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링이 아닌가 봐

by 미선씨

워킹맘의 삶은, 저글링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일과 육아, 적어도 공 2개를 굴려야 하는.

일과 육아와 가사까지 공이 3개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 '나'라는 공도 추가했다. 이렇게 해야 할 일에만 치여서는 못 견디겠다며, 내가 원하는 나를 위한 일도 해야겠다며.


몇 년 전에, 워킹맘을 위한 강의를 들으러 갔었다. 소위 성공한 워킹맘인 여자 임원을 모셔놓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듣는 내내, 공감이 가기는커녕 기분이 나빴다. 본인은 일을 하고 싶었기에, 고심 끝에 시어머니한테 아이를 봐달라 빌다시피 해서 육아를 일임했고, 회사 일을 밤도 새 가며 열심히 했고, 그러다 보니 임원이 됐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뭔가 의문이 들었다. 결국 무언가를 포기해야 다른 걸 얻을 수 있다는 뜻인가. 성공하고 싶으면 애를 포기하고, 애를 챙기고 싶으면 일을 포기하라는 건가? 포기 못하겠으면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아서 아웃소싱이라도 하라는 게 성공한 저 사람이 해주는 도움말인가?


하기사, 누군가는 오롯이 달리기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이것 저것 챙기며 뛰는 워킹맘들이 전력 질주하는 그들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저글링을 잘하고 싶었다. 사실 강의에서 내가 듣고 싶고 싶었던 건 저글링을 잘하는 방법이었다. 회사도 집도 아이도 자신도 적당히 챙길 수 있는 팁.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이것이었는데, 임원님이 바라보는 성공은 '일'에 대한 성공이었다. 나랑 지향점이 달랐다.


아이 셋의 엄마, 회사의 임직원, 이모님의 고용주, 미선씨 등 역할이 많으니, 욕심내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수준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초고속 승진은 바라지도 않았다. 아이들 외출할 때마다 머리 예쁘게 따주고 옷 색색이 맞춰서 입히는 건 해본 적도 없다. 반짝반짝 정리된 집안은 기대한 적도 없다. 그저, 남들 승진할 때 뒤처지지 않길 바랐고, 아이들 공부는 못 챙겨도 삼시세끼 챙기려고 했고, 집안일은 가능한 눈감고 보지 않았다. 그리고 가끔씩 나를 위한 시간 조금만 낼 수 있으면, 그 정도면 된 거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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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매진했던 한 주를 보내고 나서 깨달았다. 과한 욕심이었다.

이렇게 일만 해도, 고과는 보장되지 않는다. 일을 이렇게 해서는, 퇴근 후 애들을 돌볼 수가 없다. 취미생활은 더더욱 할 도리가 없다. 집안일은 아웃 소싱한다지만, 그것도 도우미와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굴러가는데, 그조차 할 시간이 부족하다.

저글링 하겠다는 공을 다 떨어트린 기분이다. 뭐 하나 확실하게 손에 쥐고 있는 게 없다.


간만의 시어머니와 통화에서, 어머님이 한마디 하신다.

" 힘들지, 그래도 애들 공부 챙겨야 해. 지금 뒤처지면 못 따라가. 나중 돼봐라. 애가 잘되야 해, 그게 낙이고 보람이야"


네. 힘들어요. 애들 생활습관은 엉망이 됐어요. 공부는커녕 먹는 것도 잘 못 챙기고 있어요. 애들 붙들고 보려면 휴가를 내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또 회사에서 뒤처지겠죠. 이렇게는 자존심 상해서 회사 못 다니겠어요. 그만둘까요? 그냥 적당히만 하고 싶은데, 적당히는 커녕 다 못하고 있어요. 어떡하죠 어머니.


끓어오르는 속마음을 삼키고, 전화를 끊는다.

이번 주말은, 떨어진 공을 다시 줍고 세팅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공을 몇 개를 굴릴지, 공의 무게를 어느 정도로 둘지,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는지. 계속하긴 할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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