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9일 14시 반 쯤 외할머니께서 소천하셨다.
그 날 오후 세시께 아저씨의 전화를 회사에서 받고
멍-하니 앉아서 눈물만 흘렸다.
마치 주마등처럼 할머니와 함께 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휙휙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어릴적에 내가 학교도 들어가기 전
시계 보는 방법을 알려 주시던 것 부터
종이로 개구리를 접는 법을 알려 주시던 일.
왜인지 한참 전에 돌아가셨던 외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가 어디선가에서 잡아오신 부엉이에게 줄
사마귀와 잠자리, 나비 따위를 잡던 기억.
그 때 할아버지가 잡아 준 잠자리의 꼬리에 실을 매달고
내 새끼손가락에 실의 반대쪽을 묶어
잠자리를 마치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니게 해 주셨는데
하필 내 귓가에 잠자리가 앉아서 쉬는 바람에
지금도 곤충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됐던 일들도 기억이 나고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무던히도 마실을 나가셨던 기억.
한번은 내 속옷이 마른게 없어서 한여름에 노팬티에 반바지만 입고 나갔다가
변소에서 볼일을 보던 와중에 고추가 지퍼에 찝히던 기억.
(다행히 내 고추는 무사했다 오오 신이여)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한참 후에
사진을 우리 집에 쭉 걸어두었는데
어느날 문득 엄마에게 외할아버지를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냐며 엉엉 울던 기억.
역곡 인근의 외할머니-막내삼촌댁에 늘 온 친지들이 모여 웃고 떠들던 기억.
외가 일가 친척들과함께 할머니 생신날 가족 사진을 찍던 기억.
한국은행 다니는 막내삼촌의 통기타 소리.
이 다음에 너희가 더 크면 기타를 제대로 알려 주시겠다던 삼촌의 약속.
한겨울 역곡의 할머니댁 밖의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가 사준 '날아라 슈퍼보드-저팔계' 의 바주카포 대포알 하나를 잃어버렸던 기억.
정광 아파트에서 할머니랑 같이 살 때
친구가 얄밉게 군다고 몇 대 쥐어 박고 집으로 도망쳐 왔는데
밑에서 아이들이 웅성 거리니까 할머니가 무슨 일이냐고 아이들에게 물으시곤
나에게 친구들 때리지 말라고 내가 갖고놀던 장난감 칼로 내 종아리를 때리시던 기억.
(그 이후로 싸움을 하지 않았어)
아빠가 총으로 잡아온 청둥오리를 삶아먹던 기억.
분명 아파트였는데 당시엔 보일러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5층까지 연탄을 나르시던 어떤 연탄집 아저씨가 한여름에 흘렸던 구슬땀.
왜인지 계산동 살던 우리 엄마랑 작전동 살던 둘째 이모랑 다투던 기억.
우리 집이 슈퍼를 운영할 때 몰래 돈통에서 500원 짜리를 슬쩍 하는걸 본 할머니가 엄마에게 알려 주셔서 엄청나게 혼나던 기억.
(그 이후로 도둑질을 하지 않았어. 훗날 내가 훔친건 여자들의 마음뿐)
성빈빌라에 살 때 공부 하라고 보내준 학원에서 만난 여자친구랑 몰래 만나는걸 엄마에게 들킨 후 엄청나게 혼났는데 내 편을 들어 주시던 기억.
막내삼촌이랑 나, 그리고 친척형-동생과 산책을 하다가 누가 길가에 싸 놓은 똥을 보고 친척 형과 내가 함께 헛구역질을 하던 기억.
송내와 중동 인근에 막내삼촌이랑 사실 때 종종 엄마랑 찾아 뵈면 골목을 꺽을 때 까지 아파트 9층 베란다에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시던 기억.
중동에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가신 곳에 계실 때 아저씨네 댁에서 쫓겨나서 갈 데가 없는 날 받아주셨던 기억.
컴퓨터 밤늦도록 하지 말라던 당시의 할머니의 핀잔.
오밤중에 갑자기 막내삼촌이 왔다고 나보고 피해 있으라던 기억.
(이 때 엄마가 급한 마음에 할머니 댁에 가 있으라고 하셔서 집주인인 막내삼촌의 허락도 없이 거기서 며칠 살았지. 어린 마음에 방세조로 할머니께 용돈이라도 드리라던 삼촌의 말에 반항심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감사했다)
결국 거기서 나와서 한 겨울 무보증에 반지하 원룸을 얻고 할머니와 엄마가 밥솥-이불-커피포트-전기장판을 들고 찾아오셨던 기억.
(아무것도 없이 저 네 개로 자취를 시작했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할머니 댁에 연락도 없이 찾아가면 늘 계란 하나와 밥을 식용유로 프라이팬에 볶아 주셨는데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조리하거나 엄마가 만들어도 할머니가 해 주신 그 맛은 안나더라.
엄마가 가끔 할머니 댁에 갈때 59쌀피자를 사가지고 가셨는데 할머니께서 피자를 너무 맛있게 드신다고 하시길래
월급날이 되면 가끔 도미노피자에 가서 가장 비싼 피자나 치킨을 사들고 할머니랑 함께 먹었던 기억.
(엄마가 사오는 얇은 피자보다 훨씬 맛있다고 좋아하시던게 눈에 선하다)
할머니가 교회 가시다 빙판길에 넘어지셔서 입원을 하셨는데
병문안 갔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던 기억.
막내삼촌 큰삼촌도 함께 울었던 기억.
아저씨 댁에 모시고 오신 뒤 찾아 뵈면 늘 한결같이 장가 언제 갈거냐고 물으시던 기억.
아저씨 댁 근처에 있는 애슐리에서 생신파티를 하던 기억.
입버릇처럼 나 결혼하고 애 낳는거 까지 꼭 보고 가시겠다던 할머니의 말씀.
(이걸 지키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
좀 더 아파지신 뒤 아저씨 댁에 가면 내게 언제나 말씀하시던 주안 약국 이야기.
찾아 뵐 때마다 아빠는 건강히 잘 있냐고 아빠 미워하지 말고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던 할머니의 말씀.
교회 빠지지 말고 잘 나가라던 말씀.
얼마 전 중환자실에서 말씀도 못하시고 눈물만 흘리시면서 오른 손으로 내 왼쪽 귓볼과 얼굴을 쓰다듬으시던 할머니의 손, 눈빛, 희미했던 웃음.
이게 마지막 이었다.
그 뒤엔 주무시는 얼굴만 뵀다.
어쩐 일인지 외할머니께서는 우리 집에서 함께한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다른 손주들 보다 할머니와 함께한 많은 기억이 있다.
8월 10일 입관을 하고 11일 오전에 부평 가족묘지에서 화장을 한 뒤 양주에 있는 납골당으로 모셨다.
한 여름이라
장례를 진행하는 내내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겠는 것들이 줄줄 흘렀다.
부디 이제는 아픈 곳 없이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그동안 저에게 많은 것 알려 주시고 다그쳐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왜인지 작년 겨울 부터는 가끔 드리던 용돈도 못 드렸던거 같은데 죄송하고 또 죄송해요.
남아있는 우리 외가 식구들 열심히 살아가라고 기도해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사랑합니다..
3일 동안 장례 치르신 아저씨 삼촌들 이모들 이모부님들 일가 친척 분들 고생하셨고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할머니 뒷바라지 해 주셨던 막내 삼촌 우리 엄마 감사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