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선씨 Dec 13. 2020

변화가 반갑지만은 않아

여행 갈 때 계획을 짜고 가는 편인가요? 아니면 즉흥적으로 정하는 편인가요?


계획성이 넘치는 사람이었던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계획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자 어쩔 수 없이 점점 후자가 되어갔다. 지금은 이동수단과 숙소와 같이 중요한 부분만 미리 잡고 나머지는 가서 정하는 편이다. "애도 낳고 키워봤는데 내가 못할 게 뭐가 있겠어!"라는 자신감(?)도 좀 생겼고, 그때그때 상황 대처하는 능력이 늘기도 한 것 같다. 


회사에서 오랫동안 몸담았던 부서를 옮긴 것도, 저런 마음가짐으로 시도해 본 나름의 도전이었다. 고인 물에서 탈출해보겠다는 오랜 꿈을 나로선 굉장히 용기 있게 실천한 것이었고, 덕분에 2년 여, 바쁘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다. 스트레스는 제법 받았지만. 




그리고 20년 연말, 코로나가 들이닥친 지금이 또 엄청난 변화의 시기인 것 같다. 회사는 조직이 엄청나게 변해버렸고, 재택근무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서 근무형태도 완전히 바뀔 것 같고, 10년 넘게 아이들과 아침에 헤어져서 저녁에 만나는 생활을 해왔는데 이제는 하루 종일 같이 있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번 주말에는, 변화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먼저, 재택근무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화장품과 아이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던 화장대를 정리해서 '나의 업무공간'으로 세팅했다. 신혼살림 마련할 때,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산 커다란 화장대였는데, 화장도 썩 하지 않고 해서 13년간 거의 처박혀있다시피 했던 곳이다. 오늘을 위해서 13년 전에 샀던 건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난다. 


조직이 바뀌었으니 업무보고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조직장이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 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재택근무를 하며 업무보고를 해야 할 텐데, 예측이 안되니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걱정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한다. 해온 업무와 예정된 업무를 리스트업 해둔다. 내 머릿속에서라도 정리가 되어 있어야 상황 대처를 할 수 있을 테니.


업무시간엔 아이들과 접촉을 줄여야 한다. 큰 아이들은 매일 해야 할 문제집 풀기 등을 분량을 지정해서 미리 일러두고, 막내는 혼자 시간 보내기를 어려워하니까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학습도구를 신청해뒀다. 학습효과를 기대하는 건 아니고, 언니들 방해하지 않고 혼자서 조금이라도 뭘 했으면 하는 마음인데, 잘해줄는지 걱정이 된다. 막내도 적응해야지 어쩌겠나. 이젠 학교도, 학원도 잘 안 가는 시국이니까... 


아이들과 삼시 세끼를 해 먹어야 하니, 각종 레토르트 등 먹을 것을 잔뜩 사서 냉장고를 채웠다. 아침에 아침과 점심 두 끼니를 미리 해둘 참이다. 내일 메뉴도 미리 생각해두고, 해동이 필요한 건 미리 빼둔다. 

그밖에, 다음 주에 해야 할 각종 집안일과 돌봄 관련 일을 리스트업 해봤다. 하아, 리스트가 끝이 없다. 이 와중에 애들 병원도 가야 하고 주방 수전도 수선해야 하고 시험공부도 해야 하고 집 정리도 해야 한다. 




잘할 수 있을까? 

재택근무를 하면서 새로운 조직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까?

아이들하고 부대끼고 있는데 업무에 구멍 내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와중에 집안일도 처리하겠다는 건 욕심인가? 


그냥 오늘은 좀, 내려놓고 싶어 진다. 왜 이렇게 치열해야만 하지. 그냥 조금, 쉬어가면 안 될까. 내 사전에 여유로운 인생이란 건 없는 건가. 코로나 블루 까지는 아니어도, 에너지가 떨어지긴 했나 보다. 변화에 적응해야지 하며 준비하다가, 심드렁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익숙했던 것들의 소중함도 자꾸만 떠오르고 말이다. 

다음 주가 기대보다 괜찮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또 달려갈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재택근무, 사양하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