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배가 하는건 노력이고 제가 하는건 미련한 거예요?
-넌 꿈이 뭐니?
-공무원이요.
-아니, 그런거 말고 꿈 말이야. 아이돌이 된다거나 세계여행을 한다거나 그런 거.
-아뇨, 저는 정시에 칼퇴해서 집에서 tv보면서 맥주 한 잔 때리는게 꿈이에요.
무서우니까.
공부는 영 적성에 안맞고, 운동은 쉬워보여서 하는거 아니야?
-거기 뒤에, 자는 애 깨워라.
-선생님, 예체능인데요.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성장기.
네 살의 나이에 선천적 멀미 증후군으로 세상의 모든 교통수단을 탈 수 없는 만복(심은경) 은 '걷기' 로 왕복 네 시간을 통학하는 고등학생이다.
뭐 하나 잘 하는 게 없고 흔한 취미 하나 없는 만복에게
담임선생님이 추천한 '경보'.
꿈 없던 평범한 고등학생이 전국체전을 목표로 할 수 있는 데 까지 최선을 다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전형적이고 허황된,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꿈' 에 관한 영화다.
늘 최선을 다 하고 최고가 되라 다그치고
네가 지금껏 뭔가 좋은 성취를 얻지 못한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 끈기가 없어서 라고 지금 이걸 보는 당신에게 손가락질 하는 세상에
아주 작은,
요맹~~~~~큼(예고편의 심은경의 손꾸락 제스쳐) 의 반기를 든다.
앞으로 몇 발만 내딛으면 잔혹한 현실에 발을 딛게 되는 고등학생들에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담임선생님(김새벽) 같은 사람은 독이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 잡는 아이에게 허황된 꿈을 쥐게 할 수도,
정말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길을 알기 쉽게 다독여 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결과적으로 담임선생님이 만복이에게 쥐어준 꿈은 실보단 득이 많은 경험이었다.
그것만으로 어떤 성취를 이룬게 아닐까.
영화는
조금 오글거리더라도 더 세게 나갔으면 좋았으련만
전국체전에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만복이는 '딱, 여기까지만' 하고 끝내버린다.
어차피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승리의 드라마도 오글거리긴 마찬가지지만 감독은 나름의 영민한 대답과 결론을 내린다.
그것이 그동안
만복이 했던 노력과 인내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라고는 생각치 않지만
그녀 스스로 만족했으니 된 거 아닐까.
아직 고교 시절은 조금 더 남아있고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게 뭔지,
하고 싶은게 뭔지 결정할 수 있을 시간은
만복에게 그래도 조금은 더 남아있을 테니까.
언제나 1등만을 강요하고 노력을 조장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윗세대의 어른들에게 소소한 일침을 주는 영화다.
+
이 영화는 코미디가 아닌 드라마라는 장르라서
대놓고 웃기는 씬이 많이 없기에
중간에 감독이 기분전환도 할 겸
장난같은 사운드 트랙을 심어놓았는데
극장에서 나 혼자 정말 미친듯이 웃었다.
요딴 사운드가 영화에 거의 똑같이 첨부되어있다.
무슨 생각인지 감독은 정말 점잖은척 하는 미친놈 같다.
저런류의 영상을 보고 흉내내고 싶다던 신동엽의 패러디도 함께 첨부한다.
++
조연으로 나온, 만복의 짝꿍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지현' 이라는 캐릭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예전 원더걸스의 안소희와 정말 분위기가 비슷함. 연기는 훨씬 잘 하지만)
안경을 써서 기본적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난 안경녀를 사랑한다. 저 차가움, 저 시크함!)
어차피 대한민국에서 이렇다할 재능이 없으면 결국엔
치킨집 아니면 공무원인데
초장에 자신이 갈 길을 소신있게 결정하고 목표를 세워 노력하는 그녀가
별다른 꿈 없이 남들 하는거 안하면 나만 뒤쳐지는 거 같으니까,
부모님이 하라고 하셔서 뭐라도 하는
꿈이 없는 뭇 고교생들보다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