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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Oct 10. 2016

학생 봉사활동 길잡이3

희망의 섬 소록도

소록도라는 섬을 처음 가 봤을 때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봉사활동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었던 나는
교회 목사님의 반강제적인 권유(?)로
예인교회 선교팀에 합류하여 소록도에 가게 되었다.
그 곳엔 우리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대략 200여명쯤…).
 
밤 11시에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듣고 출발하여
소록도에 도착했을 땐 어느덧 아침 7시였다.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인천에서 약 8시간이 걸린다)
 
난 아무 것도 몰랐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여기에 누가 있고,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지....
 
첫째 날 -
난 무서웠다.
손과 발이 썩어서 없는 사람들이 우릴 반겼기 때문이다.
다른 봉사자들의 권유로 그 환자들과 손도 잡아보고,
껴안아보기도 하였다.
난 식은땀을 흘리며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내가 보았던 다른 봉사자들을 마치 딴 세상 사람들 같았다.
‘어떻게 사지가 다 썩어 없어진 사람들과
우리가 같은 인간으로 살아가는가...’
그들의 육체가 썩었다면 나는 정신이 썩어 있었으므로
썩은 생각들이 그 당시에는 내 머릿속에 가득 메워져 있었다.
 
둘째 날 -
새벽에 일어나 새벽 기도를 다녀오고 아침을 먹은 후,
나는 벽에 붙은 봉사활동일지를 보았다.
(‘봉사활동 일지’란 4박 5일간의 긴 봉사시간을 짜임새 있게 정리해 놓은 것)
난 순간 얼어붙어 버렸다.
“목욕시켜드리기” 가 한 동안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설마 내가 하진 않겠지?
얄팍한 생각.
역시 난 억세게 재수 없는 녀석이었다.
괜히 혼자 빈정거리다가 눈에 띄어서 목욕 팀
(환자 분들을 씻겨드리는 팀) 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다.
할아버지들의 알몸을 보고…,
그 몸을 씻겨드리고…
그분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때의 난 솔직히 그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
난 집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셋째 날 -
‘오늘은 목욕 팀에 끼면 안 돼’ 라고 무진 생각했는데
오늘 맡은 임무는 다른 일이었다.
실로 굉장한 기쁨이었다.
사막에서 눈앞의 오아시스를 쳐다보는 듯한 기분.
모두들 연장을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한참을 걸었다.
굉장히 넓은 잔디밭이 보였다.
(아마 보통 학교 운동장의 4배는 될 듯 싶었다)
근데 그 잔디 위엔 어디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짚더미들이 많이 널려 있었다.
난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님 저게 뭐죠?”
“응 제주도 봉사팀들이 저번에 올라와서
잔 풀들만 다 베어 놓은 거야.”
“아~. 그래요?”
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목사님, 그럼 여긴 할 일이 없잖아요”
잔디밭에서 웅덩이까지는 약 1km는 더 돼 보였기 때문이다.
푹푹 찌는 한여름(8월 중순) 더위에
긴 삼지창 같은 걸로 짚을 리어카에 실은 다음,
끌고 가서 웅덩이에 쏟아 넣은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난 그 날 밤 온몸이 쑤셨다.
 
넷째 날 -
드디어 집으로 가는 날이다.
난 상쾌했다.
정말 난 그 때까지만 해도
‘여기에 다시는 오리 말아야지....’ 라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떠나기 전에 소록도에 계신 장로님을 초청해
말씀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난 조바심이 났다.
‘피곤해 죽겠는데 그냥 좀 가면 안 되나?’
그 장로님은 어린 시절에
‘한센병’ 에 걸리셔서 이 섬으로 강제로 끌려 오셨다고 한다.
일제 탄압의 압박 속에 모든 걸 꿋꿋이 참고 살아오시며
많은 걸 깨달으셨다고 한다.
썩은 두 손으로 흙을 빚어 길을 만들고…
꽃을 가꾸고 집을 짓고…
그런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셨던 건
바로 주님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빛과 희망을 잃지 않은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해방이 되어 편안하게 잘 살고 있고
부인까지 얻으셨다고 자랑을 하셨다.
그리고 그 봉사 기간 동안 내 가슴 속에 품었던
쓰레기 같은 생각들을 눈물로 반성했다.
난 아쉬움 마음을 달래며 소록도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소록도는 일제 강점기에 한센병에 걸린
(흔히들 ‘문둥병’ 혹은 ‘나병’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한센병’으로 명명되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서,
옛날엔 “그 섬에 들어가면 죽어서 나온다.”
라는 속설이 나돌아서 이웃 섬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고 한다.
한센병의 시초는 언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처음에 한센병이 나돌았을 때에는
2,000여명의 환자들이 살았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 병은 전염성도 없고
환자들도 700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서 남은 환자 분들마저
다 돌아가시게 되면 관광 명소로 바뀔 만큼 경치가 좋고 아름답다.
 
중요한 건
그 옛날 아무 죄도 없던 그들을 부려먹고 실험했던 사람들이
‘일본인’ 이라는 것이 날 참을 수 없게 한다.
(물론 ‘일본인’ 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그 섬에서 억압받던 사람들은 ‘장애인들’ 이었다)
 
‘그들은 알까...? 그때의 소록도 사람들의 고통과 절규를...’
그들은 죄가 없었다.
그들도 자식들이 있었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었다.
세월은 흘러 간 것이라 따질 필요 없겠지만,
지금의 우린 기억이라도 하고 있어야 한다.
현재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소록도에 살게 하는 것)
우리의 그릇된 시선과 편견이라는 것을…
 
지금 내 나이 열 여덟,
많은 걸보고 느끼는 나이다.
나에게 있어 소록도 방문은 조그마한 내 인생에
한 획을 그을 만큼이나 커다란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어느 덧 소록도를 다섯 차례 다녀왔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 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우릴 기쁘게 반겨 주신다.
난 그분들의 그늘진 얼굴을 뵌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분들의 눈물 또한 본적이 없다.
매년 그곳에서 많은 걸 느낀다.
수많은 환자 분들의 희망.
그분들은 팔다리가 없어도 언제나 행복한 분들이시다.
 
나는, 생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정답은 바로 하나님이었다.
주님이 언제나 그분들과 항상 함께 하고 계시고,
소록도에 갈때마다 늘 주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하고 돌아온다.
 
내년에도 할아버지 할머니께 찾아갈 것이고,
나이가 들어도 적극 후원할 것이다.
“절망이 아닌 희망의 섬 소록도”
 
내가 소록도 봉사를 함께 한
‘섬․나․회(섬김과 나눔의 회)' 라는 단체는
정말 뜻있고 주님께 신실하신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사람들 몇몇이 모여 만든 모임이다.
 
꽤 오래 전부터 모임을 만들어,
매년 여름과 겨울에 수많은 학생들과 일반인을 이끌고
소록도 봉사를 하는 조촐한(?) 모임이며
한번 모이는 인원은 200~300명이다.
거기엔 봉사 시간 확인서 때문에 오는 아이들도 몇몇
있지만 거의 대부분 봉사활동 확인서를 원하지 않는다.
이번 여름에 갔을 때는
‘정말 쟤 봉사하러 온 애 맞아?’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너무 가식적이고 껄렁한 애들이 많이 왔었다.
 
소록도 봉사활동에는 어려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흥미롭다.
거의 모두가 소록도에 와서 마음의 변화를 받고 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봉사활동에 대한 믿음이 아직 부족하다면 소록도에 한 번 가보라. 당신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봉사라는 것, 정말 힘든지 그때야 알게 되었다.
이건 그냥 파출소 앞마당만 치우는 일이 아니다.
소록도에선 악취 나는 그들의 화장실을 치워야 하고
그들이 거주하는 방도 청소해야 한다.
물론 다른 봉사활동이 쉽다는 건 아니다.
소록도에선 그 어떤 봉사활동보다 더 값진 무언가를 얻고 가게된다.
 
난 당신에게 다시 한번 권하고 싶다.
삶의 애환과 그들의 장애가 준 어려움,
그리고 빛을 바라보며 사는 그들을 돕는 것이야말로
정말 보람된 봉사활동이 아닐까?
 
 
 
 
 
(2000년 9월)
 
 
 
 
 
 
 
 
 
 
이 글을 고 2때 가을쯤 썼었다는 생각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무슨 학생들을 위한 보조 교재 정도로 쓰이고 있는 듯..
(엮은 사람이 편집을 발로했어..
중간에 막 자르고 맞춤법도 틀리고)
 
굉장히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던 사춘기를
아주 잘 여과시켜줬었다는 기억이 난다.
소록도 방문이 말이다.
 
처음 가봤던게 벌써 15년전 일..
서른 넷이셨던 어느 여성분이 마지막 '젊은' 환자였는데..
다시 한번 가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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