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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Apr 14. 2020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리뷰 - 소네 케이스케

영화를 뛰어넘는 원작의 맛.



소네 케이스케의 장편소설이다. 한국에서는 동명의 제목으로 비슷한 맥락의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말이 다르고 주인공 또한 조금 다르게 각색하였다. 역시 원작소설이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는 작품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주요 인물은 생활안전과 경찰인 '에바토 료스케'. 영화에서 정우성처럼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에 집착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자다. 여주인공인 '최영희(국내 영화에서는 전도연)'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겨, 이리저리 휘둘리는 남자이고 그녀덕에 사채를 써서 '고다' 라는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영화와 큰 차이가 있다면 료스케 캐릭터의 직업. 정우성은 항구에서 입국심사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원작에서의 료스케는 경찰이다. 영화에서 정우성을 쫓던 윤제문은 료스케를 쫓는 '히고(원숭이)' 경찰이었고 쓸데없이 캐릭터의 직업을 바꾼 국내 영화보다 더욱 이야기의 흐름이 좋은 자세를 보여준다. 료스케가 고다의 돈을 최영희 대신 갚기위해 '봉'의 비자금을 '툭눈금붕어'와 꿀꺽 하려고 하는데 이 얼개 또한 료스케가 형사라서 가능한 스토리라, 전혀 의구심 없이 다가온다. 원작의 고다는 영화에서의 정만식이고 그의 심복인 '배진웅'은 '새송이'이다. 고다는 영화와는 다르게 상당한 거구이고 새송이 역시 원작의 캐릭터가 좀 더 극악적인 취미('찔꺽찔꺽')를 보여준다.

최영희는 한국인으로, 영화에서 나온 룸살롱 사장이 아니라 성인 에스테 업소를 운영중이고 거기에서 일을 하게 된 '쇼다 미나'의 캐릭터 설정은 영화와 원작이 비슷하다(영화 주인공은 신현빈). 제약회사 연구소 직원과 중매로 결혼한 미나는 다단계에 빠져서 진 빚 덕분에 남편인 다케오에게 늘 맞고 산다. 거의 의미없는 화풀이 폭력에 시달리는 그녀는 빚을 갚기 위해 '유부녀의 정원' 이라는 곳을 찾아내어 일을하게 되는데 그곳의 사장이 최영희였다. 영화에서 신현빈을 돕던 조선족인 정가람은 원작에선 그냥 일본인으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처럼 귀신에 씌인듯, 겁먹은 행동들은 원작도 비슷하다. 그를 차로 치는 미나도 영화와 똑같고 다만, 다케오의 죽음을 위장하는게 미나가 아니라 최영희라는게 영화와 다른점이다. 물론 다케오 죽음에 대한 사사는 역시 최영희가 다 한다. 미나의 허벅지에 최영희의 허벅지 문신과 똑같이 해주는 건 상어가 아니라 호랑이 문신이다.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아카마쓰 간지'가 사우나 유토피아에서 일하는 설정은 영화와 비슷하고 횟집이 아니라 이발소를 대를 이어서 했다는게 영화와의 차이점이다. 분실물인 가방(원작에선 구찌 보스턴백, 영화에서는 루이비통 백)을 히고와 최영희에게 고발하는 지배인도 별 차이 없고 간지의 어머니와 아내의 설정도 영화와 비슷. 하지만 간지의 딸이 이미 결혼해서 애도 있는 유부녀라는게 영화와 약간 다르다(영화의 배성우의 딸은 대학생). 또한 히고의 존재 덕분에 원작에서는 고다가 후반에 사라지게되고 뭔가 있을 줄 알았던 아재인 히고는 그냥 원숭이새끼라는게 결말부분에 가서야 밝혀진다.

결말 또한 영화와 원작이 꽤 다르다. 영화에선 정우성이 럭키 스트라이크를 사러 나가다 정만식 패거리에게 들켜, 도망치다 청소차에 치여 죽게되지만 원작에서 료스케는 최영희가 죽여버린 고다 덕분에 고다 패밀리 전체에게 쫓기는 몸이 된다. 이윽고 사우나에 들러 돈가방(미나가 최영희 덕분에 타낸 남편 사망보험금 1억엔)을 캐비넷에 쑤셔넣은 뒤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고다의 심복인 새송이에게 걸려 차 안에서 목이 졸려 사망하게 된다. 료스케와 그가 노리던 '봉'의 관계를 알아낸 히고 형사는 료스케의 뒤를 밟으며 접근하다 최영희에게 매료되어 그녀를 도우며 함께 돈을 찾는 멍청한 경찰로 나온다. 히고를 먼저 서로 보낸 최영희는 간지와 어머니의 콤비 덕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결국 간지가 끝까지 쥐고있던 1억엔은 최영희가 지른 간지네 집의 불 덕분에 한줌 재가되며 소설이 끝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영화를 먼저보고 원작을 나중에 본 케이스라, 책을 읽는 내내 영화 속에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떠올랐던 작품이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총망라되었던 영화라서 특히 전도연이 맡았던 '연희(원작의 최영희)'와 배성우가 연기했던 '중만(원작의 아카마쓰 간지)'이 상당히 오버랩되며 휙휙 읽어내려간 소설 되시겠다. 영화보다 훨씬 치밀하고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캐릭터들과 그 사이사이에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시간대의 역순으로 배치된 스토리라인 덕분에 읽는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작품이다. 특히 고다네 패밀리의 새송이가 등장하는 씬들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 다케오가 미나에게 '빚' 때문에 저지르는 구차한 폭력들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는 전형적인 땅딸보 스타일의 변태같은 일본인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서 더럽고 참혹했지만 뻔해서 웃겼다. 영화도 나쁘지 않았지만 상당히 어설픈 플롯들이 곳곳에 숨어있고, 무엇보다 연출이 가장 별로였지만 원작소설이 있는 작품은 역시 영화가 원작을 절대 뛰어넘지 못한다는 명제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는 책읽기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원작 소설은 굉장히 잘 읽히기 때문에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짧고 굵은 소설이다. 















신음소리와 함께 남자는 절정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맡겨왔다.

쇼다 미나는 남자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달라붙은 남자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그리고 손때가 묻은 것은 물론이고 녹까지 슨 대사를 귓가에 속삭였다.

"좋았어."
"정말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38p








다케오가 뒤에서 억지로 밀고 들어왔다.
미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머리를 침대에 묻었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옛날부터 미나가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이었다.
어째서 아버지는 목을 맸을까. 어째서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도 대학교에 가는데 나는 일해야 할까. 어째서 죽어라 일만 하며 고생한 어머니가 암에 걸려야 할까. 어째서......
생각해도 뾰족한 수는 없다. 분명 운명이리라.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던 것이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서러운 일도 많지만 만약 행복한 순서대로 사람을 줄 세우면 뜻밖에도 자신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위치에 서지 않을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52p








다케오가 미나를 제압하는 도구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폭력, 또 하나는 빚 이야기다.
"잘못했어, 미안해."
건성으로 사과하고 문으로 향했다.
다케오의 말이 바로 날아들었다.
"젊은 애랑 놀 수 있으면 누가 너 같은 년이랑 자겠냐. 너 같은 년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 염가녀. 싸게 치인다는 뜻이지. 싸구려지만 여자로서 기능은 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85p







"알겠지 다바사 씨. 세파에 떠밀려가기만 해서는 안 돼. 빠지지 않도록 발버둥 치는 거야. 설령 아무리 추하더라도 숨이 붙어 있는 한 손발을 허우적대며 헤엄쳐야 해. 마지막에 이기는 건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154p








"일어난 일은 이미 과거로 사라졌어. 제한이 있는 시간과 두뇌는 장래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법이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237p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 스토커, 그리고 노출광. 넌 사회의 쓰레기를 셋이나 처리했어. 전혀 양심에 가책을 받을 일이 아니라고. 자, 웃어. 행운의 여신은 얼굴에 그늘이 진 사람 곁에는 결코 내려오지 않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294p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으니 그 기분을 형태로 남겨두는 거야. 액세서리든 장식품이든 상관없어. 좌절할 것 같을 때 언제라도 보고 초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가까이 두기만 하면 돼. 나한테는 이 문신이 그런 거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311p







"날 못된 년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피장파장이야. 너도 돈 때문에 세 명이나 죽였잖니. 이제는 늦었지만 세상을 잘 살아가는 비결을 가르쳐줄게. 절대 남을 신용하지 말 것. 결국 누구든 자신이 제일 소중한 법이거든.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313p








"사내 녀석이 나이 먹고 울기는. 내가 만주에서 돌아왔을 때는 전국이 이 꼴이었어.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야. 너도 장인 나부랭이 아니니. 두 팔만 달려 있으면 가게는 얼마든지 새로 열 수 있어." 도미코가 간지의 머리를 털어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3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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