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선씨 Jun 20. 2021

이번 주의 나를 칭찬해

휴직 8주 차

아침부터 서로 폰을 쓰겠다고 투닥대는 아이들 때문에 화가 치솟는다. 한놈은 하염없이 덕질에 빠져있고, 한놈은 게임하고 웹툰을 보겠다며 인터넷이 되는 폰 하나를 서로 쓰겠다고 틈만 나면 말다툼이다. 애들을 잘못 키운 걸까 불안해지고 우리 집 인터넷 사용 정책을 좀 바꿔야 할까 싶기도 하고, 생각이 꼬리를 물더니 결국 부모인 내 잘못인가 싶은 자책감이 몰려다.


씁씁 후후,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무조건 금지시켜봤자 독이 될 테고...

조금만 더 차분해지자. 마음을 다스려야 해.

이것은 내가 지금 나에게 줄기차게 외우는 주문이다. 제발, 주문아 먹혀라.




애들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이번 주의 나에게로 관심을 돌려본다. 부지런히, 열심히 살았다. 꼭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싶어서, '열심히'라는 단어가 썩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산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만족스러운' 하루하루였기 때문에 이번 주가 제법 마음에 든다.


1. 매일매일 일기를 돌아보니, 초록 초록하다.

짧게라도 그날그날의 간략한 일기를 쓰고 그날의 기분을 색으로 표현하는데, 보라색이 불만족이고 초록색이 만족이다. 이번 주는 7일 중에 6일이 짙은 초록색, 하루가 '만족' 연두색이다. 이만하면, 이번 주 일주일도 잘 살았다.


2. Run day 달리기 8주 달리기 프로그램의 절반까지 완주하다.

Runday 달리기는 8주 동안 조금씩 달리는 시간을 늘려가며 마지막 8주 3회 차에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게 해 준다는 프로그램이다. 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이기에 설마 하며 시작은 했는데, 어느덧 4주 3회 차, 딱 절반까지 완주했다. 1주 1회 차를 헉헉대고 뛰던 그날의 기분이 기억나는데, 4주 3회 차라니, 장하다. 솔직히 더 힘들어질 앞으로의 4주가 매우 걱정되긴 하지만, 런데이 트레이너 말처럼,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


3. 체중 감량이 되고 있다.

애초 운동을 억지로 시작한 이유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만날 집에서 드러누워 뻗어있는 모습이 나 스스로도 별로여서, 적어도 하루 일과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추고자 주 2회 정도 그룹 트레이닝과 주 2~3회 걷기를 하고 있는데 덩달아 체중이 조금씩 빠지고, 내가 거울로 보기에도 붓기(... 살이었을까?)가 좀 가라앉는 게 보인다. 그래서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가는 게 조금씩, 기대가 되는데, 이번 주에 드디어 1차로 목표했던 앞 자릿수에 도달했다. 이 체중은 아마도 첫째 낳기 전에 몸무게였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13년 만에 다시 보는 숫자다. 와우! 식단까지 해서 힘들게 뺄 생각은 없지만, 휴직하는 1년 동안 운동 꾸준히 하며 결혼식 때 몸무게까지 가는 걸 목표로 할 참이다. 잘하고 있다. 스스로 칭찬해.


4. 막내 하교 마중 가다.

그간 계속 일을 하고 있었기도 하고, 원체 집이 학교 바로 앞이기도 해서, 아이들 등하교를 챙겨준 적이 없다. 누군가가 데리고 오고 가지 않으니까, 우리 집 아이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스스로 우산을 챙겨가거나, 빌려오거나, 정 없으면 멀지 않으니 그냥 뛰어오는 데 익숙하다. 나는 아이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이해할만한 상황이기 때문에 여태껏 그 점이 미안하진 않았고, 다만 하교시간에 학교 앞에 잔뜩 와계신 부모님, 조부모님들을 보면서 조금 의아해하긴 했었다. 1학기 시작된지도 벌써 한참 지났는데, 아무리 저학년이라도 꼭 저렇게 챙겨줘야 할까 싶었다.

지금 우리 집 막내는, 둘째가 데리고 하교하거나 혼자 오곤 하는데, 이번 주에는 하교 시간에 두어 번 시간 맞춰 내가 마중을 나가봤다. 우리 애 언제 나오나 목 빼고 기다리는 엄마가 되어 교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선생님과 아이들이 줄 맞춰 나오기 시작한다. 오오! 우리 애인가! 유심히 보지만 다른 반이었다. 설마 놓친 건 아니겠지. 불안해하며 다시 또 기다림. 이번에도 다른 반이다. 부모들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니 점점 불안해진다. 아, 내가 늦게 온 건 아닌가, 아이가 벌써 나온 거 아닐까. 결국 우리 애는 다른 부모들이 절반쯤 빠지고 난 뒤 1학년 마지막 반으로 나왔다.

책가방이 등보다도 커서 더 작아 보이는 막내가 선생님께 인사드린 후 두리번두리번 하며 교문을 나선다. 많은 어른들이 이 문 앞에 서있으니 엄마가 딱 눈에 띄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러다 나를 발견하곤 얼굴이 환해지더니 양팔 벌려 뛰어온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조건 없이 엄마를 마냥 좋아하는 아이를 발견하는 순간이구나. 이래서 엄마들이 아이들 하교를 기다리는 거 아닐까. 이 기분은, 계속 울던 갓난아기가 방긋 웃을 때 사르르 힐링되는 그런 느낌하고 비슷했다. 막내 너에게도 기쁜 일이었겠지만, 엄마인 나에게도 힐링인 순간이어서 너무 좋았다. 별생각 없이 해본 일인데, 아주 잘한 일이었다. 휴직하고 있는 이 일 년간, 종종 마중가볼까 한다.


5. 냉파

결혼할 때 산 686L짜리 우리 집 냉장고는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느라 늘 분주하다. 냉동실은 비상식량으로 꽉 차 있고, 냉장실은 온갖 음식이 채워졌다 비워지느라 수시로 여닫힌다. 내가 늘 궁금해하는 건 이렇게 많이 먹는데, 장을 썩 많이 보지도 않는데 왜 도대체 냉장고는 늘 터질 것 같은가 하는 점이었다. 해서 이번 주에는 가능한 냉장고 파먹기를 해보려 노력했다. 냉동실에 쌓여있던 비상식량을 털어먹고 있는 재료로 조합해서 어찌어찌 해먹기를 열심히 한 주였다.

온갖 자투리 채소 넣어 만든 에그인헬, 닭다리살에 온갖 양념을 버무려 만든 찜닭인지 닭갈비인지 닭조림인지 알 수 없는 닭요리, 많고 많던 어묵은 탕끓이고 볶고 떡볶이에 넣어가며 싹싹 해치웠다. 이제 메인 재료가 다 떨어져서 뭐 더 해먹기도 어려운 상태다. 여전히 냉동실이 아직 가득한 편이니 다음 주까지 더 해봐야 하겠지만, 이만해도 열심히 잘했으니 칭찬해본다.



다투는 애들 꼴을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낫겠다며 글을 쓰고 있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끼리 합의를 보았다. 애초에 투닥거릴 일이 없는 게 더 좋겠지만, 투닥거리는 걸 본인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군. 아이들끼리 부대끼는 걸 어른이 정리해주다 보면 왜 상대방 편만 드느냐며 어른에게 화살이 오고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걸 종종 봐왔던 터라 가능한 본인들끼리 해결하게 두곤 하는데, 이게 방치가 되면 안 되니 주의는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오늘도, 육아원칙을 재점검하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나에게.

애들을 애써 보지않고 딴 짓 한 걸 스스로 칭찬해.  

매거진의 이전글 떠나보자, 숲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