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와 생태공원을 한 바퀴 돌기도 하고, 둘째와 역사공부차 남산을 걷기도 하고, 학원 갔다 돌아온 첫째를 붙들고 한저녁에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다. 요약하면 이번 주의 테마는 '걷기'였다.
회사 다닐 때는 하루에 천 보도 채 걷지 않았다. 집 앞에 회사, 상가, 아이들 학원, 학교가 다 있고 사무직으로 앉아서 일하는 편이라 딱 출퇴근만 하는 날은 걷는 시간이 하루에 총 30분도 안 되었던 것 같다. 꾸준히 달린다는 이야기를 지인들한테 여러 번 들으면서도 속으로 의아해했다.
'어떻게 뛰는 게 좋을 수가 있지?'
그러다 런데이 등 달리기 앱을 활용해 함께 달리는 모임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침 휴직도 했으니 운동 좀 해보자는 마음으로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꽤나 열성적인 구성원이다.
이번 주는 날이 너무 덥거나 비 오거나 해서, 해 없는 저녁이나 아침에, 비가 그친 직후에 짬 내어 주로 걷기를 했다. 큰애랑 걷는 공원 산책에서는 두꺼비도 만나고, 우리가 종종 밥을 주곤 하던 고양이도 만났다. 큰애는 경보하듯이 걷는 스타일이라 같이 다니다 보면 땀이 꼰꼰하게 난다. 워크온 챌린지 루트를 완주하는 게 목표였던 지라 무리하게 걷다 보니 만 오천보 넘게 걸은 데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서, 빨리 돌아와야겠다 싶었다. 자전거를 찾다 찾다 근처 따릉이가 다 대여중이라 결국 버스를 탔다. 이 또한 큰애와 함께한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하루는 체력이 약한 둘째를 데리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둘째는 반도 안 걸었는데 힘들다고 쉬어가자 한다. 음 사실 두어 달 전의 나도 이 호수를 절반 정도 걸으면 힘들어했었기에, 둘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나 어르고 달래 가며 한 바퀴를 돌았다. 다행히 아이가 칭얼댈 만하면 물고기, 오리, 거위가 나타나서 시선을 끌어주었다. 걸을 땐 죽상이더니 저 멀리 거위를 보러 뛰어갈 수는 있구나. 선택적 체력을 보유한 둘째와의 데이트는 맛있는 자몽 빙수로 마무리. 비싸서 자주 못 사 먹는데 오늘의 자몽 빙수는 열심히 걸은 둘째에게, 그리고 함께한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계속 비가 오다 오후에 비가 잦아든 오늘, 방에 늘어져 있는 신랑을 끌고 공원으로 향한다. 오늘의 목표는 공원 스탬프 투어를 완성하는 것이다. 주요 포인트 9개를 돌며 스탬프를 찍으면 작은 냉장고 자석을 주는데, 한 번에 다 가기는 어렵고 두세 번 가야 스탬프를 완성할 수 있다. 지난번에 못 간 나머지 4개 포인트를 가려고 한다. 비가 갓 그친 잔디밭에 무언가 반짝거린다. 가까이 가보니 토끼풀 위에 있는 물방울들이다.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이겠지. 급히 사진 찍어 봤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잔디밭을 돌아다닌 덕에 신발 속 양말까지 다 젖어버렸다. 그래도 걷다 보니 집에서 종일 있으며 쌓인 답답함이 풀리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걸으며 보는 주변의 초록 초록한 풍경을 좋아한다.
땀 빼고 걸은 후 살짝 가벼워진 그 느낌을 좋아한다.
가족과 함께 걸으며 대화하는 그 순간들을 좋아한다.
걷다가 우연히 고양이, 두꺼비, 새, 오리, 거위, 꿩 등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예전에 힘들게 걸었던 그곳을 가뿐히 걷는 내 모습이 좋다.
절대 내 인생에서 없었을 것 같은 '운동'이 점점 습관화되고 있는 게 신기하다. 이번 주에는 드디어, 제대로 된 러닝화를 나에게 선물했다. 이만하면 선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