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말, 꽤 길게 일정을 잡고 제주에 와 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유명 관광지는 입장 금지 조치가 되었고, 식당들도 9시 이후로는 문을 닫는다. 겸사겸사 연말에 쉬거나 단축 운영을 하는 식당도 많은 듯하고, 소규모 가게들이 많아서 그런지 개인적인 사정이나 날씨로 인해서 오픈 시간이 조정되는 곳도 많은 것 같다. 제주도의 카페나 식당은 아직 서울처럼 배달앱이 아주 활성화되어있진 않고, 포털에 올라오는 정보도 매일 바뀔 수 있다 보니, 가서 허탕 치지 않으려면 사전에 꼭 '전화'를 해보거나 '예약'을 해야 한다.
낯선 곳에 다짜고짜 '전화'를 한다는 게, 꽤나 낯설다. 분명히 배달앱이 막 생겨날 때만 해도
'전화하면 되는데, 그걸 굳이 앱으로 수수료 내가면서 시키는 사람이 있다고?'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릴 때 집전화번호 친구 집 전화번호 외워가며 '아날로그 전화'로 소통하던 나도 어느새 '디지털화' 되어 버렸나.
코로나로 대면활동을 최소화하는 요즘, 여러 가지 장치가 빈틈을 메워주고 있다. 비접촉 체온계부터, QR코드 출입기록, 온라인 사전예약, 스마트 주문 등. 온라인으로 대부분의 활동을 처리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제주에서 유독 자주 '전화'를 통해 상대방의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마주하니 느낌이 좀, 예스럽고 정겹고 낯설다.
어제는 비가 와서 넥슨 컴퓨터 박물관에 다녀왔다. (컴퓨터박물관이라고 쓰고 게임박물관이라고 읽어야 될 것 같은 곳이다) 박물관 2층에는 '게임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 테트리스, 갤러그부터 플스 5와 VR까지 다양한 게임들을 해볼 수 있었는데, '게임의 역사'를 몸소 체험했던 우리 부부는 신이 났지만, 이미 디지털에 노출될 대로 노출된 아이들은 화질도 좋지 않고 조작도 어려운 게임에 썩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큰아이는 Just Dance를, 둘째와 셋째는 신상 플스 5를 열심히 하고, 여긴 마치 PC방 같다며 즐거운 관람을 마쳤다.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보면, 현직 산타와 예비 산타인 큰아들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최신식 장비를 갖추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선물 하나가 빠져버린 사고가 나고, 결국 할아버지 산타의 썰매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이야기인데, '산타의 초심 찾기'와 '나무썰매'가 묶여서 표현된다. 아날로그 시대부터 살아온 나도 약간 그런 느낌을 받는다. 디지털의 편리함이 좋긴 하지만, 사고가 생기거나 하면 결국 아날로그 지식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괜한 우려인가. 다른 면으로 보면, 내 아이들도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욕심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