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게임 패드를 쥐고 게임을 하는 맛.
어릴 때 만화, 음악과 마찬가지로 유난히 게임을 좋아했다. 아직 앨범 단위의 음반을 알기도 전에, 그리고 만화책으로 총칭되는 단행본의 존재를 알기도 전에, 어머니들끼리 친한 친구네 집에 가서 처음 해본 게임기가 바로 대우 전자의 재믹스였다. 일본의 게임기를 그대로 베껴 만든 재믹스는 MSX라는 이름의 8비트 게임기였다. 삼성에서는 겜보이(세가 마스터 시스템의 한국판)를 만들었고 일본의 닌텐도에서는 패밀리 컴퓨터, 속칭 패미콤을 만들던 시기였다(한국엔 현대가 수입하여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했다). 외가 쪽 친척 형네 집엔 겜보이가 있었는데 재믹스보다 몇 배는 비쌌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응당 어머니께서는 겜보이 대신 재믹스를 사주셨다. 없는 살림에 그래도 친구한테 기죽지 말라며.
아직도 재믹스의 기억이 선명하다. 이름부터 아련했던 몽대륙(남극 탐험 2), 패미콤의 메가 히트작, 슈퍼 마리오 시리즈를 그대로 베낀 슈퍼 보이, 마성전설, 요술 나무, 양배추, 자낙, 올림픽 등 친가 쪽 친척 형들도 여름방학이면 우리 집에 와서 다 함께 재믹스를 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의외로 재믹스는 빠르게 하향세의 길로 접어들었고 대세는 패미콤으로 바뀌어,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시리즈가 존재하는 그 패미콤을 갖고 싶어 했다. 그래서 매년 설과 추석 때 외갓집과 친가를 돌며 살뜰하게 모은 용돈들을 어머니께 맡기며 패미콤을 사주시길 기다렸는데 정작 사주신 기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정도였다(그 당시 패미콤 가격은 9만 원 정도 - 정품도 아닌 짝퉁이었다). 참고로 재믹스를 구입했던 때가 국민학교 2학년 대였으므로 남들 다 패미콤과 그보다 더 나은 슈퍼 패미콤에 빠져있을 때에도 나 혼자 열심히 몽대륙과 마성전설을 했다.
우리 집에 패미콤이 생기고 난 뒤에는 그 시절 아이들 코 묻은 돈을 차곡차곡 챙겨가던 게임기 판매점에 거의 살다시피 했다. 용돈만 생겼다 싶으면 곧장 게임기 매장에 달려가, 2,000원을 내고 팩을 교환하는 게 일상이었다(조금 더 재미있는 게임들은 팩 교환비가 개당 3~4천 원 했다). 세이브 파일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패미콤이라서 게임의 흥미가 가장 관건이었는데 일본어로만 점철된 게임들이 거의 대부분이던 시절이라 조금만 재미없으면 바로 팩을 교환할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당시 패미콤으로 주로 하던 게임들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슈퍼 마리오 3, 마이티 파이널 파이트, 록맨 시리즈, 성령 전설 리클, 열혈 시리즈, 별의 커비, 드래곤볼 Z 시리즈 등 내로라하는 닌텐도발 게임들의 황금기였고 현존하는 게임들의 기본 골자를 모두 완성시킨 게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당시 한국 게임 시장은 어찌 그리 빨리 바뀌던지... 재믹스, PC엔진, 겜보이, 패미컴, 슈퍼 패미컴, 메가 드라이브, 네오지오, 플레이 스테이션, 세가 새턴, 닌텐도 64, 드림 캐스트, 게임 큐브, 엑스박스, 닌텐도 위, 엑스박스 360, 닌텐도 유, 닌텐도 스위치 등 황금기를 넘은 현재까지도 콘솔 게임 시장은 수백, 수천 억 대의 매출로 출렁이는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변모할 예정이다.
하지만 나는 패미콤 이후로 콘솔 게임으로 불리는 게임기는 더 이상 손에 넣지 못하게 됐다. 바로 어머니께서 2000년 정도에 집에 PC를 놔주셨기 때문인데 그 당시 가격이 180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 현주 컴퓨터를 사주셨다. 결국 다 어머니 카드로 긁은 거였지만 그런 걸 내가 알리가 있나. 스타 크래프트, 툼 레이더, 둠, 동급생, 인디아나 존스, 고인돌, 원숭이 섬의 비밀 같은 PC게임을 하면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엔간한 컴퓨터 게임에 4만 원 언저리 하던 시기여서 그렇게 많은 게임을 해보지는 못했던 기억이다. 게다가 늘 포맷에 윈도우 재설치에 골머리를 썩이던 현주 컴퓨터였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소비자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또다시 A/S를 맡겨야 할 정도로만 수리를 해주는 법칙 같은 게 있어서 현주 컴퓨터를 비롯해 그네들과 비슷한 정책을 내세우던 컴퓨터 회사들은 금세 다 망해버렸다.
그 뒤로 토렌트 사이트들로 인한 불법 복제 게임들이 우후죽순으로 파생된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이라 웬만한 콘솔 게임들도 컴퓨터로 다 돌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손에 게임 패드를 쥐고 게임을 하던 그 맛을 잊지 못했던 탓에 열심히 돈을 모아 플레이 스테이션 4와 닌텐도 스위치 모두를 손에 넣고 신나게 플레이를 했었다. 최근엔 과거에 흥했던 닌텐도 게임들 같은 고전 콘솔 게임들이 요즘 흥하는 콘솔 게임기에 이식되거나 리메이크되는 작품들이 많아서, 나 같은 아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마케팅을 펼치는 중이다.
지금의 한국은 온라인 게임이 열풍을 넘어, 잘 풀리기만 하면 하나의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유명 게이머들도 수십억 대 연봉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고 전 세계를 무대로 리그전이나 대결을 펼치는 실황 중계도 왕왕 볼 수 있다. 왠지 쓰다 보니 기사를 쓰는 것 같은 느낌의 글이 되었는데, 과거에 컴퓨터 게임이나 콘솔 게임을 하느라 부모님 몰래 기기의 전원을 켜봤던 사람이나(그 옛날 컴퓨터들에선 왜 부팅 때 '삑'소리가 그렇게 크게 나던지...), 망치로 게임기가 부서지는 걸 보던 사람은 야속한 세월에 눈물을 머금을 수도 있는 시대다.
나도 아주 잠깐은 게이머의 길을 들어서 보는 게 어떨까 싶던 때가 있었는데 예전부터 지금까지 제일 잘하는 게임이라고는 패미콤의 '열혈 하키'뿐이라서 금방 단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콘솔 게임기가 패미콤을 끝으로 더 이상 업데이트가 안 되는 가정에서 자랐기에, 자연스레 만화책과 음반으로 시선이 돌아간 것도 내가 게이머의 길을 포기한(?) 큰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손에 게임 패드를 쥐고 게임을 하는 건 여전히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