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존일기

늘 외우던 전화번호를 잊는다는 건

by 노군

예전에야 다들 친한 친구, 가족, 친척들의 전화번호를 외웠지

지금은 거의 아무도 친구나 가족의 전화번호를 달달 외우며 살지 않는다.

심지어 부모님의 번호마저 당장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연인 사이끼리는 오죽할까.



스마트폰의 발달로 인해 전화번호만 한번 저장하면 카카오톡 같은 무료 핸드폰 메신저들에서 누구인지 바로 확인이 되니까.

그리고 스마트폰으로도 워낙 보고 들을게 많은 시대라 굳이 번호를 외우는 사람들은 날로 줄어든다.



비가 내리는 새벽시간이 되면 가끔 가장 최근에 오랫동안 만난 사람의 전화번호를 외워버려서 주소록에 번호를 저장하고 카카오톡을 열어본다.


미련이나 후회 따위가 아니라 그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할 뿐.

서로 교집합으로 알고 지내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안부를 묻는 말을 하면 반드시 상대의 귀에 들어가기 마련이니까.



내가 살면서 만났던 여자들 중 가장 최악의 여자였지만 최근 만난 사람들 중엔 그래도 오래 만났다고 의리로나마 안부를 물어오던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가끔 생각나는 새벽에 연락처를 기억 속에서 더듬어 몰래 훔쳐보던 사람이었는데



오늘 신기하게도 연락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영 안 잊어버릴 줄 알았는데 신기하다.



그 사람은 이미 아마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겼나 싶은데

그게 용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미친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하라 해도

그 사람과 헤어지는걸 백번이고 선택하겠지만


막상 연락처가 기억이 나질 않으니

어딘가 섭섭하다.


뭐 어딘가에서 잘 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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