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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Jul 20. 2020

아이가 발뻗고 누울 자리

코로나 19로 주중에도 가족들이 모두 집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학교도 안 하고, 학원도 안 가고, 나도 돌봄 휴가를 내고 집에 있던 시절에, 하루 종일 부대끼고 있던 우리 가족에겐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는 둘째를 잡아댄다. 각종 심부름을 시켜먹고, 어쩌다 둘째가 들이받으면 온갖 말로 둘째를 몰아붙였다. 너도 저번에 그랬다는 둥, 나는 공주 쿠폰을 썼으니까 네가 해야만 한다는 둥, 언니가 저번에 뭐 해준 거 네가 잘못해서 어떻게 됐다는 둥. 약간 비약적일 때도 있으나 첫째 나름대론 맞는 말이고, 둘째 입장에선 억울할 법한데 일방적으로 둘째가 당하는 양상이다.


둘째는 셋째의 군기반장이 되었다. 첫마디부터 셋째한테 정리를 안 하네 대답을 안 하네로 소리부터 질러대는 통에, 셋째가 놀람 반 거절 반으로 얼어서 가만히 있으면, 둘째가 셋째한테 다다다다 쏘아붙인다. 둘째의 논리는 주로 규범을 안 지켰다는 건데, 맞는 말이긴 하나 아무리 봐도 냅다 소리부터 지르는 모양새가 고쳐주기 위함은 아닌 것 같고 화를 푸는 용도 같다.  


6살 막대는 엄마한테 갑자기 애기 노릇을 해댄다. 평소에 잘하던 것도 징징대고 안 하겠다 하고 어깃장을 놓는다. 씻자고 해도, 먹자고 해도, 뭘 해도 튕기고 싫다고 해대는 녀석,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지지고 볶아 보자니, 이거 이거, 당하는 입장에서 보통 일이 아니다.


코로나 덕에, 우리 집의 피라미드가 분명해졌다.


여럿이 작은 공간에서 24시간 붙어있다 보면, 서로 간의 역학관계와 위계가 보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 지금 우리 집은, 꼭대기에 있는 1순위 첫째에서 2순위 둘째로, 3순위 막내로, 밑바닥에 내가 있는 모양새인 것 같다. 그러니까 엄마인 나는, 내 밑에 누가 없으니까 바닥 of 바닥에 있는 셈이다.


누군가에게 성질내고 짜증내고 막대한다고 하는 건, 상대방이 만만하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첫째는 둘째가, 둘째는 셋째가, 셋째는 엄마가 만만한 거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화낼 수 있는 상대니까 화를 내는 거지. 상대방이 무섭고 힘센 누군가라면 말도 제대로 못 꺼낼 거 아닌가.


아무리 엄마라도, 아이들의 밑바닥을 당연하게 받치고 있는 건 아니다. 답답해하는 아이들의 신경질을 받아주고 있는 건, 고된 일이다. 솔직히 코로나 19의 여파가  유독 나한테만, 엄마라는 이유로 특히나 나한테만 직격탄으로 날아드나 싶어 억울할 지경이다.




친정엄마는 깜빡이를 켜지 않고 나에게 조언을 하신다.

" 첫째 딸 두고 어디 갔는고? 하나 혼내지 말고 잘 다독이거라."

" 이모님 오시는가? 애들 학원 가기 전에 뭐라도 챙겨 먹여라."

" 애 키 키우려면 운동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


충분히 맞는 말이고 친정엄마가 할법한 말인데, 유난히도 듣기가 싫다. 속이 꼬인 나는 까탈스러운 딸이 된다.

" 네"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말거나

얘기해도 해도 도돌이표가 되는 거 같을 때는 전화로 결국 화를 내고 만다.

" 애 안 혼낸다니까? 혼내기라도 하면 억울하지나 않겠다. 안 혼낸다고! 아니라니까 왜 믿지 않아? 왜 자꾸 애를 혼내지말래? 왜 나를 애 혼내는 엄마로 만들어?"


아이 피부가 안 좋아서 병원에 데리고 가고 싶은데 무작정 병원이 싫다는 아이랑 한 시간여를 실랑이 한 날이었다. 깜빡이 없이 들어온 엄마의 연이은 질문에 답하다 답하다 결국, 어쩌냐는 엄마한테 충분히 나름대로 챙기고 있으니 제발 그냥 좀 두고 기다리라려달라하니, 엄마가 말한다.



힘들어도, 내 자식이 맘 편하게 누울 자리 내어주려는 게 엄마맘이다.

나는 내 새끼들의 엄마라 고되다. 우리 엄마는 나 때문에 서럽다. 할머니는 엄마 때문에 걱정이 한가득이시다.


내가 피라미드의 바닥인 줄 알았는데, 엄마가 있었다.

엄마덕에, 버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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