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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May 07. 2020

소설 멋진 신세계 리뷰 - 올더스 헉슬리

이토록 매력적이면서 소름끼치는 미래상이라니!



이토록 매력적이면서 소름끼치는 미래상이라니!

책 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발표한 SF소설이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5막 1장에 나온 대사를 인용한 제목으로, 반어법으로 사용된 느낌의 타이틀이다. 여지껏 내가 살면서읽은 소설중에 오프닝부터 입이 벌어질 정도로 충격적인 세계관을 전달해준 작품은 멋진 신세계 말고는 없었다. 이 작품은 얼마전에 읽은 '조지 오웰'의 '1984' 와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마친' 이 발표한 '우리들' 이라는 소설과 함께 디스토피아 소설 3대 고전에 속하는 역사적인 작품이다. 

몇 년 전에 '인류멸망보고서(2012)' 라는 한국산 졸작 SF영화가 발표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동일한 제목의 단편영화가 낑겨있었다(류승범이 생식하다 좀비가 되는...). 당시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나에게 이 소설을 8년이나 늦게 읽었다며 혼쭐을 내줬다. 어느 누군가가 추천한다며 미디어에서 읊조린 걸 아이폰 메모장에 적어놓고 알라딘에서 다른 책들 사이에 끼워넣어, 무료배송으로 받아본 소설이다. 

이 작품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선대에나 후대에나 길이길이 읽힐만한, 아주 훌륭한 SF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전개와 버릴 만한 텍스트는 1도 없으며 나처럼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추천할만한, 그 외에 SF소설의 문외한이라면 더더욱 SF장르에 입문하기 좋은 소프트하면서도 하드한 SF소설 되시겠다.

소설 멋진 신세계의 줄거리는 9년에 걸친 대전쟁(탄저균을 이용한 생화학무기와 대량살상무기가 이용된 핵전쟁) 이후, 거대한 세계정부가 전지구를 지배하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은 성행위나 이성 끼리의 교감이 아닌, 인공 수정으로 인해 재배되고 양육되고 관리된다. 태어나기 전부터 인류의 지능은 미리 계측되어 상층부 부터 하층민까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으로 나뉘어진다. 알파 계급은 사회을 움직이는 지도층으로, 베타 계급은 행정 업무를 맡는 중산층으로, 감마 계급은 하층민으로 조작되며 델타나 엡실론 계급은 인공 수정 배양액의 공급에 의해 고의로 지적장애를 지닌채 태어나, 단순노동자로 활동하게 된다. '보카노프스키' 과정을 통해 최대 96 쌍둥이까지 만들어낼 수 있으며 델타 계급 아래의 신생아들에게는 인공 양수에다 알코올을 투입한다거나 산소를 의도적으로 결핍시켜, 아무 생각이 없는, 일만 해내는 기계같은 인류를 주조해낼 수 있는 시대이다. 그야말로 그동안 내가 봐왔던 SF소설들 중에 단연 충격적이고 참신하며 모던의 극치를 달리는 차디찬 사이언스 픽션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의 모든 여성들은 피임약을 허리에 차는 파우치 따위에 넣고 다니면서 성생활에 의해 아이를 갖는 원시적인 생각따위는 꿈도 꾸지 않는다. 만인은 만인의 것이며 생후 7살 부터 단순한 쾌락을 위해 성놀이를 권장하고 강요한다. 거의 모든 계급들에게 '소마' 라고 하는 알약이 주어지는데 일종의 마약으로 복용하게 되면 끝없는 쾌락과 무한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고위층 계급들은 소마를 성경처럼 끼고 살며 복용하고, 하층 계급들 역시 일정한 노동이 끝나면 소마를 몇 알씩 제공 받으면서 행복한 생활을 유지한다. 개개인의 의사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상이고 고민, 번뇌, 분노, 역정 등의 감정적인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거세된 채로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를 그려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디스토피아 소설들중에 가장 매혹적이고 안락한 미래상을 그린 소설이라서 뭇 독자들은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거면 1984나 영화, '매트릭스'의 엉망진창인 미래 보다는 '멋진 신세계'의 미래가 낫다' 라고들 말하지만 인간성을 배제당한채 그것이 배제된 것 조차 모르고 선택과 자유의지는 오래된 고전에서나 나올법한 낡은 말로 치부되는 시대상이다. 그래서 더욱 그럴싸하고 미래에 정말 있을법한 작품이다. 이 소설이 1932년에 쓰여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설의 등장인물을 이야기해 보겠다. 처음 이야기를 끌고가는 사람은 알파 플러스 계급의 '버나드 마르크스' 다. 높은 계급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왜소한 체구(높은 등급은 대부분 멋진 신체와 외모를 지니고 있다) 덕분에 타인들에게 배척당하고 자신 역시 열등감과 분노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물이다. 덕분에 다음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인공을 시궁창에서 구해내어, 도심으로 배달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버나드의 친구인 '헬름홀츠 왓슨'은 완벽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되지만 버나드와 그 외의 등장인물의 병풍처럼 서있으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행동하는지 보여주는 데에만 활용되는 캐릭터다. 버나드가 짝사랑하는 '레니나 크라운'은 전형적인 문명인의 모습으로 상당히 아름다운 외형을 지닌, 매력적인 여성으로 등장한다. 이야기의 흐름에 딱히 크게 기여하는 바는 없으나, 뒤에 등장하는 새로운 주인공의, 일종의 '매개체'가 되는 역할이라 없으면 뭔가 허전할 것 같은 보편적인 미래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소설에는 '야만인보호구역' 이라는 곳이 등장하는데 그 곳에선 여전히 인간들이 아이를 낳고 원시부족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 곳에서 버나드의 계략(!)으로 데려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존' 이다. 이 캐릭터의 존재의 이유는 소설을 읽으면 '아아-' 하고 와닿는다. 그녀의 어머니 '린다'는 문명사회에 거주하다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쫓겨나다시피 한 인물이고 새로 둥지를 튼 그 곳에서 보통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존을 낳았다. 젊었을 적, 언제든지 손에 넣고 쾌락에 몸을 맡길 수 있었던 '소마'를 위해 문명사회로 부던히 돌아가고 싶어하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존은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읽은 '셰익스피어' 의 거의 모든 작품을 외우다시피 탐독했다. 그래서 작중에서도 그의 입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이 수도없이 인용되며 아주 중요한 순간에도 셰익스피어를 예수처럼 섬기는 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문명사회에서는 소설과 성경 등,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탐닉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매체들이 금기시 되어있다. 오직 '촉감영화(물체가 생생하게 만져지기까지 하는 VR 기기라고 보면 될듯)' 와 '소마'만으로 모든 문명사회의 인간들은 영원히 행복하다. 전 세계 10명 뿐인 인류 지도자들만이 과거 인간들이 남긴 예술과 성경등을 읽고, 생각할 수 있으며 체제의 어리석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상유지를 위해 체제를 지키는 인물들이다. 

소설 멋진 신세계는 인간이 늙지 않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으니 '종교' 가 없어도 된다고 자부한다. 부모 자식, 부부의 관계를 배제시키면서 '죽음' 역시 일상적인 관례로 치부해 버리며 '슬픔' 또한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이 대부분인 세상이다. 소설 멋진 신세계의 결말은 참혹하기 그지없지만 원시 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현대로 날아온 과거의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 셰익스피어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한 존이 휘황찬란한 별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 역시 그리 많지 않았다. 올더스 헉슬리가 그려낸 미래 세계 역시 눈부시도록 유혹적이지만 그와 비례하는 비인간성 덕분에 일종의 지옥을 보는 듯 했다. 그가 써내려간 탁월한 세계관 구축과 훌륭한 플롯은 이 소설이 등장한지 88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충격적이고 입이 벌어질 정도로 끝내줘서, 가히 최고의 SF소설이라고 손꼽아도 손색이 없는 명작중의 명작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필립 K. 딕이 광기에 미쳐 소설을 써내려갔다면 올더스 헉슬리는 상당히 고상하고 엘레강스한 자세로, 차가우면서도 깔끔하게 글을 써내려간 느낌이다. 이 작품이 나의 최애 SF작가인 필립 K 딕을 끌어내리지는 못했지만 누가 나에게 SF소설을 딱 하나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단연 이 '멋진 신세계'를 추천해줄 것이다.






+

참고로 '멋진 신세계' 의 영어제목은 'brave new world' 인데 앞서 서술한 바와같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인용한 대사를 그대로 제목에 붙인 터라,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중세 영어로 지어진 덕분에, '용감한 신세계' 가 아니라 '멋진-훌륭한 신세계'가 맞는 표현이다.

++

미국 NBC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피콕(PEACOCK)'에서 멋진 신세계를 드라마화하여, 곧 공개 예정이라고 한다. 딱 봐도 영화가 떠오르는 작품인데 호흡이 긴 드라마라고 하니 한정적인 런닝타임을 지닌 영화보다 원작 소설의 세세한 것들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접근성이 높은 넷플릭스나 왓챠가 아닌게 함정.
















한 개의 난자로부터 하나의 태아가 나오고 거기서 한 사람의 성인이 생긴다. 이것을 정상이라 한다. 그러나 보카노프스키 법으로 처리된 알은 싹이 나고 증식해서 분열한다. 8에서 96개의 싹을 틔우며 그 한 개 한 개가 성장하여 완전한 형태를 지닌 태아가 되고 각각의 태아는 완전한 크기의 성인이 된다. 전에는 한 인간이 자라던 곳에서 96명이 자라도록 한다. 이거야말로 진보가 아니고 무엇인가!

멋진 신세계 11p







레니나는 고개를 저었다.
"과거와 미래의 골치를 앓지 말고." 그녀는 격언을 인용하고 있었다. "소마 일 그램을 마시면 현재만이 있을 뿐."

멋진 신세계 131p











"왜 비슷한 작품이 나올 수 없습니까?"

"우리의 세계는 <오셀로>의 세계와 같지 않기 때문이야. 강철이 없이는 값싼 플리버 승용차도 만들 수 없어. 사회의 불안정이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는 것이야.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자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밖으로 집어던진 것 말일세. 자유라!" 총통은 여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델타 계급들이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를 기대하다니! 그들이 <오셀로>를 이해하기를 기대하다니! 정말 자네답군!"

야만인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멋진 신세계 279p








"인간은 늙는다. 따라서 노년에 수반하는 쇠약, 무기력, 불쾌감 같은 어쩔 수 없는 느낌을 자신 속에서 체험하게 된다. 이런 느낌을 느낄 때 인간은 단순히 질병에 걸렸다고 상상하며 이런 고통스러운 상태는 무슨 특별한 원인이 기인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공포심을 달래면서 이러한 상태도 질병으로부터 회복되듯 곧 탈피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것은 바보같은 상상이다! 그 질병은 노령인 것이다. 노령이란 무서운 병이다. 인간들이 나이가 듦에 따라 종교를 찾게 되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죽은 뒤에 일어날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내 자신의 경험이 안겨 준 확신에 의하면, 그러한 공포나 상상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종교적 감정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저절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는 실체인 것이다. 격정이 진정되고 공상과 감수성이 이전보다 흥분되지 않고 또 자극적인 경향을 잃어감에 따라, 우리의 이성은 그 활동에 있어 침착하게 되고, 전에는 심취되고 말았던 상상이나 욕망이나 기분전환 등에 의해 흐려지던 상태에서 벗어나게 됨에 따라 종교감정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선 신이 마치 구름 뒷편으로부터 나오듯 자태를 드러내게 된다. 우리의 영혼은 모든 빛의 원천을 느끼고 보고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곳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이다. 왜냐하면 감각의 세계에다 그 생명과 매력을 주었던 것이 우리로부터 새어나가기 시작하고 현상세계가 이제 내부로부터 그리고 외부로부터 인상에 의해 지탱될 수 없는 것으로 되기 때문에, 우리는 영속성이 있는 무엇,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무엇 - 다시 말해서 실체, 절대적이면서 항구적인 진리 같은 어떤 것에 의지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신에게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종교적 감정은 성질상 그것을 경험하는 영혼에게는 순수한 것이고 매우 행복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여타의 손신을 우리에게 보상해주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 295~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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