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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선씨 Jun 28. 2021

과거와 미래를 마주하다

휴직 9주 차

평소에 만나지 못하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한 주였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하고,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1. 재무 상담하며 만난 20대

재무상담이라는 것을 받아봤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보험 내역을 분석해주고, 투자방향도 얘기해보는 시간이었는데, 담당자라며 나온 친구의 나이가 29세이다. 와, 20대라니, 최근 몇 년 새 20대를 만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20대 남자 사람이었다. 재무상담 내용은 둘째 치고, 이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낮에는 회사일에 매진하고 밤에는 중장기적인 먹거리를 찾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사는 친구여서 마음이 좀 짠했다.

내가 20대 때 저 친구처럼 앞만 보고 달렸더라면, 아마 40대의 나는, 결혼을 안 했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는 셋이 아니라 하나였지 않았을까, 회사에서는 조금 더 좋은 고과를 받았을 테고, 공부를 좀 더 했지 않았을까. 즉, 나는 저 친구보다 더 여유로웠고, 저 친구보다 더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안 했던 그런 세대의 사람이었던 거다.

'내가 얄짤없는 기성세대가 되어 버린 건가, 이미 그랬는데 여즉 몰랐던 건가, 모르고 싶었던 것일까'

많은 생각이 오고 갔던 만남이었다.


2. 숲 체험에서 만난 60대

청계골로 숲 체험을 다녀왔다. 해설사 분과, 함께 참여한 다른 남자분 한분 총 3명이서 숲길을 걸었다. 왠지 모르게 숲에서 만나는 사람들, 숲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얼굴 표정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대화 주제도 그렇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세속의 찌든 때를 벗는 느낌이 든다. 이 두 분의 자제분들은 이미 장성했고, 이제 육아에서 벗어나 자연과 건강에 관심이 많으셔서 숲을 가까이하시는 분들인데, 나무, 숲, 풀, 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내가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 하니 두 분이 잘하고 있다며 응원도 많이 해주셨다. 뭐랄까, 본인은 이미 지나온 인생길을 걷고 있는 나를 안쓰럽고 대견해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한 십오 년 후에는 저런 모습이려나?  


3. 40대 아저씨들

신랑, 신랑 친구와 같이 잠깐 짬 내어 맥주 한잔 했다. 어깨가 무거운 두 집안의 가장들. 우리 집 신랑은 아이가 셋이고, 신랑 친구는 이제 돌 갓 넘은 막내가 있다. 이 두 사람의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돈이다. 이들의 은 언젠가 어른 남자들만의 여행을 가는 것인데, 거의 3년 전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던 것 같다. 이쯤 되면 실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희망'사항으로 보인다. 현실적 부담이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보다 훨씬 더 커서 그렇겠지? 가족들이 하고 싶다는 걸 밀어주느라 본인들이 하고 싶은 건 미뤄두는 불쌍한 아저씨들. 짠하다.


4. 지인과의 짧은 만남

검사를 받기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집 근처 병원에 입원한 지인. 수속하고 입원하고 검사받는 걸 오롯이 홀로 해내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이 분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서, 짬날 때 찾아가 보고 퇴원할 때 밥 한 끼 같이 먹었다. 본인 몸상태가 좋지 않으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 보여 마음이 아프다. 모쪼록 원인을 찾고 건강해질 수 있길 바랄밖에.

외면하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누구든 아플 수 있고, 그게 나나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으니, 외면하지 말고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

  



하루는 청계천과 한강이 만나는 한양대 근처 하류에서부터, 을지로의 청계천 시작점까지 거슬러 걸었다.


평일 오전 청계천 하류를 걷는 사람들은 70, 80대는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본인의 걷는 자세는 잘 몰라도 다른 사람의 걷는 자세는 눈에 잘 들어오는 법이라 가만 살펴보면, 어깨가 내려앉거나, 무릎이 O자형으로 벌어졌거나, 지팡이를 짚고 걷거나, 골반이 굳어 걷는 모양새가 이상한 분들이 많다. 어르신들의 고단했던 세월이 걸음에서 묻어나는 게 아닐까. 그나마 걸으러 나오시는 분들은 건강을 챙기려는 분들일 텐데, 나이에 장사 없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청계천 상류로 오면, 정장 입고 커피 하나 들고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이 시간이라도 알차게 운동을 해야겠다는 듯 비장하게 걷는 분들도 있고, 윗사람에게 한 소리 들었는지 청계천을 멍 때리고 걸으며 털어내려는 사람들도 보이고, 점심시간조차도 업무전화에 시달리며 걷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없는 분들도 있다. 어쩐지 낯설지 않다.


청계천 끝에서 끝까지 걸으며, 나의 과거와 미래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회사원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과거도 짠하고, 언젠가 다가올 늙음을 마주할 미래도 짠하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내 삶의 스타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도착하는 곳은 같겠지만, 어떻게 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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