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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Oct 19. 2016

자백

spy nation

한국은 나쁜나라 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한국은 나쁜나라 입니다.






미안하지 않으세요?






40년이나 전에 있었던 일이고.. 저하곤 관계 없는 일입니다. 기억에 없습니다.










자백은 좋은 다큐다.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가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다.

국정원이 내놓은 명백한 증거는 동생의 증언, '자백' 이었다.

몸 속에 흐르는 피만큼 시뻘건 '빨갱이' 를 잡아 쳐 넣고자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심장부인 '국정원' 이,

최선을 다해 유우성이라는 남파 공작원을 밀어붙인다.

이 사태를 한 발 뒤에서 지켜본 '뉴스타파' 의 최승호 pd가 뭔가 미심쩍은 구석을 발견해,

국정원이 내 놓은 모든 증거물을 역추적해 간다.

결국 2015년 10월, 대법원은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이 사건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 이라는 대한민국 검찰과 국정원의 불명예로 끝이 난다.



본작은 이 모든게 사실 그대로 담긴 다큐멘터리이다.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게다가 정치적 색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게 분명한 듯한 요지의 영화를 보게되면

되도록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려고 한다.

그야말로 '제 3자의 눈' 같은거 말이다.


영화는 나같은 관객들을 염려했는지 확실히 초반부에 관객들에게 되도록 중립적인 입장이 되라고 요구하는 씬들이 많다.

어딘가 엉성하고 허술하며 '에이 설마' 하는 생각이 가슴에 맴돈다.


하지만 극 중반부로 갈수록 '혹시' 는 '확신' 이 되고 우려했던 장면들이 연이어 쏟아져 나온다.

국정원과 검찰이 한 입으로 외치던 증거물들은 최승호 pd가 역추적해 날조된 위조문서임을 밝혀내고,

이야기의 큰 흐름의 가운데 있는 유우성씨의 사건에 결정적인 증거가 된 여동생의 '자백' 은 온갖 위협과 겁박에 의한 거짓 증언임이 밝혀진다.


이 모든게 2012년과 2015년, 총 3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단 한명의 간첩을 만들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고

수많은 거짓과 날조가 아주 중요한 증거물이 되는 사실에

'대체 나는 지금 몇 세기에 살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승호 pd의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고

심지어 북한이 눈 앞에 보이는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 북한으로 전화통화까지 하며

국정원에게 취조를 받다가 자살을 한, 어떤 남자의 자녀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통보하는 장면에선

최승호 pd의 밀어붙이기식 취재 방법과 더불어

그가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있는지 빤히 보이는 대목이었다.

(정말 이 씬은 시도조차 하지 않음이 나아 보였다)



그렇다고 아주 심각하기만한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말도 안되는 객관적 사실들만 전달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미 지난' 일이기에 관객에게 쓴웃음을 안겨주는 대목들도 여럿 나온다.






날조된 증거물과 유우성씨의 여동생의 '위증' 을 가지고도 룰루랄라 제 할일을 하는 검찰이 해당 사건으로 인해

정직 1개월 만을 받았다는 대목과






당시 국정원을 전두지휘하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비웃음


'저 새끼들은 사람 새끼도 아니구나' 라는 실소를 머금게 해준다.

(실제로 극장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비웃음이 카메라에서 멈칫, 할 때 관객들 거의 모두가 빵. 터지더라)




하지만 이 영화의 약점은 딱 그정도일 뿐,

유우성씨와 국정원 간첩 자살사건을 넘어 시점을 조금 더 뒤로 돌린다.


그 옛날 '남산' 하면 떠오르던 군부독재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이 등장하는 대목.

그 사이에 젊은시절 일본 학생 신분으로 서울대로 유학을 왔다가 북한의 지령을 받고 학생운동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난 김승효씨가 있다.





그 고문 덕에 정신분열증을 앓게 된 비운의 청년이다.


인터뷰 중간중간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리는가 하더니 이윽고 일본말로 뭐라뭐라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정말 거짓말 처럼 한국말로 또박또박 이야기를 한다.

(김승효씨는 평소 한국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은 나쁜나라 입니다.

박정희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한국은 나쁜나라 입니다."



라고.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영화의 중반께 들었던 '확신' 이 '분노' 라는 감정으로 바뀌는 걸 볼 수 있다.

그 시절 그저 이유 없이 사그러져간 김승효씨같은 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밤에 잠 안자고 모여서 책 읽는다고 빨갱이,

대통령을 음해하는 노래를 머리 기르고 통기타 치면서 부른다고 빨갱이,

자신들의 사상과 다르다고 빨갱이..



빨갱이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최승호 pd 는 그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수족이었고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까지 역임했던 김기춘이라는 인물도 인터뷰하기에 이른다.





김기춘씨는 이미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최승호 pd의 어마무시한 패기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예전 같았으면 저 위대하신 김기춘씨에게 감히 말도 못걸었을 기자 나부랭이가)



이 다큐멘터리는 대한민국 정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슬몃 올라간 다음

그동안 있었던 간첩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과 연도가 죽- 올라간다.

정말 끊이지 않고 올라가다가

1997년에서 잠깐 끊기고 2011년 부터 다시 시작되는 걸 볼 수 있다.


그간 거쳐간 주도권을 쥐었던 정권을 떠올려보면 쉬이 계산이 되는 연도 수다.



우리는 대체 누구를,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진보든 보수든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네이버든 다음이든

좌파 빨갱이든 극우파든

나는 관심도 상관도 1도 없다.



다만 적어도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고 21세기를 살아간다면

'사실' 과 '상식' 이 통하는 시대에 살고 싶다.



당신은 안그런가?












+

이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놓친 이들은

iptv로 결제해서 보던지 조금 기다리다가 토렌트로 다운받아서 보던지 해라.

(아님 상영시간이 기괴하게 책정된 극장-2016년 10월 중순 기준-에 가서 보면 더 좋고. 난 물론 극장에서 봤다. 기괴한 상영시간 억지로 짜 맞춰가면서)


당신이 보고 싶은 모든게 담겨있다.

어차피 이런 좌빨 다큐멘터리는 극장 상영관도 많이 잡아주지 않는 21세기다.

보고 싶었다면 어떤 방법을 쓰던 반드시 봐라.






++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신기한 경험을 하나 한 게 있는데

평소 tv를 잘 안보는 버릇이 있지만(어차피 집에 tv도 없음),

영화대로라면 인터넷 기사로도 저 당시 유우성씨에 관한 기사를 한 번이라도 봤어야 하는데,

(영화를 보면 유우성씨의 기사를 정말 어마어마하게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왜냐고? 정권을 그 때 누가 잡고 있었는지 잘 기억해봐)


나는 이 영화에서 저 유우성이라는 사람 처음 봤다.

진짜다.



신기하지?

나도 신기해.



영화 초반에 유우성씨의 이야기가 허구 인줄 알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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