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만족하십니까?
평소의 나라면 5점 만점에 4.5점이라고 대답했을 거다. 좋은 남편과 사랑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직장과 집을 오가며, 가끔 여행도 가고, 크게 아픈 곳 없고 근심거리 없이 제법 잘 지내고 있으니까.
별일 없이 지내는 게 분명한데도, 유난히 축 쳐지는 날이 있다. 오늘처럼. 다른 사람들의 말이 곱게 들리지 않고, 어떤 걸 봐도 삐딱하게 해석되고, 기운도 없고 기분도 별로라 움직이기도 싫고, 도통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 날.
이런 때엔, 내가 줬던 삶의 만족도 별 4.5개가 의심스러워진다. 과연 그럴까?
별 4.5개쯤 되려면, 일은 그저 취미여야지. 몇 달째 장바구니에 넣어두기만 한 옷들 따위, 걱정없이 지를 수 있어야지. 둘째 아토피는 도무지 낫질 않고, 첫째는 이제 성장이 멈춘거같은데 키가 너무 작고, 막내는 학교가야 하는데 아직도 한글을 모르고, 걱정거리가 이렇게 많은데 점수가 저렇게 높은 게, 맞아?
진짜, 잘 살고 있는 걸까?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오리발 같은 일에 치여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정신없이 물밑에서 발을 굴러주면, 주위에서 칭송받고 먹이를 얻어먹는 건 내 주변 사람들인 것 같다. 상사에게 인정받고 특진하는 잘나가는 회사 사람들, 애들 스케줄 따위 신경 안쓰고 회사만 다니면 되는 남편, 어려운 일 힘든 일 있을 때 엄마만 찾으면 되는 아이들.
뒷감당 생각않고 일을 저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학교 알림장 신경쓰지 않고 휭하니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프다 힘들다 어리광 피울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디서도 딱히 칭찬받지 못하는데, 아둔한 건지 성실한 건지, 해야 할 일이 마음에 걸리고,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며 오리발 노릇을 계속하고 있다. 하염없이 동동대면서, 생각한다. 이것도 저것도 하고는 있으니까, 이만하면 워킹맘 노릇을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역시, 혼자만의 정신승리였을까.
오리 머리나 오리 날개 노릇은 안 하는 걸까, 못 하는 걸까? 오리 발 노릇에 익숙해진 걸까, 원래 이런 일을 잘 하는 성격인걸까? 여자라서, 엄마라서 이런 일을 하는 걸로 학습된 걸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족쇄를 채운 걸까?
어릴 때 한비야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세계를 거침없이 다니며 오지탐험도 거뜬하게 해내는 모습이 멋있어서, 한비야처럼 살고 싶다하니, 엄마가 답하셨다.
" 엄마도 결혼 안했으면 그렇게 살았을 거야."
흘려들은 척했지만 왠지 마음이 아려서, 아작도 엄마의 그 말을 기억한다.
아빠와 자식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엄마의 날개를 묶어버렸던 건 아닐까.
엄마의 희생이 있었기에, 내가 이만큼 클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엄마가 된 이상, 나도 아이들의 발판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날개가 있으면, 나는 날아갈 수 있을까?
아이 셋이 되기 전엔 날개옷을 주지말라 일렀거늘,
나무꾼이 아이 둘일때 날개옷을 돌려준 바람에 선녀가 양 팔에 아이를 끼고 하늘로 떠나간 얘기가 맘에 유독 와닿는 날이다.
왜 하필 셋인건데.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