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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Oct 09. 2020

소소하고 소중한 하루

잠이 깬다. 눈을 슬금 떠서 시계를 보니 아침 8시다. 조금 더 누워있을까 고민을 하며 뒤척인다. 문득 옆을 보니, 막내가 곤히 잠들어 있다.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 마법 같아서, 모든 근심 걱정을 잊게 한다. 홀린 듯이 정신을 놓고 막내를 바라본다. 토실한 볼이며, 곤히 잠들어 있는 평화로운 표정이며, 봐도 봐도 내 새끼지만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말랑한 발도 만져보고 손도 만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 자동차처럼, 막내 이 녀석은 존재 자체로 나에게 힐링이 된다. 내가 막내를 키우는 걸까, 막내가 있음으로 내가 힘이 나는 걸까. 예전에는 전자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후자인 것 같다.  


그렇게 잠시의 힐링의 시간을 마치고 나면, 첫째와 둘째의 등교와 숙제, 온라인 수업을 챙겨야 한다. 오늘 마침 일찍 일어난 둘째가 반갑게 인사하며 말한다.

"엄마 굿모닝~ 엄마 나 꿈을 많이 꿨어. 악몽을 하나 꿨고, 좋은 꿈도 2개나 꿨어."

사실 이 시간에는 아이들 아침 차리고 점심도 준비해야 해서 아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바삐 손을 움직이면서 건성으로 넘기며 최소한의 맞장구를 쳐주자는 마음으로, 어떤 꿈인지 물었다.

"응, 돼지가 나왔는데, 금색이었어. 그 돼지가 나한테 와서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어라? 이것은 말로만 듣던 황금돼지꿈이 아닌가! (솔직히 정신이 없어서 뒷얘기는 잘 기억이 안 난다. 하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로또를 사야겠다 다짐한다.

 

어찌어찌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잠깐이라도 짬 내어 로또를 사러 가려고 일정에도 넣어뒀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황금돼지꿈을 이렇게 날릴 수는 없는 일. 다급히 퇴근 신랑한테 연락한다.  

"신랑, 두나가 돼지꿈 꿨대. 로또 좀 사 와요."

" 두나한테 번호 6개 찍으라 그래."

이거야말로 오늘 꼭 해야만 하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둘째를 불러다 번호 1~45중에 6개 써보라고 시킨다. 두나는 이런 걸 왜 하냐고 묻는다.

" 좋은 꿈 꿨잖아. 그러면 로또 사야지. 두나가 마음에 드는 번호로 골라 봐. "

" 진짜? 아빠가 로또 사오는거야? "

본인 꿈에서 시작된 작은 이벤트가 재미난지 둘째가 즐거워하며 꼬물꼬물 번호를 적고 있으니까 막내도 뭐 하는 거냐며 와서 자기도 하겠단다. 아이들이 깔깔대며 적은 번호 6개 씩을 신랑에게 주문해놓고, 바쁘게 저녁을 차려서 아이들과 함께 먹는다.


후딱 밥을 먹고 나서, BTS 영상을 찾아 틀었다. (참고로 첫째 하나는 한동안 BTS에 빠져있더니 요즘엔 투바투라는 그룹에 매진 중이다. 엄마인 나는 최근에 BTS에 입덕 했다.) 둘이서 BTS 영상에 빠져들어 신나게 감탄하고, 소리 지르고, 욕도 한다.


" 꺄아 나는 쩔어에서 저 부분이 제일 좋아. 지민이 춤 진짜 쩔어!"

" 오 정국이 저런 옷 너무 잘 어울린다. 정국이 어떻게 목소리도 좋고 너무 멋있잖아!"

" 와 뷔 옆선 어떡해! 대박! 난 뷔 저부분 좋더라~"


두어 시간을 그러고 있었나 보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같이 좋아하는 부분이 나오면 더 환호하고, 정보도 나누고, 이렇게 모녀가 함께 덕질하는 것도 꽤 재미있다.

(어느샌가 퇴근한 신랑은 둘을 슬쩍 보고는 혀를 쯧쯧 차며 방문을 고이 닫아줬다. ㅎㅎ)



그렇게 밤 10시, 모두가 취침에 들 시간이다. 자기 전에 일기를 쓰려고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딱히 별 일은 없었지만 소소하게 즐거웠던 하루랄까. 매일이 그저 이만하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던 하루. 글로 남기며 마음에 새겨본다.

너무 소소해서, 곧 기억에서 사라져버릴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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