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여자

by 미선씨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中


결혼전에 예비 신랑에게 말했었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게 되더라도, 나에게 OO엄마라고 부르지 말아줘.
내 이름이 있는데 OO엄마로만 불리면 우울할 것 같아.'
나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꽃이 되고 싶었다.




요즘 나는 30년 만에,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로 결심하고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다.
사정상 결석을 해야 해서,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 예 학원입니다~"
" 아... 저 부원장 선생님한테 레슨받는 애기엄마인데요."

내 이름, '김미선'을 이야기해도 상대방이 못알아들을 것 같아서, 구구절절 나를 설명했다.
그리고 이젠 결혼 전 상상했던 것만큼 누구 엄마라는 호칭이 우울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나를 'OO엄마'라고 지칭했다.

" 아... 김미선씨?"

순간 머릿속이 쨍 하고 울린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랬구나. 내가 지레 겁먹고, 내 스스로, 내 이름을 버렸었구나.

한동안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거나, 심지어는 그냥 아이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그러다보니 어쩌다 병원에 가면, 대기하다 이름불려 들어갈 때 내 이름이 낯설어서 놀라기도 했다.

딱히 내 이름을 챙기고 다니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것을 보면,

난 이 사회에서 누구 엄마로만 기능하고 있구나 싶어서 조금, 우울해진다.


그나마 나는 회사에서 김미선 과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남편도, 결혼 전 내 당부대로 충실하게 나를 '김미선'이라고 불러준다.

앞으로는 좀더 다양한 역할로 내 이름을 만나려고 한다.

내 이름을 내가 지키는 것,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 이름으로 불리우다 보면, 엄마역할에만 매몰되지 않고 미선씨 자체로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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