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파티

by 미선씨

피아노 학원에서 파티를 한다고 공지가 떴다.


일시 : 토요일 늦은 8시
준비물 : 튼튼한 간과 건강한 체력
feat. 술 전래 잘 먹는 실장


......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이 넘쳐나는 파티일 것 같아 망설여졌다.
심지어 파티 참석자 명단을 쓰는데, 다른 수강생한테는 직원이 빨리 신청하라고 막 권하면서,
바로 앞에 있는 나한테는 권하지도 않는다.


근데 영 궁금하다. 가고 싶긴 하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파야지. 먼저 물어보기로 했다.
"아... 파티엔 젊은 친구들이 주로 오나 봐요?"
"아니에요. 30대 중후반이 제일 많고요. 다양하게 오세요. 여기다가 신청하시면 되요~"
이건 뭐 옆구리 찔러 절 받기다. 하하.


토요일 8시. 내가 시간을 낼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신랑이 단칼에 잘라버릴까 봐서, 속으로 엄청 떨리지만, 카톡으로 물어본다.
"신랑~피아노 학원에서 파티하는데, 가도 돼?"
....
...
"언젠데?"
오... 단칼에 자르지 않았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래서 이야기해봤더니, 그날 신랑은 친구들이랑 1박 하며 놀려고 했단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다. 그간에 신랑이 애를 많이 썼으니, 파티는 또 있으니,
이번에는 내가 보내주고 다음엔 내가 파티에 가야지 하고.
근데 자꾸 파티 생각이 맴돈다. 되게 가고 싶은가 보다.
그래서 결국 잘 안 쓰는... 친정엄마 찬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파티 날이 되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하는 파티라서, 미리 신청한 몇 명이 미니 연주회를 한다.
첫 번째 주자는 환갑이 넘으신 어르신이다.
안 그래도 학원에서 오며 가며 종종 만났던 분인데,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셔서 속으로 저분 누굴까 궁금해했었다.

어르신은 본인이 칠 바흐의 곡에 대해서 차분하게 설명하셨다.
큰아들을 위해 쓴 곡인데, 보통은 연습곡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연주곡이라고.
준비하신 마음이, 긴장해서 나오는 떨림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 차분한 연주다. 완성도와 스킬 면에서는 사실, 일반 연주자와 비할 바가 아니다.
심지어 중간중간 많이 틀리고, 음 하나하나 누를 때도 많이 떨렸다.
한마디로 '잘 한 연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연주'였다.

유시민 말이 떠오른다. 대통령 토론의 목적은
'토론을 잘해서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많은 표를 얻는 것'이라고.
피아노 연주의 목적도, '연주를 잘 하기 위한 것'으로 많이들 생각하지만
사실은 '청중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연주였다.
솔직히, 어르신보다 내가 더 잘 치긴 한다. 하지만 저 어르신만큼 청중의 마음은 못 움직일 것 같다.
다른 분들의 연주도 그런 느낌이었다.
청중이 모두 다 같은 수강생이다 보니, 저 자리에 내가 있었을 때 내 마음은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다들 진지하게 듣고,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훌륭한 연주에 대해 아낌없이 감사의 박수를 쳤다.
그 분위기가 좋았다. 이번에는 신청하지 않았지만, 다음 파티 때는 나도 연주를 신청해야겠다 생각했다.


낯설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들은 할머니 집에서 곤히 잠들어있다.
많이 컸다. 엄마가 이런 시간 보낼 수 있게 도와도 주고.
나에겐 이번 파티가 힐링의 시간이었다.
오늘 얼굴 익힌 친구들도 좀 되니까, 다음번 파티에서는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다음번엔 연주자로도 도전해야겠다.
악보도 못 외우고, 내 실력에 무슨 연주냐 싶어 이번에 신청 안 했는데,
틀렸다고 비난할 청중이 아니라는 것,
진심과 성의를 다하는 내 마음을 알아줄만한 청중들이라는 확신을 받았다.

용기 내어 참여하길 정말 잘했다.
음학 이 아닌 음악임을, 즐기기 위한 음악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던 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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