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 씌워 말하는 사람, 괄호 없이 말하는 사람
같이 일하는 상사가 업무 지시를 했다.
최 매니저, 내가 급하게 회의 들어가야 해서 그런데, 이 미팅 좀 챙겨줄래요?
굉장히 정중하고 부드러운 업무 지시였다. 내용을 살펴보니, 한국과 미국의 임원이 들어오는 회의라서 시간이며 참석자며 신경을 꽤나 써야 했다. 나는 미국과 한국의 실무자와 약속시간, 참석자를 확인하고 회의 참석하겠다는 확인을 받고 일 처리를 끝냈다. 회의시간이 다음날 아침 7시였는데, 당일 아침에 아이들 챙기며 있던 나에게 급하게 연락이 왔다. 회의에 안 들어오냐고.
'음? 나한테 회의 진행 내용만 챙겨달라고 한 거 아니었어? 참석은 직접 한다는 거 아니었나? 애초에 이 부서 올 때부터 출퇴근 시간 조정이 어려운 상황은 얘기했었는데, 아침 7시에 하는 회의에 대참 해달라는 뜻이었던 건가?!'
내가 지시를 너무 곧이곧대로 들었던 것일까? 이 상사가 너무 둘러둘러말했던 것일까? 회의가 끝난 후 상사에겐 지시를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죄송하다며, 내가 둔한 걸로 마무리 지었다.
같이 일하는 다른 상사분은 사뭇 다른 스타일이다.
한참을 고민해서 초안과 리스크를 정리해서 보고를 하면서, 각 안 별로 장단점을 말씀드리면, 그간의 내 고민이 무색하게 아주 심플하게 피드백을 주신다.
이거? 이렇게 주장하면 되지~
몇 달을 진행한 업무 결과를 요약 보고하고 내용을 확정하는 자리라서 더 이상의 변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굉장히 간단하게 의견을 제시하신다.
음.. 나는 이걸 하고 싶었는데, 지금 정리한 것들은 사업에 도움이 안 될 거 같아.
정확하고 심플한 피드백을 주시는데, 그 피드백이 너무 쉽고 간결해서 뭔가 그간의 우여곡절 많았던 업무 과정이나 열심히 알아보고 고민한 게 무색할 지경이다. 늘 보고하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는 명확해지지만 기분상으로 맥이 빠진다.
요약하자면, 이런 느낌이다. 데이트 중 나는 배가 고픈데 상대방은 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첫 번째 상사는 ' 어? 저기 레스토랑이 새로 생겼네. 맛있을 거 같아.'라고 에둘러 말하는 사람. 내가 보고를 하면 정성스럽고 긴 피드백을 줄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
"아, 같이 고민해볼까요. 여기 이슈가 이거죠? 이거에 대해 이 쪽은 뭐라고 하던가요?"
모든 대화에 쿠션 같은 괄호를 씌우고 얘기하는 첫 번째 상사와 일하면서, 일할 때는 명쾌한 게 좋다고 생각했다. 대화는 부드럽지만 상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파악을 못하겠는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상사는 ' 나 배고파. 뭐 먹을까?'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사람. 원하는 게 분명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지시도 명확하고 피드백도 명확하다. 이런 식으로.
"내일 아침 7시에 미국과 회의가 있는데, 최 매니저가 나 대신 참석해줘요."
간결하고 정확하게 지시하는 두 번째 상사와 일하면서는, 너무 명쾌한 것도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말에 괄호 없이 날것 그대로 말하니,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는 쉬운데 가끔 마음이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따지자면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특히나 일 할 때는, 명쾌한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일해야 할 시간에 예의도 갖추고 공감대도 형성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느라 말이 길어지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요즘 너무 다른 스타일의 상사를 보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이것도 '적당'해야 하는 걸까. 상황을 봐가며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말해야 하는 것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