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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Dec 06. 2020

재택근무, 사양하겠습니다.

회사 내 건물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며, 방역을 위해 하루 재택근무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마음의 준비도, 업무용 노트북도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새벽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회사 어린이집을 다니는 막내도 당연히 등원을 못하고, 큰 아이 둘은 원래부터 학교며 학원 모두 원격수업을 하는 날이어서, 어쩌다 보니 아이 아빠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집에 있게 되었다. 


아침 일찍 회사 인트라넷에 접속해보니, 출근 다 해 놓고 회사 앞에서 소식을 들었다는 둥, 하나밖에 없는 노트북을 가족이 가지고 나가서 모바일로만 근무하겠다는 둥, 한참을 기다려서 겨우 접속했다는 둥, 사연이 다양하다. 우리 집도 노트북이 두 개인데, 두 아이 모두 아침 9시부터는 Zoom 수업을 해야 해서 한 시간 가량은 전화나 모바일 메신저로 업무를 봐야 할 판이다.


아이들 아침 차리면서, 큰아이들 수업 챙기면서, 회사의 업무연락에 촉각을 세우고 있으려니 신경이 여러 군데로 곤두섰다가 서로 막 꼬여서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멀티태스킹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상황은 내 용량을 넘어섰다. 한 놈은 음악 수업이라며 실로폰을 두들겨대고 있고, 막내는 집에 있는 엄마한테 놀아달라 보채고, 회사 업무도 어떻게 대응은 해야 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는 오전 시간이 지나고, 점심까지 차릴 기운은 도저히 없어서 중국집에 주문을 했다. 배달이 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계속 재택근무를 한다면, 우리 집은 외식비가 오히려 200% 정도 늘지 않을까. 구세주 같은 짜장면과 탕수육을 꾸역꾸역 먹는 중에도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재잘댄다. 

"엄마 이거 어떻게 뜯어요? "

"엄마, 이거 잘라주세요."

"엄마, 저도 울면 먹어봐도 돼요?"

"엄마, 배불러요. 그만 먹어도 돼요?"

머리가 폭발하기 직전이다. 더 이상 아무런 input도 받고 싶지 않다. 결국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더 이상 엄마 부르지 마. 이제부터 조용히 먹기만 하는 거야. 밥 먹고 나가서 놀다 와.


 

아이들은 손 잡고 놀이터에 가겠다며 나갔고, 그제야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있었다. 하필이면 급한 일이 있던 날이어서, 재택근무임에도 불구하고 연장근무까지 해야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 저녁시간이 되었다. 지금쯤이면 신랑이 퇴근할 시간인데, 제발, 신랑이 와서 손을 보태줬으면 좋겠는데, 연락이 왔다. 

" 나 늦어요."

하.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도 없는데. 저녁밥은 뭘 해준담. 한 끼 면을 먹었으니까 밥을 먹으면 좋겠지만... 결국 치킨집에 배달 주문을 또 했다. 아 몰라. 너무 힘들다고. 


그다음은, 블랙아웃.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평소라면 막내 재우고 나서 잠들었을 텐데, 막내를 재운 기억이 없다. 한마디로, 지쳐서 나가떨어졌나보다. 눈 떠보니 다음날 아침이고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손발에 염증이 도졌다. 


재택근무. '재택'에 포커싱을 하는 사람들은 출퇴근에 힘 빼지 않아도 되고, 침대에 누울 수도 있고, 편한 공간에서 일할 수 있으니 좋다고도 하는데, 나한텐 전혀 아니었다. 나에게는 집도 일하는 공간이라 그런가 보다. 회사에서는 회사 일만 하면 됐는데, '재택'인 바람에 집안 일과 회사 일까지 같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다. 제대로 재택근무를 시키려면, 집에서도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지원해줘야 한다. 인터넷 같은 인프라, 집에 분리된 공간이 없는 사람을 위한 선택적 사무공간, 업무용 노트북과 같은 도구, 일률적인 8시간 근무가 아닌 업무량 기반의 근무체계가 필요하다. 아무런 지원 없이 훅 시행된 재택근무는, 적어도 나에겐 정말로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못하고 몇 배로 힘이 드는 일이었다. 


재택근무는 예전에 '육아휴직'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남들은 육아'휴직'이니까, 쉬니까 좋겠다고들 했는데, 정작 나는 육아에 혼이 빠져 더 힘들었고 차라리 집을 떠나 일'만' 하고 싶었다. 돌도 안된 갓난아기 키우며 제대로 먹지도, 제 때 잠들지도 못하는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을 때, 쉬는 게 부럽다,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을 왜 이것밖에 못하냐는 말을 꽤나 많이 들었다. '육아'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들, 그들의 말이 나에겐 얼마나 상처가 되었는지도 몰랐을거다. 


재택근무라는 단어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것 같다. 누군가는 '재택'의 편안함을 상상하겠지만, 나에겐 '재택'함으로 인해 추가돼버린 집안일과 돌봄 업무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니까. 재택근무는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나 혼자 문 닫고 들어가 있을 방 4칸짜리 집도 없고, 집 밖에 나와서 있을 공간도 없고(카페도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코로나시국이다.), 아이들을 맡길 학교, 학원, 어린이집도 다 운영을 안하거나 원격수업이고, 업무시간에 날 대신해 집안일과 돌봄 업무를 전담해줄 사람도 없는 이 상황에서, '재택근무'는 어불성설이다. 


재택근무가 나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재택근무하니까 좋겠다는 말을 듣고싶지 않다. 오죽하면 이 날, 온 세상이 나에게 코로나로 인한 빈 자리를 메꾸라고 강요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니까 망정이지, 더는 못하겠다. 정말로, 더이상은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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