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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Sep 28. 2016

퀴즈쇼

김영하

"인생의 큰 시험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어."

계속 알 수 없는 소리였다.

"기회는 신선한 음식 같은 거야.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떨어져. 젊은이에게 제일 나쁜 건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거야. 차라리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게 더 나아.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 이게 제일 나빠. 이렇게 귀신만 득실거리는 집에 웅크리고 있어봐야 뭐 하겠나? 아마 인숙이 가고 나서 지금껏 제대로 먹지도 않고 뭐 하나 번듯하게 한 일도 없을 거야. 안 그래?"

"그렇지는 않아요. 집도 정리하고 이런저런 일도 하고....."

거짓말이었다. 실은 무위도식 그 자체였다.


(중략)


그러나 그런 낙관을 유지하는 데에도 최소한의 공간은 필요했다. 그러니까 감옥 같은 독방에는 낙관보다 비관이 더 어울린다는 뜻이다. 자기도 모르게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아무 일도 하고 싶어 지지 않는 생활이 계속되는 것이다. 사립문을 열고 나가면 너른 들이 나타나는 농가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 힘들다. 야생화와 나비,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을 바라보다보면 어느새 잡초뿌리라도 뽑고 있는 건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그러나 도심 한 가운데의 이런 고시원에서는 인간이 점점 애벌레처럼 변해간다. 스스로가,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미래의 인간들처럼 선으로 연결된 채 영양만 공급받고 있는 한 마리 고치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중략)


군대에서 제대하고 사회로 돌아왔을 때, 가장 피곤했던 것은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군대는 식단이 하나였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으면 차례대로 밥과 반찬을 준다. 하루의 일과는 내가 정하는게 아니라 육군본부와 사단 같은, 나로서는 감도 오지 않는 높은 곳에서 정한다. 아무것도 선택할 필요가 없다. 군대에서는 아무도 "이일병, 너라면 이 두 가지 일 중에서 뭘 할래? 골라봐" 같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정해진 일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회로 돌아오자 세상은 선택할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좀 가려고 해도 먼저 버스냐 지하철이냐를 결정해야 했다. 배스킨라빈스든 스타벅스든 계산대 앞에서는 늘 뭔가를 골라야 한다. 부라보콘이냐 월드콘이냐만 결정하면 됐던 시절은 가버린 것이다. 마술사들은 앞에 있는 관객에세 카드를 고르게 함으로써 속임수를 감춘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쉽게 믿어버리고 심지어 책임까지 지려고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인간은 늘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 속는 것이다.


(중략)


나는 호프집 테이블에 모두 둘러앉아서 안주를 정하는 순간이 싫다. 모두들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말만 많고 결정은 나지 않는다. 카리스마 있는 누군가가, "야, 훈제족발 먹자. 다들 괜찮지?" 라고 정해줬으면 하는 마음까지 든다.


(중략)


빛나와 헤어진 나는 고시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밤거리를 걸었다. 캡슐 같은 방으로 다시 기어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마땅히 갈 만한 데도 없었다. 나는 어둡고 추운 놀이터의 벤치에 앉아 주머니에서 MP3플레이어를 꺼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버튼을 누르자마자 랜덤으로 플레이된 노래는 '뮤즈Muse' 의 <언인텐디드 Unintended>였다. 매슈 벨러미의 칼칼하고 담백한 보컬을 듣자 잠시나마 뼛속으로 스며드는 추위를 잊을 수 있었다. 평소에는 심상하게 듣던 노래였지만 그날따라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나는 MP3플레이어를 꺼내 액정을 따라 흐르는 가사를 읽었다.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가능한 빨리 너에게 갈게. 그런데 지금은 너 이전의 내 인생. 그 부서진 조각들을 바로잡아야 돼....... 너는 내 인생의 예정에 없던 사람. 내가 영원히 사랑하게 될 사람일지도................"
나는 매슈 벨러미의 음성을 들으며 빛나에게서 받은 충격과 모욕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도 그런 예기치 않은 사랑(my unintended)이 있을까? 이런 나를 구원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혹시 벌써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건 아닐까?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처럼 이제는 세상의 엄혹한 진실과 마주할 시간이 된 것은 아닐까?


(중략)


사랑이 운명이라고 믿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운명이란 맞힐 수 밖에 없는 답을 결국 맞히는 것이다. 사랑해야 할 연인들에게는 맞힐 수 밖에 없는 답이 즐비하다. 신화 속에서는 깨진 거울이 서로 만나 온전한 거울이 되는 얘기들이 나온다. 오이디푸스는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주몽은 끝내 고구려의 왕이 된다. 운명은 누구 말마따나 과녁에 명중하도록 쏘아진 화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운명은 백 퍼센트 명중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 이미 만난 한 남자와 여자가 그들의 만남을 운명이라 믿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다. 단 한 개의 단서도 치명적이며, 단 한 조각의 유류품도 무서운 확신이 된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무능력한 탐정, 서툰 수사관이다. 그들은 법정에서는 채택도 하지 않을 어수룩한 증거 하나만으로도 놀라운 신념에 도달한다. 누구도 그 신념을 철회시킬 수 없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신념. 그것은 운명에 대한 확신이다. 이 서툰 탐정의 눈에, 운명적 사랑이라는 사건의 전모는 이미 명백하며 범인의 검거는 식은 죽 먹기다. 화살은 이미 표적에 꽂혀 있고 표적으로 걸어가 십 점 만점의 정중앙에서 그것을 확인하고 뽑아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화살을 뽑아든 우리의 영웅은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이게 바로 운명적 사랑이라고.


(중략)


분위기가 갑자기 달아오른 것은 역시 상금 얘기가 나오고부터였다. 누군가가 지난주 상금이 삼천만원에 달했다고 전하는 순간 퀴즈방에 잠시 가벼운 탄식이 흐르는 것 같았다. 돈은 역시 상징이나 은유 같은게 끼어들 틈이 없는, 오해도 착각도 없는 순수한 추상이었다. 모두가 즉각적으로 그것의 위력을 이해하고, 자신만큼 상대방도 이해한다는 것까지 간단하게 이해한다.
곰보빵 할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돈 얘기가 나오면 진지해져야 한다는 것을. 수돗물도 정수장에서 집까지 오는 사이에 조금씩 새나가고 전기도 발전소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그 일부가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의 진심 어린 말도 곧잘 오해를 받는다. 내 입에서 나간 '사랑'은 네가 들은 그 '사랑'이 아니다. 나의 생각은 너에게 전해지지 않고 너의 생각 역시 나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왜곡되고 변질된다. 그러나 돈에 대한 말은 아무 손실 없이 그대로 전달된다. 시내버스 탑승구에 '요금 900원'이라고 씌어 있으면 그냥 구백원인 것이고 고시원 방값이 이십구만원이라면 그냥 이십구만원인 것이다. 주인이 내게 이십구만원을 달라고 하면 이십구만원을 줘야 하고 버스요금이 백원이라도 부족하면 운전기사한테 빌어야 한다. "아, 오백원인데 자세히 보니 구백원으로 보이네. 참 모든 사물은 보기 나름이야" 같은 말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중략)


"어이, 밤도 괜찮아?"

"네?"

다짜고짜 반말이었다.

"밤에도 일할 수 있냐구."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었지만 나는 소극적으로 저항해본다. 저항이라봐야 고작 반문뿐이지만.

"밤이요?"

"그래, 야간조."

"밤이라면 몇시를.......?"

"밤 열두시부터 아침 일곱시까지야."

최여사가 돌아가시고 난 후, 이상하게 뭐든 되묻게 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밤이요? 창문이요? 복리요? 뭐 이런 식이다. 세상에는 되물을 것들투성이였다. 어떤 세계에 들어가 그 일원이 된다는 것은 곧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게 된다는 뜻이었고, 무슨 말을 들어도 다시 되묻지 않게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체로는 몰라서 되묻지만 알면서 되물을 때도 있다. 그것은 힘없는 어린 남자가 세상에 맞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사보타주였다.


(중략)


그러나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득달같이 나타난 점주의 연기 아닌 연기였다. 그는 짐짓 더 요란하게 화를 내며 나를 모욕하고 도발했다. 사만원 없으면 죽나? 그리고 사기를 친 건 내가 아니잖아? 난 피해자라고!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나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콜라 캔을 걷어 차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깟 사만원 때문에! 콜라 캔은 길 한가운데로 날아갔다. 아무 짐도 싣지 않은 빈 덤프트럭 한 대가 그 캔을 밟고 지나갔다. 바퀴벌레를 손으로 눌러 죽일 때 나는 소리를 만 배쯤 증폭시킨 듯한 음이었다. 그 순간 나는 길거리에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다. 아니다. 바로 그 정신, '그깟 사만원 때문에' 라고 말하는 바로 그 정신 때문에 나는 세상에 속아넘어가는 것이다. 다른 자들의 밥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사만원 때문에 이 새벽부터 부지런히 사기를 치고 또 누군가는 그 사만원 때문에 해도 뜨기 전에 가게에 나와 알바를 족치는데, 오직 나만이, 이 한심한 이민수 만이 '그깟 사만원 때문에' 라고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정신이 나로 하여금, 만원만 더 달라는 사기꾼에게 내 돈도 아닌 남의 돈을 이만원이나 선뜻 내준 것이다. 방값 이십구만원짜리 고시원에 살면서, 천원짜리 컵라면에 유통기한 지난 삼각김밥이나 먹는 주제에 말이다.


(중략)


"나가자."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꺼냈다. "내가 낼게."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해서 좀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더 가난해진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남들 다 하는 것' 을 하고 그 '남들 다 하는 것' 때문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느라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중략)


이디스 워튼이라는 미국 여성작가, 혹시 알아? ㅎㅎ 답을 찾으려 머리를 막 굴리는 네 모습이 벌써 보이는 것 같아. 그래, 맞아. 『순수의 시대』쓴 사람. 그 사람의 소설에 이런 말이 나와.
"여자라는 존재는 방으로 가득한 저택 같은 거예요. 거기에는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가 있고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도 있고 가족들이 함께하는 거실도 있지요. 그러나 그것들 너머에는 전혀 다른 방들이 있답니다. 누구도 문고리조차 잡아보지 않은, 아예 그런 방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안다 해도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방들, 그리고 그 방들 중에서도 가장 깊은 방, 신성하고 신성한 그곳에 영혼이 홀로 앉아 끝내 오지 않을 어떤 발자국을 기다리는 것, 그게 바로 여자의 본성이에요."


(중략)


"제가 잘 몰라서 여쭤보는 건데요, 제가 이런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하려면 어떤 점을 개선하면 될까요?"

가장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우리는 아직 채용 여부를 결정한 적이 없는데, 왜 벌써 떨어진 것 처럼 굴어요?"

나는 질문을 바꿨다.

"그럼, 만약 제가 이 회사에 입사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어떤 점을 고쳐야 될까요? 꼭 알고 싶습니다."

그들은 서로 슬쩍슬쩍 눈길을 주고받았다. 겉으로는 난감해하면서도 속으로는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서로 대답을 미루는 눈치였다. 가운데 앉아 있는 남자는 아예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자기 앞에 놓인 백지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조금 전에 나에게 질문을 했던 남자가 말을 해주었다.

"원래 이런 얘기 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내가 대학 선배라서 해주는 거니까 어디 가서 하면 안 돼요. 음, 뭐랄까, 알다시피 우리는 금융회사라서 신용이 중요해요. 다시 말해, 사람을 믿고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우리 돈이 아니라 고객의 돈을 굴리는 거니까."

그는 지원서에서 내 이름을 다시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민수씨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현재 그런 부분에 대해 주변의 서포트를 받기 좀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어차피 신입사워의 신용이야 다 거기서 거기일 테니."

그는 '주변'이라고 돌려 말했지만 그것은 가족, 특히 부모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저,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질문이 너무 도전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어조에 신경을 썼다. 말꼬리를 내리고 유순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나는 이 사회가 나라는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그거예요.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요. 그런데 그게 언제나 가장 중요하단 말이에요. 집에 가서 내 말을 잘 생각해봐요. 사회는 그런 거예요. 여자라서 밀리고 나이가 많아서 잘리고 가난해서 대학을 못 가고 한국인이라서 차별받고, 그런 거예요. 그건 인정해야, 그래야 길이 보일 거예요. 배경도 재능의 일부예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같이 생긴 면접관이 큰 선심이나 쓰듯 말했다.


(중략)


언젠가 한결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잘못한 게 없지."

나도 맞장구를 쳤다. 사실 어른들은 우리 세대가 책도 안읽고 무능하며 컴퓨터 게임만 한다는 식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그건 완전 착각이다. 정작 책도 안 읽고 무능하고 외국어도 못하면서 이렇다 할 취미도 없는 사람들은 그날 면접장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던 면접관들이지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80년대에 태어나 컬러 TV와 프로야구를 벗삼아 자랐고 풍요의 9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 대학생 때는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2002년 월드컵에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는 걸 목격했다. 우리는 외국인에게 주눅들어보지 않은, 다른 나라 광고판에서 우리나라 배우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첫 세대다.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도 다양한 교육을 받았고 문화적으로 세련되었고 타고난 코스모폴리탄으로 자라났다. 도스가 윈도가 되고 보석글이 아래한글이 되고 유닉스 기반의 PC통신이 인터넷으로 발전해가는 것을 몸으로 겪었고 그 모든 운영체제 프로그램을 대부분 능숙하게 다룰 수가 있다. 예전이라면 전문 사진사나 찍을 법한 사진도 우리는 몇십만원짜리 카메라로 척척 찍고 과거엔 방송국에서나 하던 동영상의 촬영과 편집도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 윗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자라났고 이전 세대에 비하자면 거의 슈퍼맨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직업이 없다. 이게 말이 돼?


(중략)


우리는 인형가게를 나와 개미굴처럼 이어진 코엑스 지하를 계속 탐험했다. 바삭한 콘에 담아주는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하고 영화관 앞에서 요즘 어떤 영화가 재밌을지 떠들기도 하고 손을 잡고 광장을 거닐기도 했다. 그날을 생각하면 정말 그런 날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마냥 즐거웠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잡고 다니던 그녀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우리는 내내 많이 웃었다. 내가 있어 상대가 기뻐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상대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맛있었고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재미있었다. 우리는 여고생들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에 키득거리며 어딘가 SF영화의 세트 같은 코엑스 지하를 헤맸다.
그런데 이런 지극한 행복의 순간에도 인간의 상상력은 어느새 최악의 파국에 가 닿는다. 내게 찾아온 이 행복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에서부터 혹시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꾸민,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가장 극심한 고통을 맛보게 하려는 사악한 계략이라 생각하는 편집증까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비록 그 싹은 아직 크지 않을지라도, 마음속 깊숙한 어딘가에서 천천히 자라나고 있었다.


(중략)


마르셀 에메의 소설을 보면 날짜를 쿠폰으로 거래하는 나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차피 살아봐야 고달프기만 한 하루하루를, 가진 것은 돈밖에 없는 부자들에게 팔아넘긴다. 만일 가난한 사람이 열흘을 부자에게 팔았다면 그에게는 6월 20일까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6월 20일에 잠든 그는 7월 1일에 깨어나게 된다. 반대로 그에게 열흘을 사들인 부자는 6월 40일까지 살 수 있다. 골프도 치고 휴가도 즐기면서 6월을 보내고 넉넉하게 7월을 맞이하는 것이다. 학생때는 킬킬거리며 보던 소설이 지금 와 생각하니 호러영화 못잖게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어느새 나 역시 시간은 많은데 쓸 데는 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중략)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거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데?"

"글쎄, 막상 말하려고 하니까........"

나는 우물쭈물 얼버무렸다.

"말해본 적은 있어?"

"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응, 입 밖에 내서 말해본 적 있냐구. 한 번이라도."

"음..... 있는 것 같은데."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황당한 소망들을 늘어놓으며 그 순간을 모면해왔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충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렇다. 사람들은 남에게 별 관심이 없다. 그냥 할말이 없으니 그런 뻔한 질문들을 던질 뿐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취직했냐, 결혼 안 하느냐 묻는 것도, 사실은 아무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영안실 입구의 전광판에서 그녀의 이름을 확인했다. 호텔처럼 죽은 자에게도 각자의 방이 있었다. 이 세계는 혹시 무수한 방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신생아실에서 태어나 교실에서 배우고 소주방에서 술 먹다가 노래방에서 노래하고 찜질방에서 목욕하고 채팅방에서 채팅하다 고시원의 쪽방에서 잠드는, 그리고 끝내는 대형 병원의 영안실에서 마감하는 삶.


(중략)


서울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면 인터넷으로 하루를 시작했었다. 메신저에 접속을 하고 뉴스를 검색하고 메일을 체크했다. 인터넷 속의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고 어수선했다. 그래서일까. 그 시절의 아침엔 늘 얇고 가벼운 우울이 상한 우유처럼 냄새를 풍기며 몸 어딘가에 들러붙어 있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넘쳐나는 이런저런 연예기사들, 정치적 공격과 방어, 모함과 음모의 담론들, 몇 달 뒤면 뒤집히는 건강상식들의 세계는 얼마나 부질없고 부박한 것인가? 그 세계에 있을 때에는 잠시라도 그 소식들을 모르면 큰일날 것 같았는데 '회사'에 들어온 이후에는 어느새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삶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그야말로 하나의 '낚시'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컴퓨터와 인스턴트가 친숙한 현재의 20대 청춘을 그린 김영하 작가의 2007년 작.

20대는 비극을 살면서도 희극인줄 알고 희극을 연기하면서도 비극으로 받아들인다는 작가의 말 처럼 
이 책에선 '청춘' 이라는 단어가 역설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위태롭고 나태하고 한심하고 불안하다.

작가의 의도는 분명히 피력이 되지만 장치의 구성이랄까.. 좀 어딘가 심하게 허술한 구석이 곳곳에 숨어 있는 탓에 
'김영하가 쓴게 맞나..?' 하는 의구심까지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차라리 책을 더 길게 해서 발표했으면 더 나았을 지도... (아니면 제목을 '퀴즈쇼' 가 아닌 다른걸로 짓던지..) 
하지만 김영하 소설의 장점인, 그의 책이 다른것들보다 훨씬 '잘 읽히는 점' 은 여전하다.

특히나 주인공의 나이에 걸맞는, 때마다 다르게 발휘되는 자기합리화나 자기환멸. 
에 대한 표현은 비슷한 또래에 대한 동질감을 느낄 정도로 리얼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책에 해설을 단 한 사람은 '검은 꽃(2003)', '빛의 제국(2006)', '퀴즈쇼(2007)' 
이 세 작품을 김영하의 '망명 3부작' 이라 명명하기도 했지만 검은 꽃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한동안 sf소설만 읽어와서 그런지 일상적인 이야기들의 전개가 식상하고 한편으론 뻔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후딱 읽어버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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