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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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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Nov 19. 2016

보잘 것

당신은 보잘 것 있는 사람인가.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쟤는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을 하는 사람' 이라는 새로운 꼬리표가 생긴다.

제대로 된 직업이 없는 한
'다른 일 하려고 잠깐 그 일 하고있대'
'쟤는 나중에 잘 될거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의 평생 직업이 아니야'
'나는 나중에 다른 일 할 건데 뭐'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라던지
책임감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군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저런 사람을 고용한 오너의 입장에선 아주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얘는 딱 이 정도 돈의 일만 하는 사람' 이라는 인식이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듯이.


모두들 성공성공성공만을 외치고
보다 더 편하고 나은 삶, 돈돈돈, 명예명예명예만을 원한다.

미래가 투명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은 나라이고
부모 잘 둔 것도, 돈도,
'실력' 이라며
느끼지 않아야 할 상대적 박탈감을 초 하이 클래스로 전국민에게 던져주는 여자애도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당신의 부모님이 재벌에 자산가야.
앞으로 3대, 아니 5대는 먹고 살 수 있어.
그럼 그 행운 아닌 행운을 누리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청년층 대부분이 공무원 시험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그 열기는 더욱 거세져, 나날이 합격률이 낮아져만 간단다.

미래성, 장래성이 없는 직업군을 피하기 위해,
노후가 보장되어있고 든든한 연봉을 받으며 살기 위해
하루 세 시간씩 자며 분투하고 있단다.

한창 젊음을 만끽하고 자유롭게 살아가야할 청년들이 말이다.

어찌됐든 젊음은 잠깐이고 한 때의 쾌락으로 인생 전부를 송두리째 망가뜨릴 자신이 없는 청년들은 오늘도 고시원에서 전투적인 하루를 살고 있다.

요즘 내가 인스타그램을 하는데
세상 그렇게 예쁜 여자애들,
잘 생기고 몸 좋은 남자애들이 없다.
열에 아홉은 모델같고
혹은 부모님이 잘 살며
또 혹은 자신이 사업을 해, 돈을 넉넉히 벌고 있다.
심지어 잘난 외모로 준 연예인 생활을 하는 애들도 있다.
때려박은 돈에 비례하는 잘난 스펙으로
남부럽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중요한 건 저 열에 아홉을 뺀 나머지 하나.
그 하나가 대다수의 일반인들 이라는 데에 있다.

세상은 그 하나에 의해 돌아간다.

그 하나에 의해 대통령이 뽑히며
그 하나에 의해 여론이 조성되고
그 하나에 의해 나라가 좌지우지된다.

다른 열에 아홉이 되지 못하는 한,
거기에 특출난 재능이 없는 한,
영화, '4등' 에 나오는 엄마의 말 대로
'인생 꾸리꾸리하게' 살게 된다.

뭘 하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고
무언갈 얻으려면 다른 무언갈 없는 셈 쳐야 하는 삶.
생활에 있어서 기본적인 욕구가 잘 충족되지 않는 삶.
그 충족되지 않는 욕구에 허망해지고 허탈해하고
가슴 속의 무거운 추가 늘 마음 맨 밑바닥에 쿵. 하고 내려 앉는 걸 느끼며 살아야 하는 삶.


그런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오늘도 청춘들은 젊음을 담보로 목숨을 걸고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있다.
(공무원 시험 말고)

기본적으로 문과는 천대받는 나라이기에
낭만, 시적 감성, eq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참혹한 현실에 두 눈을 감고 모든걸 모르쇠로 일관하기엔
기초적인 생활조차 되지 않는 인생.


한 번은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 무슨 일 한다고 창피해서 사람들한테 말도 못 꺼내"

그 말을 듣고 나의 스펙으로 나의 실력으로 부유한 삶을 살고자 하는건 언어도단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한 삶이란 꽤 달콤해서
당장 통장에 생활비를 뺀 나머지 금액이 두배, 세배로 생존해 있을 땐 나도 가끔 사치를 부린다.

씨디를 몇 장 더 산다던가.
장바구니에만 넣어두었던 온라인 서점의 책들을 결제한다던가.
엄마, 아빠와 좀 도 비싼 곳에서 외식을 한다던가.


난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

요즘같은 세상에 자격증 하나 없는 인간이 직업을 가지고 꾸준히 비슷한 계통으로만 벌어먹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결국 랩퍼들이 하고 싶어했던건 효도였다는 가사를 더 콰이엇인가 하는 사람이 쓴 적이 있다.


나도 물론 그렇다(랩퍼는 아니다만).

부모님께 뭔가를 좀 더 해 드리고 싶고
맛있는 음식, 좋은 곳, 매 달 드리는 용돈도 더 많이 드리고 싶다.

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던, 해 왔던,
단 한 번도 그 일을 하면서 '이 일은 참 보잘 것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심지어 공장에서 해외로 수출할 자동차 문짝을 나르던 때도, 호텔에서 24시간 밤을 꼴딱 세워가며 바람난 유부남-유부녀들의 객실 키를 손에 쥐어줄 때도)

적은 연봉을 받는 삶은 보잘 것 없는 삶인가.
그 돈을 쪼개고 쪼개,
생활을 하고
필요한 걸 사고
친구들을 만나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게
보잘 것 없는 삶인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정신을 집중 해 글 하나를 쓴다.
언제나 시간이 되는 대로 부모님을 만나 밥을 먹는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부모님께 용돈을 이체하고 적금을 이체한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어린시절 모았던 만화책을 사러 서점엘 간다.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갖고 싶었던 씨디 몇 장, 읽고 싶었던 책 몇 권을 결제한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음악을 만들고 녹음을 한다.


이게 정말 보잘 것 없는 삶인가.

집안과 환경이 넉넉했다면야
진작에 글만 쓴다고
음악으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그림 그려서 유명한 작가가 될 거라고
될 때 까지 밀어 부쳤을 거다.

하지만 열에 하나에 속해 있는 나는
취미로
소일거리로
심심해서
기본적인 생활이 어느 정도는 보장이 되는 '일' 을 하면서 저것들을 해 가고 있다.

다만 어디 가서 '나 글 쓰오', '나 작가요', '나 파워 블로거요' 하고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다.
(사실 등단은 했음)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의 커리어만 이야기 할 뿐이다.
이제사 눈에 뭔가 좀 들어오고
이제야 약간이나마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게 된 정도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이 연봉에 내 실력에 만족하고 안도하면 안되겠지만
일단은 내 삶에 감사하고 어느정도는 만족해 가며 살고 있다.

물론 현실에 짓이겨져, 꿈도 희망도 포기한 삶을 살아본 적도 있다.
나는 왜 이런 삶을 살고 있을까.
왜 나만 이런 현실에 놓여져 있는 걸까.
자책하며 하루 온 종일을 눈물로 지새운 날도 많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은 없다.
키부터 시작해서 남들보다 뭐든지 다 큰 내 몸과
(당연히 머리도 크다)
태생이 긍정적인 사고방식,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얼굴을 만들어 주신 장본인들이시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섬으로 만들어 현실과의 괴리감에 빠져 허우적 대던 나날들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내가 지금 취미로 하고 있는
모종의 실험들이 그저 그대로,
평생 아무 성취도 못 이룬채 끝나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까, 등단은 했다니께)

당신이 열에 아홉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상
누구나 살아 남으려고 노력은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도,
세상 왜 나만 힘들까 슬퍼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건 언제나 꾸준함을 잃지 않는 식지 않는 열정.
어제 보다 약간이나마 더 나은 오늘을 살고야 말겠다는 마음가짐 이다.


끝으로 더 콰이엇의 'a better tomorrow' 의 인트로 코멘트를 덧붙인다.





절대로
뭐가 어떻게 됐던 간에
나는 내 한계를
믿지 않겠다.
어디가 끝인지
나는 정말로 보고야 말겠다.
라는
어떤 그런 야망-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당신은 보잘 것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
저 신문에 난 내 글을 엄마에게 찍어서 문자 메시지로 보냈었는데
우리 아들 시인이라며 동네방네 자랑을 그렇게 하셨었다고 한다.
매 달 드리는 용돈이 적으신 것 같다.
보내드릴 때만 문자로 고맙다고 하시던데 그 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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