 벌써 역사의 일부가 되는가 싶기도 했고, 아이들은 이 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 것까지일 것이고, 아이들이 느끼는 건 아이들의 몫일 테니, 욕심은 내면 안될 것이다. 그나마 하나 희망이라면, 우리 세대와 아이들의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체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
그때 그 시절, 1942, 버블버블, 갤러그, 슈퍼마리오, 팩맨, 스트리트파이터 ...
적어도, 콤퓨타게임장의 오락은 기억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