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세계는 다수결이다. 에어컨을 만드는 것도, 말하자면 자동차를 만드는 것도, 석유를 캐는 것도, 산업혁명과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도, 인류가 달에 간 것도, 걸어가는 로봇을 만든 것도, 우주왕복선이 도킹에 성공한 것도,
휘 휘 지나가는, 저 규격 저 위치에 저 품종의 가로수를 심은 것도, 모두 다수가 원하고 정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인기의 정상에 서는 것도, 누군가가 투신자살을 하는 것도, 누군가가 선출되고 기여를 하는 것도,
실은 다수결이다. 알고 보면 그렇다.
-중략-
뭐가? 인류는.. 그러니까 그 결과라는 너나 나는.. 돈을 주고나면 이제 행복할 수 있을까.. 안심해도 될까..
그래서 그렇저럭이라도 졸업을 하고.. 살고.. 겨우 어떻게라도 어디든 대학 같은 델 가고.. 눈에 띄지도 않겠지만..
열심히 하고.. 해서 면허 같은 걸 따고.. 취직을 한다든가.. 무난한 옷을 입고.. 무난한 취미를 가지고..
절대 남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바람직한 얼굴로 살아가고.. 혹시 결혼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유전자를 보존하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면.. 행복할까? 물론 그것도 평균 이상으로 운이 좋을 때의 얘기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도 될까..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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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대답은 했지만, 맛이 간 인간들이 너무 많다 너무 많은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어쩌자고 이렇게 갈수록
늘어나는 걸까. 나는 불안했다. 세끄라탱도, 따지고 보면 모아이도, 뭐 치수 같은 변태는 말할 것도 없고,
실은 나 역시도.. 바보다. 맛이 간 인간들이다. 알 수 없다. 이렇게 교육을 많이 받는데도 자꾸만 늘어난다.
가만히, 어느정도 멀쩡해 보이다가- 이상한 망상을 하고, 불을 지르고,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누군가를 찌르고, 한다.
알 수 없다. 나는 지치고 문득 슬펐다. 우물의 바닥 같은- 즉 위(胃)의 어딘가에 고여 있던 심한 기름냄새가 다시금
꿈틀하며 역류해왔다.
인류는 생존해 온것이 아닌,
잔존해왔다는 설정을 베이스로 세상이 '깜박' 하여 반에서 왕따가 된 두 친구가
인류의 대표들과 함께 탁구를 시작해, 인류를 지금 살아온 그대로 유지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언인스톨' 해, 지구상에서 없애버릴 것인지.. 하는 내용.
박민규의 소설은 대체로 이렇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겠지만 극 후반부에 가서야 '본론' 이 나온다.
그렇다고 극 초-중반에 '서론' 이 무게를 두고 있진 않다.
다른 일상의 소소한 여러 가지들. 예를 들면 한여름에 시내버스에 앉아 있는 주인공이 자기는 더운데
에어컨을 틀지 않은 기사에게 '거 에어컨 좀 틉시다' 한마디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대충 이런느낌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그 소소한것들 안에서 인간에 대한 의문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게 박민규식의 글이다.
결말에선 두 주인공이 탁구를 이기게 되어 인류를 '언인스톨' 시키자고 뜻을 모으며 끝나지만
후반부에 약간 힘을 잃은듯한 내용이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