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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Aug 25. 2020

출근길의 재발견

남편이 재택근무하는 날이라, 평소 같이 등원하는 막내도 맡겨두고 새벽같이 혼자 출근했다. 


아파트 1층을 나서니 바람도 시원하고 공기도 상쾌하다. 평소보다 일찍 나와서 그런가. 사람도 별로 없고 쾌적하다. 시작이 좋다.


화단 한구석 길모퉁이에 햇반 빈그릇이 놓여있다. 아, 우리 동네에도 고양이 밥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는가 보다. 빈 것을 보니 길냥이들이 밤새 잘 먹었나 보군. 종종 보이던 삼색 길냥이일까 생각하며 걸음을 옮긴다.


가까운 어딘가에서 '구구, 구-, 구구' 새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산비둘기가 한 마리 나무 위에 앉아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이 비둘기의 울음에 화답하듯 저 멀리서 '구구, 구-. 구구'소리가 울린다. 사진을 찍을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비둘기가 날아가버렸다. 일반적으로 보는 비둘기 아니고 산비둘기라서 예쁜데, 다음에 만나면 담아봐야겠다. 



상가에서 관리하는 듯한 동그란 화단에 두어 달 전 새로 입주한 식물이 가지다. 작년에도 그랬는데, 왜 하필 가지를 심는 건지 의아하다가도, 지나가면서 가지가 자라나는 모양새를 보자면 귀여워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가지가 영어로 'eggplant'라는데, 가지 열매가 막 맺힐 때 보면, 왜 에그 플랜트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옆 화단에 있는 이름 모를 식물은 아침을 맞이하듯 잎사귀를 한껏 올리고 있다. 특이하게, 이 식물은 저녁이 되면 잎이 축 늘어진다. 나름대로 광합성에 최적화하기 위해 애쓰는 걸 보여준달까. 엊저녁에 비실비실하던 걸 봤는데 아침에 다시 생기 있는 걸 보니까 마음이 좋다.


지나다 보니, 벌써 털이 복슬복슬한 목련 봉오리가 맺혀있다. 봄에 꽃피기 직전에 보던 것 같은데, 이 나무가 설마 계절을 착각한 건 아닐까 괜한 걱정을 해본다. 


우리 동네엔 무궁화가 많다. 화단 안쪽에 주로 심어져 있어서 잘 보이진 않지만, 꽤나 무궁화가 많이 피는 편이다. 무궁화 꽃은 매일 아침 폈다가 매일 저녁 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보는 이 무궁화는 오늘 아침에 피어난 것일 터. 오늘 하루 원 없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가길 바라본다.


교회 옆 화단에는 맥문동이 많다. 잎사귀 색이 진하고 잎이 너무 무성해서 평소 썩 좋아하진 않는 식물인데, 최근 꽃이 만발해서 눈길을 끌던 아이다. 오늘 아침엔 벌써 꽃도 좀 시들해졌다. 이렇게 금방 지는 것을 평소에 너무 미워했는가 싶어 조금 미안해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감나무에 푸릇한 열매가 달렸다. 동그랗고 퍼런 땡감. 지금은 저래뵈도 시간이 지나면 대봉감처럼 커지고, 새들의 먹이가 되어준다. 




이제 초록초록 구간이 끝났고, 상가를 지나면 회사다. 치킨집이며 다른 음식점은 고요한데, 커피집들은 이미 영업이 한창이다. 커피집이 5개도 넘는데, 모든 커피집이 활기차다. 출근길 사람들이 가장 많이 커피를 찾는 시간대일 터. 주변을 보니 영양제처럼 아메리카노 하나 집어 들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두리번두리번 주변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덧 회사 앞이다. 아이랑 다닐 땐 이런 게 안보이던데, 오늘은 여유롭게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어 유난히 충만하던 출근길이다. 

다시 보니 예쁘다. 내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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