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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Jul 25. 2020

누가 누굴 챙겨주는 건지

7시가 좀 넘은 시각, 퇴근 전 마지막 메일을 쓰던 중이었다. 전화가 울려서 보니 둘째다. 평소에 전화기도 잘 안 챙기고 전화도 잘 안 하는 녀석인데, 시터 이모가 퇴근하시고 애들만 있는 시간이라 무서웠나 보다.

" 엄마, 언제 와?"

" 응, 메일 하나 금방 쓰고 갈 거야. 5분 정도? 금방 갈게~"

" 네 빨리 오세요. 엄마 사랑해~"


이 녀석은 꼭 전화 마무리에 '엄마 사랑해'라고 한다. 나도 쑥스러워 잘 못하는 말을 먼저 해주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메일 전송! 짐 챙기고 일어서는데 주변이 분주하다. 갑자기 비가 온다며 여기저기서 우산 찾고 빌리고 한다. 음, 나는 우산이 없는데... 창밖을 보니 그렇게 비가 거센 것 같진 않다.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니까 후딱 비 맞고 뛰어가기로 마음먹는다. 오, 마침 마주친 후배가 길 건너 정류장까지 우산을 같이 쓰자 한다. 그럼 절반은 우산 쓰고 갈 수 있다. 잘됐다.


후배와 회사 문을 나선다. 길 건너서 정류장을 지나 5분 정도 더 걸어가면 우리 집이다. 어떻게 뛰어가면 좋으려나 정류장을 바라보며 가늠하려는데, 퇴근길 사람 많은 버스 정류장에 작은 아이 둘이 오롯이 서 있는 게 보인다.


'음? 퇴근 시간에 버스정류장에 웬 아이들이 있지?... 어?? 뭔가 익숙한데?'


엇, 다시 보니 우리 집 둘째와 막내다! 아니 집에 있어야 할 녀석들이 여긴 왜...!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니 신나게 손을 흔들고는 다가온다. 가만 보니 우산이 세 개다. 아니 이 녀석, 설마 엄마 비 맞을까 봐 마중 나온 거야?


" 우와, 엄마 마중 나온 거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어?"

" 엄마, 비 오는데 우산 안 가져갔잖아. 비 맞을까 봐. 내가 요즘 엄마 마중 나오고 싶었는데 비가 오길래 오늘 가야겠다 생각했지. "

" 아, 너무 고마워. 엄마 정말 감동했어. 혹시 엄마 오래 기다렸어?"

" 아니, 막내 데리고 준비해서 나오느라 좀 오래 걸렸어. 우산을 옆으로 씌워주는 거 힘들어서, 정류장에서 쉬고 있었어."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아이들을 잘 둔 덕에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퇴근했다. 정작 나는 하교시간에 비와도 우산 들고 간 적이 없는데...... 이런 이쁜 마음 씀씀이는 어디서 배웠을까.




둘째 아토피가 심해져서, 병원에 가기로 한 날이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잠깐 나오기로 하고, 둘째와 약속을 잡았다. 9시 반에 상가 앞 병원에서 만나기로.

약속시간 알람에 부리나케 나와보니, 저 멀리서 둘째가 해맑게 웃으며 종종종 뛰어오고 있다. 오늘도 우산을 두 개 들고. (새벽녘에 비가 왔다가 주춤한 날이었다. 엄마가 우산 없이 출근한 걸 알고 또 챙겨 왔다.)

가만 보니 다른 한 손에 쇼핑백이 들려있다.

" 두나야, 이건 뭐야?"

" 응, 이거 오미자차랑 삶은 달걀인데, 엄마 회사 가서 먹으라고."

하... 고사리 손으로 오미자청에 탄산수 섞어 오미자 에이드를 만들어 보온병에 고이 넣어왔다. 달걀도 전자레인지에 삶아서 곱게 락앤락 통에 담아왔다.


마음 씀씀이가 참 예쁘다. 고맙고 뭉클한 마음 끝이 켕긴다.

이 녀석아, 엄마가 너를 챙겨야지 네가 왜 엄마를 챙기니.

혹시, 엄마 사랑이 부족해서, 사랑받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두나가 기특하지만, 두나가 일부러 애쓰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애쓰지 않아도 자체로 빛이 나는 아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고맙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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