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은 주말이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나갈까?' 하니 둘째와 셋째가 신이 났다. 분주하게 옷을 차려입고 밖에 나가서 놀이할 준비물을 챙긴다. 남편도 씻고 옷을 챙겨 입었고, 나도 먹은 걸 치우고 준비를 한다.
흥미 없이 누워있는 딱 한 사람, 올해 열두 살 먹은 첫째다. 다들 들떠하는 분위기를 알면서도 남 일인 양 잠옷바람으로 뒹굴거린다.
"하나야, 나가자"
" 싫어."
" 같이 가자~ 집에 있기 답답하잖아."
" 안 답답해."
" 애들 다 준비했잖아. 같이 가자~."
" 나가기 싫어. 나는 집에 있을래."
" 너랑 같이 가고 싶단 말이야. 네가 필요해."
" 아니~ 내가 안 나가겠다는데 왜~ 싫어!"
" 자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 뜻대로 하자. 안내면 나간다. 가위바위보!"
" 아니 왜 내가 나가는 걸 가위바위보 하는 거야!?!?"
(툴툴대면서도 손은 내민다. 하나는 보를 냈고, 나는 가위를 냈다.)
" 엇 네가 졌네. 나가자!"
" 안 가, 안 간다고~"
십여 분을 얼르고 달래고 해 보아도 아이의 의사가 확고하다.
다 같이 나가는 게 아니라면 나가지 않겠다는 남편의 의사도 확고하다.
합의되지 않는 긴 대치상태에 가족들 모두 다 기분이 나빠졌고, 외출은 무산되었다. 둘째와 셋째는 울먹이다가 둘이서만 노는 모양이고, 남편은 대낮부터 맥주를 한 잔 하는 것 같고, 조율해보겠다고 애쓰다가 지쳐버린 나는 잠들었다.
사실, 큰 아이의 말이 맞다. 아이가 나가고 싶지 않다는데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야 옳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걸 알면서도, 그저 아이한테 졸라대는 거란 걸 알면서도, 속마음은 같이 나가고 싶었다. 요즘 틈만 나면 제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는 녀석, 이 녀석과 더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이의 핸드폰엔 비번이 걸려있은 지 오래고, 누굴 좋아하는지 얘기도 안 해주고, 일기장을 못 보게 한 지도 꽤 됐다. 예전엔 아이가 먼저 놀자고 다가왔다면, 요즘엔 내가 아이랑 같이 있고 싶어서 아이가 좋아하는 게 뭘까 고민 고민해서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판국이다.
그 날 오후, 남편과 둘이서 얘기할 시간이 생겼다. 내가 말했다.
" 하나가 나가기 싫다는데, 아이 말을 들어주는 게 맞았나 봐."
남편이 말한다.
" 이렇게 같이 안 하기 시작하면, 이젠 같이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서 그랬지."
나는 대답했다.
이미 그런 날이 온 걸지도 몰라.
작은 너에겐 엄마인 내가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네가 나를 찾아서, 때로는 '엄마'라는 그 단어가 너무도 듣기 싫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를 그만 좀 부르라며 제발 혼자 있게 좀 두라며 내가 먼저 방에 들어가곤 했는데.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나한테만 붙어있던 아이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며 내 품을 떠나려는 아이, 낯설다. 벌써 이럴 때가 되었나.
아이를 내버려 두는 것이, 아이를 존중하는 것인지, 아이를 방임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이와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 아이의 성장을 막는 질척거림인지, 아이를 챙기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이와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 날 오후, 남편은 나가고 싶어 하는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나가서 산책을 하고 왔고, 나는 집에 있고 싶어 하는 큰 아이와 함께 홈트를 하고, 수플레를 만들어먹었다. 이렇게 다행히(?) 이 날은 모두가 행복하게 마무리되었다.
앞으로도 한동안 아이는 밀어내고, 나는 당기는 밀당이 지속될 것이다. 밀어내는 힘이 더 강할 것이고, 결국 아이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동안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외쳐댔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이와 멀어지고 싶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아이는 영원히 나를 찾을 것이라고 오만하게 착각했던 것일까.
멀어지다가 끊어지게 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솔직히, 끊어져 버릴까 두렵다. 마음속 깊은 곳의 본심은 이거다.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이가 딱히 그런 조짐을 보인 것은 아니니 아이한테 문제가 있다기보단 내 마음속의 문제일 것이다. 아마도 나와 나의 엄마 사이의 문제일 텐데, 한동안 묻어두고 살았던 내 그림자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의 엄마와 나의 관계가 대물림될까 봐 두려운 걸까? 내 아이는 나와 다를 테니, 그저 믿어주면 될까?
이건 정답지도 없고, 지도도 없고, 등대도 없는 문제다. 마음이 파도 위에 떠있는 배처럼 한없이 불안하다.
하아, 열두 살짜리 딸을 키우는 엄마 노릇은 처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