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께 특별한 하루가 되었기를

by 미선씨

부모님이 맞벌이하셨어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다. 당시의 하루하루가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벌써 20년이 지나서 그런가, 희미하게 할머니가 끔찍이 챙겨주셨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어쨌든 내 마음 한구석에는 할머니에게 아무리 잘해도 할머니가 주신 사랑에 보답은 할 수가 없다는 마음의 부채가 있다.


작년 말, 어느덧 86세가 되신 할머니의 생신이었다. 할머니는 가족모임을 해주어서 고맙다며, 한 곡조 뽑으셨다.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가사가 대략 이러했다.

"그리운 종섭 씨, 영감 이제 대전에서 나랑 같이 놉시다."

종섭 씨는 10여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고, 대전은 할아버지가 계신 곳이다. 요즘 들어 부쩍 할아버지 곁에 가겠다는 말씀을 종종 하시곤 하는데, 좋은 날 그런 이야기를 듣자니 마음이 울컥했다.


얼마 전 구정에는, 가족끼리 모여서 작년 한 해 있었던 일 중 중 인상 깊었던 일을 말해보기로 했다. 할머니 차례가 되자,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 딱히 기억에 남는 일이 없어요. 아, OO이가 여행 가자고 한 게 기억에 남네. 가진 못했지만 간 걸로 할게요."

당시 동생이 할머니 모시고 해외여행 가보려 했으나, 할머니 연세가 고령이라 의사가 비행기를 못 타게 했었다.


일련의 일들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할머니에게 남은 시간이 정말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치고 지나간다. 남편네 가족들은 몇 년 전부터 사촌끼리 회비를 모아 정기적으로 모이는데, 나의 친척들하고도 했으면 싶다가도 이것저것 챙길 것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나서 선뜻 추진을 못했었다. 나는 애도 봐야 하고 회사도 가야 하는데, 사촌들 언제 모아서 의견 들으며 챙겨서 그런 걸 하나... 싶어서 할 생각을 않고 있었는데, 더 이상 핑계 댈 때가 아니다. 사촌들을 불러 모았다.

손주들끼리 월 회비를 모아서 6월에 할아버지를 보러 가고, 12월에 할머니 생신 때 식사를 하도록 하자. 손주들이 모은 돈으로 부모님과 할머니까지 모시는 걸로 하고, 예상 비용이 얼마니까, 각자 얼마 정도 내는 걸로 해서 진행하자.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꺼려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째야 할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동생들도 호응을 해준다. 그렇게 손주 모임방 카톡방과 모임통장이 개설되었고, 모임방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할머니와 사진을 찍자.


생각해보니, 우리가 성인이 되고 나서, 할머니와 제대로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 결혼한 집도 있고, 애 있는 집도 있지만, 배우자와 아이들이 있으면 아무래도 할머니에게 집중을 못하게 되니까, 오로지 할머니와 우리들만의 행사를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관마다 가격이나 콘셉트가 다양하다 보니, 사진관 찾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하니 계단이 있는 곳은 패스해야 하고, 우리가 생각한 금액대로 맞춰야 하고, 사진관 위치가 찾아가기 적당해야 하고, 사진 퀄리티가 어느 정도 나오긴 했으면 좋겠고, 여섯 명이 다 모일 수 있는 시간에 예약이 가능해야 하고......

날짜를 잡고, 사진관을 정하고, 사진관과 사전에 조율을 한다. 흑백 사진 전문이었는데 컬러 원본도 달라하고, 멤버 구성이 할머니와 손주들이니 할머니 독사진과 할머니와 함께하는 사진으로 찍어달라 부탁해놓았다. 날짜가 다가오자, 할머니를 모시고 올 사람도 정하고, 촬영 복장 톤도 의논해서 맞추고, 촬영 당일 식사는 어찌할지도 의논한다. 은근히 챙겨야 할 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촬영 날, 나는 30분 전에 도착했다. 주차는 할 수 있는지, 촬영하는 공간이 어떤지 미리 봐 둬야 할 것 같아서 서둘렀다. 사진사 분하고 얘기를 나눠보니 경력도 많으시고 잘 찍어주실 것 같다. 사촌들이 하나하나 도착했다. 나름 화장도 하고 옷도 챙겨 입고, 멀리 지방에서도, 일이 바빠 주말에 못 쉬는 녀석도 빠짐없이 왔다. 다들 내심 신경을 많이 썼구나 싶어 고마웠다. 그리고 도착하신 할머니, 곱게 차려입으시고 화장도 하시고 반지와 귀걸이도 챙겨 오셨다. 손주들 밥 사주시려고 돈도 챙겨 오셨단다. 다들 두근두근 했구나, 말은 안 해도 마음으로 느껴진다.

생각보다 사진 촬영 자체는 정말 금방 끝났다. 후딱후딱 찍어서 조금 아쉽기도 했는데, 할머니가 오래 버티시긴 힘들 테니 어쩔 수 없다 싶기도 하다.


그렇게 찍은 사진. 곱디고운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무료한 일상에 특별한 하루가 되었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과거를 다시 느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