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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Sep 28. 2016

신 [제 3부 : 신들의 신비]

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는 꽃들을 묶어 꽃다발을 만드는 리본에 불과하다. 하지만 꽃을 창조한 것은 내가 아니다. 꽃의 형태도, 색깔도, 향기도 내가 만들어 내지 않았다. 내게 한 가지 공이 있다면, 그것은 꽃들을 고르고 한테 모아 새로운 방식으로 여러분에게 제시했다는 것뿐이다.


(중략)


마타하리는 눈을 감고 암송한다.

「이것은 신보다 우월하고 악마보다 나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있고, 부자들에게는 이것이 부족하다. 만약 사람이 이것을 먹으면 죽는다. 이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답을 찾아냈어.」

「뭔데?」

「아무것도 없어.」

그녀는 예쁜 눈썹을 찌푸려 책망하는 표정을 짓는다. 참으로 이상하다. 왜 사람들은 진실을 말해도 듣지 못하는 걸까? 에드몽 웰즈가 말했듯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선물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은 선물을 받아도 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다>.


(중략)


마타하리가 한 무서운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네 백성들은 자기네 신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어.>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그동안 내가 그들을 위해 해준 그 모든 일들을 다 잊어버렸단 말이야? 하기야 나 자신도 인간이었을 때 어떠했던가? 상상의 신에게 끊임없이 요구하고 비난하고 간청하지 않았던가? ......그때 난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신이 날 위해 무얼 할 수 있는가?> 가 아니라 <내가 신을 위해 무얼 할 수 있는가?> 라는 사실을... 지금 나의 백성 인간들 역시 <신전>과 <민원실>을 혼동하고 있다. 그들은 건강과 사랑과 부와 영광과 영원한 젊음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적을 파괴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항상 더, 더, 더를 원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부당함의 억울한 희생자라고 느끼기 때문에, 죽도록 도와주어도 결국 불평만 잔뜩 늘어놓을 뿐이다. 또 그들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욕구를 얼른얼른 들어주지 않으면, 신을 모독하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다.


(중략)


「걱정할 것 없어 목욕재개를 위해 한 시간을 주었으니까. 그동안 관중은 키마이라들의 저글링 곡예를 즐기고 있겠지. 자, 아직 얘기할 시간은 남아 있어. 네게 한 가지 중요한 말을 해주고 싶어. 난 네가 우승했으면 해.」

「왜죠?」

「넌 A력을 대표하기 때문이야. 다른 신 후보생들은 마초들일 뿐이지. 모두가 각자의 문명을 통해 여성 혐오증과 여성에 대한 멸시를 노골적으로 표현했지.」

「하지만 그들 말고도 시몬 시뇨레와 에디트 피아프도 있고, 또 마타하리도 있잖아요.」

그녀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그녀들에겐 너와 같은...... 여성스러움이 없거든.」

그녀는 다시금 내 얼굴을 쓰다듬으려 손을 내밀고, 이번에는 나도 제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내게 들려준 그 무서운 이야기가 떠오른다. 여신이 되기 전, 아프로디테는 우리처럼 한갓 인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 아프로디테의 아버지는 그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떠나 버렸다. 아버지를 증오하게 된 그녀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즉, 남자들을 호리고 조종하고 농락함으로써 그들에게 복수하겠다는 거였다. 나의 영혼을 옭아매기 위해 그녀가 내게 주었던, 조그만 두 다리가 달린 살아 있는 심장이 생각난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이렇게 단언했었다. <그녀는 입만 열면 사랑 얘기고, 이 사랑이란 단어를 너무나도 좋아하지. 왜 그런지 알아? 그녀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야. 어떤 것에 대해 잘 모를 때, 오히려 그것에 대해 더 잘 말할 수 있는 법이거든.>


(중략)


미안해, 마타. 난 실패했어. 난 적수들을 과소평가했다. 훌륭한 생각들이 원초적인 폭력보다 더 강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여기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굵직한 몽둥이와 파괴의 욕구를 가진 자. 다른 하나는 논리적 사고와 건설의 욕구를 가진 자. 둘 중에서는 언제나 전자가 유리하게 마련이지.


(중략)


화면과 정신의 각성
다큐멘터리 전문 영화 제작자 피터 엔텔은「튜브」라는 작품에서 이미지가 우리에게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 보여 준다. 이를 위해 영화 관람자와 텔레비전 시청자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실험이 행해졌다. 두 그룹의 관객들에게 똑같은 천 위에 영사된 영화를 보여 준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한 그룹에는 영사기를 등 뒤에 놓고, 다른 그룹에는 영사기를 관객 앞에 놓음으로써 마치 텔레비전을 보듯이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을 관객의 눈이 정면으로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가 끝난 뒤 각 그룹에게 질문을 하는데, 첫째 그룹 관객들은 작품에 대한 분석 능력과 비판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반면, 둘째 그룹 관객들은 스스로 수동적이라고 느끼고 있었고, 작품에 대해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또 빛을 정면으로 받은 사람들이 영화 상영 시에 보여 준 두뇌 활동은 빛이 등 뒤에서 나간 사람들보다 훨씬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이유로 피터 엔텔은 텔레비전과 관련하여 <정신 기능의 쇠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빛을 정면으로 받으면 거리감을 상실하게 된다. 반대로 영화에서 보는 것은 빛의 반영이기 때문에 정신은 활동을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중략)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잠시 생각한 뒤 자동 연결 버튼을 한번 더 누른다. 다시 출판업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안해요.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던 그 미개척 주제의 자료 수집을 위해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어서요. 만일 당신 민족의 신을 만나게 된다면, 무얼 요청하고 싶나요?」

「글쎄요........... 음, 나는 요로 결석 때문에 고생하고 있소. 그게 발작을 일으키면 무지하게 아프죠. 팔짝팔짝 뛸 정도로 아파요. 약을 먹어도 소용없지요. 그래서 난 그 결석 좀 완전히 없애 달라고 부탁하고 싶소.」

「그럼 인류 전체를 위해서는요?」

「엥? 인류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소. 아...... 그래! 세금 좀 줄여달라고 하고 싶군. 자, 이따가 저녁때 봅시다!」


(중략)


「우리 아들은 선생의 책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우리 내외한테도 항상 그 얘기 뿐이죠. 전에는 책하고 담쌓고 지내던 애였어요. 그런데 선생 덕분에 독서에 취미를 붙이게 됐지요. 저나 제 아내는 그런 종류의 문학은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가 선호하는 건 좀 더...... 진지한 문학이죠」

「네, 이해합니다」

「제 아내는 아카데미 회원이자 대작가인 아르시발드 구스탱을 아주 좋아하죠. 특히 그의 문체를 좋아해요. 저는 자전적인 소설들을 높이 평가한답니다. 작가는 자신이 아는 것만을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따라서 작가 자신의 삶, 그것만이 책의 진지한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이죠.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소설들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위한 거죠.」

나는 짐짓 그의 말을 거들어 준다. 아이들...... 혹은 아이의 영혼을 간직한 사람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혹시 내가 자기를 조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는 눈빛이다. 나는 그를 최대한으로 안심시켜 주려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자, 청원서 서명은 어디다 하죠?」

그는 내게 종이를 내밀고 나는 서명을 한다.

「한 가지만 여쭤 보겠습니다. 만일 신을 보게 된다면 무얼 요구하시겠어요?」

「아, 좋은 질문입니다! 물론 로또 당첨이지요.」


(중략)


나는 한 신도 앞에 걸음을 멈춘다. 내가 떠들어서 화가 난 듯이 보이는 늙은 신사이다. 나는 조용히 말한다.

「선생님. 가기 전에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만일 선생님께서 신을 만나게 된다면, 무얼 부탁하시겠습니까?」

「나요? 에...... 40년 동안이나 충성스럽게 봉사를 했건만 뻔뻔하게도 나를 해고해 버린 우리 사장을 벌주라고 하겠소. 그런 자가 스스로 내 친구라고 떠들어 댔었지. 벌레 한 마리가 그의 안에 들어가 그를 갉아먹었으면 좋겠소. 안에서부터 다 뜯어먹어 버렸으면 좋겠소. 자, 이게 내가 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바요!」

저들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 속에 있구나.


(중략)


니콜라 테슬라
사람들은 니콜라 테슬라가 얼마나 뛰어난 천재였는지 잘 모르고 있지만, 현대의 위대한 발명품들의 대부분은 그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민 간 이 천재 과학자는 전기에 관련된 기술들을 무수히 발명해 냈다. 특히 교류 시스템(그때까지는 여러모로 불편한 직류 시스템만 사용되고 있었다), 방사선에 대한 이론, 무선 제어 장치(리모컨), 교류 발전기, 유도 전동기, 고주파 램프(네온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그리고 음극선관 텔레비전에 사용되는 테슬라 코일 등이 그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또 1893년에는 마르코니보다도 훨씬 일찍 헤르츠파를 이용한 무선 전신 잔치를 시연해 보였으며, 1900년에는 파동 반향의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훗날 레이더가 개발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모두 900여 개에 달하는 특허를 출원했는데 그 대부분은 에디슨이 가로챘다고 한다. 이상주의자였던 테슬라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들을 무상으로 대중에게 제공하기를 원했지만, 이는 오히려 당시 실업가들의 미움을 사는 이유가 되었다. 예를 들어 그는 에펠 답에서 강력한 전기장을 방출함으로써 온 파리 시민이 전기를 무료로 사용하게 되기를 꿈꾸었다. 1898년, 그는 규칙적인 진동을 일으킴으로써 건물 전체를 흔들리게 할 수 있는 지진 방샐기를 만들었다. 또 무선 원격 조종되는 어뢰 발사선들도 만들었는데 그중 한 척은 잠수함으로 발전 가능한 것이었다. 말년에 이르러 극도로 가난해진 그는 미국 공군을 위해 <죽음의 광선>을 개발한다. 또 우리가 공짜로 무한히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인 <우주 에너지>도 개발하려 시도하지만, 이는 당시의 다른 과학자들이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1943년 1월 7일, 그가 사망하자 FBI는 그의 모든 연구 노트와 제작 모형들을 압수해 간다. 불행한 삶을 산 그의 명성은 많이 잊혔지만, 그의 이름은 자기력선속의 단위 <테슬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중략)


나는 신문을 읽는다. 신문들은 언제나 똑같은 주제들을 또 전하고 있다. 전쟁, 살인, 강간, 파업, 인질 납치, 소아 성애증, 공해...... 문화 쪽으로는 추상화의 경향과 오로지 자신의 개인적 문제에만 천착하는 경향. 정치 쪽으로는 공약들, 데마고기, 그리고 모든 것을 말하지만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는 텅 빈 수사(修辭)들...... 사진은 스포츠난에만 유일하게 실려 있는데, 온몸이 스폰서 로고들로 뒤덮여 신이 나서 웃고 있는 애송이 억만장자들의 얼굴과, 단지 공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잘 운반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 애송이들을 우상으로 삼은 군중들이 열광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처럼 도처에서 승리하고 있는 것은 거짓, 멍청함에 대한 옹호, 그리고 분열되어 있기에 더욱 무력해진 지성의 마지막 보루들에 대한 뻔뻔스러운 자들의 손쉬운 승리이다. 가축 떼처럼 멍청해진 무리들은 음험한 사료를 먹으면서 더 달라고 열렬히 외쳐 댄다. 이제 가브리엘 아스콜랭의 창작 과정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신문을 읽고 있으면, 모든 민감한 정신이 지니는 영감의 주요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아드레날린이 서서히 혈관을 달궈 간다.


(중략)


나는 레스토랑의 불빛에 반사되어 마치 나를 조롱하듯 반짝이고 있는 조그만 보석 물고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나는 묻는다.

「신을 믿나?」

「물론이지.」

「신이 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해?」

「우릴 내려다보고 우리를 도와주지.」

「물론 그렇지. 그럼 그를 만나게 되면 무얼 부탁하고 싶어?」

「글쎄. 뭐 세상 모든 사람과 같아.」

「다시 말해서?」

「......50짜리 지폐 한장.」

이렇게 말하고는 웃음을 터뜨린다. 이 아가씨는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여자인 것 같다.


(중략)


그는 리모컨을 들어 델핀의 영상이 나올 때까지 되감는다. 그는 버튼들을 조작하여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내가 알기로 이 아가씨는 인간, 즉 죽을 운명의 존재일 거야. 이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안 될 텐데 말이야...... 내 종파에는 반돌고래 광신도들이 좀 있어. 그들에게 몇 마디만 해주어도 이 아가씨와 자네 파란 나비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질 거야. 우리 게임은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우리에겐 각자 자기 체스 말을 움직일 권리가 있다고. 자넨 아에덴에서 내게 불리한 증언을 했지. 그래서 나는 형을 선고받았어. 나도 정화자를 고안해 냈지. 그 결과 넌 여기로 떨어져 내리게 되었고. 이렇게 <꼼수>를 써서 서로에게 한 방씩 먹인 셈이지.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어. 하지만 피차에게 피곤한 일이겠지. 만일 자네가 협력을 받아들인다면 우린 이제 비기게 되는 거야. 여보라고! 왜 그 가치도 없는 인간들을 위해 사서 고생을 하는가?」

나는 잠시 생각해 본 다음 이렇게 말한다.

「음...... 결국 자네 말이 옳은 것 같네. 그래, 내가 틀렸고 자네가 옳았어.」

나는 항상 이 문장을 말해 보기를 꿈꿔 왔다. <자네가 옳았고 내가 틀렸어.>  토론이 벌어질 때면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우기다가, 결국은 처음의 확신을 간직한 채 돌아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 문장을 들어 보는 것이다. <자네 말이 맞아. 자네가 옳았고 내가 틀렸어.>


(중략)


적들에게서 칭찬받는 것은 묘한 즐거움을 안겨 준다. 어쨌든 어떤 기회든 놓치지 않는 이 양반의 능력은 정말이지 경탄스러울 따름이다. 또 덤으로 딸의 존경까지 회복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이미지를 <용감하게도> 드높여 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리라.

「이런 사람들은 자아만 비대해진 존재들이야. 개구리처럼 자신을 한껏 부풀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기회라도 잡으려 드는 인간일 뿐이라고.」

그녀는 이 기이한 애도 기사에 약간이나마 감격해하는 나를 보고 핀잔한다. 그런데 이 기사가 실린 신문은 다름 아닌 프루동의 언론 그룹인 <스쿠프>에 속한 것이고, 이 사실을 발견한 나는 쓴웃음을 짓는다. 인터넷 덕분으로 나에 대한 다른 기사들도 찾아볼 수 있는데, 대부분이 찬사 일색이거나,  뒤늦게 발견된 나의 재능에 놀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렇듯 세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비평가들은 예술가의 작품 생산이 완전히 중단되고 난 뒤에야 그의 작품의 총체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중략)


어느 날 저녁, 나는 델핀에게 말한다.

「정말로 웃기지 않아? 18호 지구에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있다니! 어떻게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컷들이 다름 아닌 이곳 18호 지구에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거지? 만일 외계인들이 내려와서 다른 행성들도 이 대회에 참가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면 어떻게 될까? 그럼 다른 종족들의 미의 기준은 우리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겠지. 그들에게는 긴 머리, 불룩 솟은 가슴, 자그마한 엉덩이가 반드시 미의 기준은 아닐 거란 말이야.」


(중략)


사랑의 여신이 내게 열렬한 키스를 퍼붓지만 난 반응하지 않는다.

「난 네가 미치는 게 아닌가 싶어 겁이 났었어. 18호 지구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원숭이들 틈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까!」

「인간들 역시 우리 같은 남자와 여자들이에요.」

「우린 남자도 여자도 아니야. 우린 신이야!」

그녀가 내 말을 고쳐 준다. 그리고 다시 날 꼭 끌어안고는, 내 상체에 자기 젖가슴을 문지른다.

「네가 18호 지구로 유배되어 내려간 건 너무도 억울한 일이었어. 거기 내려가 있는 기분이 어땠을까? 아주 이상했겠지? 마치...... 동물원 같았겠지.」

여봐요. 정말로 이상한 장소는 이곳 아에덴이란 말입니다. 여기는 동물원이라기보다는 정신 병원에 가까워요. 올림피아는 자아를 광기에 가깝게 부풀려 놓았고, 그 결과 각 신은 저마다 신경증이나 정신병의 한 형태를 체현하고 있을 뿐이죠. 아프로디테는 히스테리, 제우스는 과대 망상증, 아레스는 편집증, 이런 식으로......


(중략)


나는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거기. 천장처럼 드리운 구름들 위로 별 몇 개가 반짝이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나는 서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럴 때면 내가 처한 모든 문제들은 내 존재 전체를 빨아들일 듯 펼쳐진 광대한 우주에 비하면 너무도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살아가면서 겪는 실패, 배신, 굴욕, 분운 등으로 인한 그 모든 순간의 절실한 감정들은 망망한 창공을 한 번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그 무한의 감정 속에 간단히 흡수되어 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론적으로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한 위치에 있건만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서 무한한 상대성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평온함을 구하기 위함이다.


(중략)



나는 내가 노상 하는 그 질문을 또 내놓아 본다.

「여러분은 위대한 신을 만나게 되면 무얼 물어볼 거죠?」

아프로디테가 먼저 대답한다.

「나는...... 인간의 성적 욕망을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놨는지 묻고 싶어.」

에드몽 웰즈는 눈을 들어 하늘 어딘가를 쳐다보며 말한다.

「내가 창조자를 만나게 되면...... 이렇게 묻고 싶어. <당신은 당신 자신을 믿습니까?>」

이 말에 내 몸은 아프로디테에게서 살짝 떨어진다. 오르페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난 말야. 위대한 신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어. <당신은 저를 믿으세요?>」

그 말에 모두가 미소 짓고,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번에는 내가 말한다.

「난 신을 보게 되면 이렇게 묻고 싶어요...... 왜 무(無)가 아닌 우주를 창조했냐고요.」



 
















거의 반년만에 연재발행(!)을 끝마친 작가가 쓴 '개미' 이후의 최장편 소설.

무려 여섯권이나 되는 분량을 쪼개고 쪼개어 내는 바람에 발행처나 작가가 빈축도 많이 산게 사실이지만
(심지어 본 편은 옮긴이가 바뀌었다)
눈.에.띄.는. 결말이 참 헛헛할 뿐이다.
시쳇말로「잠자다 깨보니까 '아 씨발 꿈'」이 차라리 나을정도.
한껏 기대를 응집시켜놓고 권수로 6권. 페이지 수로 2834쪽.
그 방대한 분량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마지막 그 단어 한글자는
아무리 그의 작품들을 재미있게 본 독자로서도 배신감 내지는 백보 봐준다고 해도 오는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테다.

엔딩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
'이것 또한' 참신하다 라는 반응도 여럿 있던데 그러기엔 일을 너무 크게 벌렸었단 말이지.
이 소설 다음에 나오는 소설이'유토피아' 라는 제목의 소설이라는 소문이 돌던데,
개미부터 시작해서 타나토노트-천사들의 제국-신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나무를 손쉽게 불태우는 짓을 하는 작가를 봐서
그 책에 쉽게 손이 가진 않을것 같다.

하지만 '신'이 그렇게 나쁜 소설인것만도 아닌게 작가 특유의 비유법이라던지
정말 신의 눈으로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듯
세태를 관망하는 글솜씨나 고인 물인냥 점차 썩어가고 있는 대중문화나 매체에 대한 적절한 비판들은 
역시나 재미있다.

한편으로 자신을 대변하는 얘기도 해당 편에 들어가 있으니
아마도 프랑스 문학에서의 자신의 위치 또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걸 어슴푸레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그걸 빌미로(정말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자신을 대변하고 변호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부분이 꽤 많이 나온다.
역시 젊은시절에 시사잡지에서 기자로 뛴 경험도 글쓰는데 도움이 되는구나 라고 생각.

아무튼
반년이라는 시간과 어마어마한 분량,
그리고 적지않은 책값(-_-)이 아련하게 흐드러지는 결말 덕분에
이 작품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나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나
영원히 잊지 못할 '소소한' 어드벤쳐 물이 되겠다.


뭐, 이런저런것들은 다 떠나서 신이 되고자 하는 '학생' 들의 모임인
신후보생들중 한 사람(?)이 수업중간에 죄(!)를지어 자신이 맡아 지도하던(?) 어느 문명이 사는 그곳으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신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싶나요? 라고 물어보는 대목들은 나름 신선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나름.


+
다음 작품인 '유토피아' 에 대한 떡밥도 이 소설에서 살짝 맛을 보여주는데
설마 그 얘기를 '늘려서' 책으로 발행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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