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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Sep 29. 2016

유빅

필립 k. 딕

존경해 마지 않는 sf 작가, 필립 k. 딕의 장편 소설.

늘 얘기하지만 한국에서 천대받는 문학중 하나인 sf장르는, 2010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청소년 문학' 또는 '판타지 소설' 카데고리로 들어간다.
이미 오랜 세월을 지내오신 나의 아버지의 말씀처럼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런거 생각할 시간이 없다' 라는 시각이 맞는걸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전환' 을 갖기엔 너무나도 빠르게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속에 속한 한국인들 이니까.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여전히 sf장르 자체를 좋아하고 동경 해 왔다.
영화나 소설 뿐만이 아닌 미디어가 뱉어내는 모든 sf의 모습을 관찰하고 습득하고 있다.

그중에서 필립 k. 딕의 작품들은 언제나 충격과 삶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선사해 줌으로써 
책 읽기를 소홀히 하는 나에게 책 읽는 취미를 놓아버리진 말라고 충고해 준다.
덕분에 기존의 일상적인 테마를 다루는 소설들 보다는 sf장르의 소설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됐지만 때로는 물렁한 일반 소설들도 읽곤 한다.

이 책은 필립 k. 딕의 '과학자' 적인 면모나 그의 소설의 기반이 된, 철학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낸 책이다.
텔레파시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던지 미래를 내다보는 일종의 '능력자' 들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1966년 최초 발행 되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92년의 미래(필립 k. 딕이 살던 시대로서의 미래)이지만 2010년이 된 지금,
그가 내다본 미래의 세상이 그가 살던 세상과 별로 바뀐게 없다는 점에서 일종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필립 k. 딕이 그리는 미래는 주로, 유토피아적인 면과 너무도 찬란한 과학의 발전(혹은 인간 자체로서의 능력의 진보)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배경이 암울하다거나 뭔가 하얀 막 같은걸로 인해 꽉 막혀있는 듯한 갑갑한 미래를 그린다.
그가 살던 시대에 그런류의 미래 사회를 그려내는것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작가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자세이지만
당시엔 주류 비평가들에게 상당한 무시를 받아, 신경쇠약증세까지 겪었다고 한다.
그로인해 별로 행복하지 않은 작가의 인생을 살다가, 
1982년 그가 집필했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 로 완성되던 즈음 
영화의 시사회를 관람하고 집에 돌아온 뒤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미국 내에서는 이미 필립 k. 딕의 단편집 이라던지 그간 출판했던 중-장편 소설들이 양장본까지 발행된 상태.
국내의 팬층이 저조하니 가뭄에 콩나듯 가끔 이렇게 발행되는 장편소설들에 나같은 팬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비록 번역자도 모두 다르고 출판사의 이름도 각기 다르지만.

다시 소설속으로 들어가보면,
1992년 미래, 사망 확인이 된 시체들은 안치소에 들어가 생명유지장치의 도움으로 남아있는 '정신력의 끈' 으로 여생을 조금 더 보내게 된다.
그건 일종의 '영혼' 과 별반 다를게 없는데,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문학에 심취하던 필립 k. 딕이 1960년대 초반부터 
종교적이고 환각같은 쪽에 관심을 두면서 이런류의 소설이 완성됐다.
아무튼, 이 소설은 남의 생각을 읽는다거나 미래를 내다 본다거나 하는 초능력자들과 
그런 사람들의 능력을 상쇄시키는 반-초능력자들을 관리하는 회사인,
런사이터 어소시에이츠의 사장, '글렌 런사이터' 와 그의 직원들중 런사이터의 오른팔 격인 '조 칩' 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초반, 반-초능력자에 대항하는 초능력자 무리인 '홀리스' 와의 대결구도에 이어
어떤 사건으로 인해 생명유지장치(b.b. 모라토리엄)에 들어가게 된 주인공들의 몽환적인 경험들을 담았다.
전체적으로 시간이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설정이라던지 언제나 책을 읽고 나면 극적인 반전에 허탈감마저 드는 
필립 k. 딕의 문체는 그의 어떤 소설들 보다 짜임새 있고 구체적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애매한 단어들에 의해 갈피만 못잡지 않는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설.

다만 너무나 아쉬운건 머나먼 미래 행성의 이야기였던 영화, '아바타' 가 3d로 상영되는 이 시점에 
본 소설이 너무 늦게 출간된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이 소설이 영화 '매트릭스' 를 비롯한 수많은 sf 영화들에게 영향을 끼친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미 필립 k. 딕의 소설에 익숙해져버린(얼마 출판도 안됐었지만) 국내의 소수 팬들에겐
결말을 충분히 예측까지 할 수 있는 소설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고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괴상한 표지와 제목 덕분에 손이 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루도 안되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도가 있으니까(위에서 말한것 처럼 초반의 애매한 단어들만 잘 견딘다면).
책의 작은 꼭지들 아래 작게 써 있던 '유빅' 에 대한 광고가 후반에 가서야 이해가 되는
소설 내용처럼 참으로 독특했던 소설.




















"잠깐 기다리십시오."

헤르베르트는 냉동 팩 저장소로 가서 3054039-B번을 검색했다.
그는 해당 구역으로 가서 부착된 적재 보고서를 꼼꼼히 살폈다.
남아 있는 반생이 불과 보름밖에 되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았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고는 자동으로 휴대용 원형활성 증폭기를 관의 투명한 깍지 속으로 밀어 넣고는 채널을 맞췄다.
그리고 뇌의 활동을 가리키는 고유 주파수에 귀를 기울였다.
스피커를 통해 희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다음 틸리가 발목을 삐었는데 절대로 나을 것 같지 않았지. 그렇게 바보같이 금방 떠나려 하다니......"

만족한 그는 증폭기를 뽑고 3054039-B번을 상담실로 운반할 담당 직원을 배치했다. 고객은 그곳에서 노부인과 만나게 될 터였다.

"확인해 보셨나요?"

고객이 정액 포스크렛을 지불하면서 물었다.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헤르베르트가 대답했다.

"완벽하게 작동되었지요."

그러고는 스위치들을 가볍게 조작한 다음 물러섰다.

"소생의 날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객은 냉동 팩 덮개 속에서 김을 내뿜는 관과 마주 보고 앉은 다음 양쪽 귀에 이어폰을 꼽더니 마이크에 대고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플로라 할머니, 제 말이 들리세요? 전 벌써 할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은데요, 할머니?"

헤르베르트 쇤하이트 폰 포겔장은 생각했다.

'상속자들에게 내가 죽으면 한 세기 후에 나를 맞으라고 유언하겠어. 그래야 모든 인류의 운명을 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상속자들이 엄청난 유지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그것을 잘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속자들은 그의 유언에 반기를 들고 시신을 냉동 팩에서 꺼내 매장할(제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것이다.

"매장은 야만적인 짓이야."

헤르베르트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우리 문화의 원시적인 잔재지."

"그렇습니다, 사장님."

타자기 앞에 앉아 있던 비서가 그의 말에 맞장구쳤다.


(중략)


다시 부엌으로 돌아온 그는 여러 개의 주머니를 뒤진 끝에 겨우 동전 하나를 찾아서 커피포트를 작동시켰다.
적어도 그에게만큼은 아주 특별한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다가 다시 시계를 보고 이미 15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힘차게 아파트 문으로 걸어가 빗장을 풀고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이 말했다.

"5센트입니다."

그는 주머니를 뒤졌다. 동전을 더 이상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내일 돈을 주겠네."

그가 문짝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문은 굳게 잠긴 채였다.

"내가 네게 돈을 주는 것은 일종의 팁이라고. 실제로는 네게 돈을 낼 필요가 없는 거야."

"제 생각은 다른데요."

문짝이 말했다.

"이 아파트를 구입했을 때 서명한 구입 계약서를 보시죠."

그는 책상 서랍에서 구입 계약서를 찾았는데, 처음 서명을 한 뒤로 계약서를 봐야 할 일이 여러 차례 있었던 것이다.
확실했다. 문을 여닫는 데 드는 비용은 필수 요금이었다. 팁이 아니었다.

"제 말이 옳다는 것을 아셨군요."

문짝이 밉살맞은 소리로 말했다.
조 칩은 싱크대 옆 서랍에서 스테인리스스틸 나이프를 집어 들고 돈을 집어삼키는 아파트 문짝을 고정한 볼트를 풀기 시작했다.

"선생님을 고소하겠어요."

첫 번째 나가사 떨어졌을 때 문짝이 말했다.
조 칩이 대꾸했다.

"난 문짝 같은 것한테 소고당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하지만 고소당한다고 해도 괜찮아."


(중략)


조 칩이 여자 쪽을 보고 말했다.

"그들은 당신에게 반(反)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네."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나도 당신네 내탐자가 키부츠의 카페테리아에 앉아서 말해 줄 때까지는 몰랐거든요. 그러니까 아마 모르고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그 사람 말이, 당신이 테스트 배터리로 내게 확실한 증거를 보여 줄 수 있다던데요."

"만약 테스트 결과가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 어떨 것 같아요?"

패트는 곰곰 생각하는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 능력은 아주 안 좋은 것 같아요. 난 아무것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사물을 움직이거나 돌멩이로 빵을 만든다거나
잉태도 하지 않고 애를 낳는다거나 병든 사람의 진행 과정을 역전시킨다든가 하는 것도 말이에요.
마음을 읽는 것도 아니고요. 미래를 내다 보는 것 같은 흔한 재주를 부리지도 못하죠. 그저 누군가의 능력을
무효로 만들 뿐이에요. 그건 마치......"

그러면서 그녀는 몸짓을 해 보였다.

"뭔가를 망치는 일처럼 보여요."


(중략)


"5센트입니다."

커피숍 문이 닫힌 채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한 쌍의 남녀가 밖으로 나오면서 곁을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민첩하게 열린 문 사이로 들어가 빈 스툴에 앉았다.
그는 카운터 옆에 상체를 구부린 자세로 앉아 양손을 깍지 끼고 메뉴를 읽었다.

"커피를 주게" 하고 그가 말했다.

"크림이나 설탕을 넣을까요?"

커피숍을 관리하는 단자에 붙은 스피커가 물었다.

"둘 다."

작은 창이 열리고 커피 한 잔과 종이로 포장된 조그만 설탕 봉지 두 개,
시험관처럼 생긴 크림 용기가 미끄러져 나오더니 카운터에 앉은 그의 앞에 와서 멈췄다.

"국제 통화로 1포스크렛입니다."

스피커가 말했다.
조가 말했다.

"뉴욕 런사이터 어소시에이츠의 글렌 런사이터 앞으로 계산을 청구하게."

"고유 신용카드를 넣어 주세요."

"지난 5년 동안 신용카드 같은 것을 지니고 다닌 적이 없어. 그래도 난 빚을 지지 않......"

"1포스크렛입니다."

스피커가 말했다. 스피커에서 불길하게 똑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10초가 지나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그가 포스크렛을 건네주자 똑딱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당신 같은 사람들 없이도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습니다."

스피커가 말했다.

"오늘날에는" 하고 조가 격분한 어조로 말했다.

"나 같은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너를 집어던지지. 평형 유지기계에 의한 포학의 종말이 도래할 거야.
인간적 가치와 동정심과 소박한 온정의 시대가 돌아올 것이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시련을 겪고 나서
정말 기운을 내서 일을 해야 할 때 일할 수 있게 해 줄 뜨거운 커피가 필요한 나 같은 사람은
포스크렛이 있든 없든 뜨거운 커피를 마시게 될 거야."

그는 소형 크림 병을 집어 들었다 내려놓았다.

"게다가 네가 내놓은 크림인지 우유인지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나는군."

스피커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작정인가? 포스크렛을 원할 때는 그토록 말이 많더니."

조가 말했다.


(중략)


어떤 의미에서 보면 런사이터는 살아 있다, 단지 모라토리엄에서 그를 깨우지 못한 것뿐이지, 하고 알은 생각했다.
모라토리엄 소장은 분명 중요한 고객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폰 포겔장도 전화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습니까?" 하고 그가 조에게 물었다.

"소장도 그의 목소리를 들어 보려고 했지요. 그러나 그가 들은 것은 침묵과, 아주 먼 데서 나는 것 같은 공전음뿐이었어요.
나도 그 소리를 들었죠. 아무것도 없는 소리. 완벽한 무(無)에서 나는 소리. 아주 이상한 소리였습니다."

"그 점은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알도 자신이 왜 그런지는 알지 못했다.

"폰 포겔장도 그 음성을 들었다면 좀 나았을 텐데요. 적어도 그렇다면 그것이 단지 당신의 환각이 아니라
정말 그 음성이 들렸다고 확인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아니면, 그 점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가 환각에 빠졌을 수도 있으니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종이성냥의 경우처럼.
그러나 일어난 일들 가운데는 명확히 환각이 아닌 일들도 있었다. 기계들은 못 쓰게 된 동전을 토해 냈다.
객관적인 기계들은 물리적 적합성에만 반응하도록 장치되어 있을 테니까.
거기에는 심리적 요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기계는 상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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