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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Feb 06. 2017

더 킹

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네 나중은 똥망을 싸지르리라.

감정적인 투자는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니까.






정치인이란 말이야, "반드시 당한 것에는 보복을 해야한다."

이게 아주 복잡한 정치엔지니어링의 철학이거든.










네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네 나중은 똥망을 싸지르리라.



나는 영화를 고를 때 소재를 가장 먼저 보고 배우-감독 순으로 보는 편이다.

일단 소재가 마음에 들면 예고편도 보지 않고 바로 예매를 한다.

소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의 이름이 크레딧에 올라와 있으면 또 바로 예매를 한다.



더 킹은 저 세가지 조건 중에서 어느것도 부합되지 않는 영화였다.

일단 뭔가 굵직한 영화임은 분명했고 주연배우들(조인성, 정우성, 배성우) 이나 감독의 커리어 따위 관심도 없었다.

이럴 경우 '그냥 보러가는' 영화가 되기 일쑤인데

확실히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공조' 보다는 그래도 나아보여서 관람했다.



영화의 주 내용은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나게 살고 싶었던 태수는

우여곡절 끝에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을 만나,

핵심 라인을 타고 승승장구 하게된다.


정권이 교체되는 중요한 시기,

새로운 판을 짜며 기회를 노리던 이들 앞에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치는데...



..라고 한다.



다른 어떤 것들 보다 한국 현대사 부터 시작된 정권과 정치,

그 사이에 실질적인 '실세' 로서 대한민국을 통째로 설계하는 검사의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어린시절 부터 마흔의 나이대 까지 30여년을 연기한 조인성의 연기 스펙트럼이 아주 괜찮았다.





(마치 정우성은 공동 주연이 아니라 그저 도움꾼으로 보였을 만큼)



학창시절, 불량한 학생이었지만 결국 나중에 어른이 되서 자신같은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게 되는 건

교실 맨 앞에 앉은, 찌질한 안경잡이들이라는걸 확인하게 된 뒤,

박터지게 공부해서 검사가 되고

이런저런 자잘한 사건들을 맡으며 정의롭게(?) 살아가다가

한 여학생의 안타까운 사연에 분개하고 고군분투하는데

거기서 설계자 한강식(정우성) 을 만난다.


그의 조력 덕분에 대한민국의 꼭대기층까지 올라갔다가

팽당하여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이야기.


전 세대를 아우르는 연기라서 누가 해도 중박은 쳤겠지만

조인성은 스크린에 나오는 내내 훤칠한 키와 시원시원한 마스크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게 조인성이 가진 강점이자 약점이겠지만

조목조목 뜯어보면 워낙 선한 이미지라서

그렇게 한량 스러운 캐릭터도, 절대 악의 이미지도 안어울리기는 하다.



그리고 정우성의 발성은 '아수라' 때와 마찬가지로 절대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이다.





혼자만 후시녹음을 한건지 아님 그의 붐 마이크의 출력만 높인건지 내 알바 아니지만

정말 무슨 대사를 치던

손이 오글거릴 정도로 거북하고 어딘가 이상하다.


정우성은 그냥 대사 없는 눈빛연기만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영화가 현대사 30여년을 다룬 이야기라서

그동안 대한민국을 거쳐간 대통령들이 죽- 열거되는데

특히 서거하신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에피소드가 압권이다.



어느 정당이 한국의 패권을 잡는가에 자신들의 목이 걸려있기에 대선때 마다 고군분투하는 검사들이지만

특히 빽도 줄도 학력조차 안되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땐

감독이 얼마나 그를 좋아하는지 빤히 보이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탄핵 사태 때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웃음 컷도 의도적으로 집어넣은게 보였지만 덕분에 피식했고)



하지만 더 킹은 그렇게 완벽한 영화도 아니다.


곳곳에 함정이 있는데


앞서 얘기한 정우성의 대사 딜리버리가 첫 번째고


마찬가지로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박태수(조인성) 와 그의 친구, 두일(류준열) 의 에피소드.





전형적인 3류 우정 영화의 클리셰를 지겹게 박아넣어서 두일의 그 대사(너는 밝은 쪽에 있으~) 만은

제발 하지 말아주길 빌었는데 아주 닭이 될 뻔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후반부의 엔딩이 참 마음에 안들었다.


절대 선(?) 은 아니라도

정의와 상식, 최대한의 선을 지키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한 남자가

한 순간의 선택으로 승승장구를 한다.

그리고 다시 방출되어 나락으로 떨어진다.

알콜 중독으로 인해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들으며 머릿속에 내내 울려퍼진다.




정치인이란 말야,

'반드시 당한 것에는 보복을 해야 한다.'

이게 아주 복잡한 정치 엔지니어링의 철학이거든.




그 순간부터 태수는 재기와 복수를 꿈꾸며 자신이 삐끗한 순간 이후의 사상 전체를 바꾸지만

영화는 가장 중요한 이 순간에 의식을 잃고 갑자기 쓰러진다.



'이 세상의 왕은 당신이다'


라는 뭔 말같지도 않은 단말마를 남긴채.

(물론 맞는 말이지만 신나게 정치판에서 놀아난 인간 치고는 절대 설득력이 없다, 이 대사는)



앞쪽의 이야기를 조금 덜어내고 후반부도 충실하게 풀어나갔어야 했다.

자신을 나락까지 떨어트린 인간들에게 한 복수치고는 너무 코믹하고 허무하다.

감독이 신나게 영화의 중반까지 찍다가 지쳤는 듯.

안봐도 상관없을 쿠키영상처럼 처리된 한강식(정우성) 과 양동철(배성우) 의 에피소드를 보고 여러 관객이 어이가 없었지만 나 역시 한심해서 코웃음이 나왔다.


감독의 재량이 의심될 정도.

(정말 관상과 연애의 목적, 연애의 온도를 찍은 감독이 맞나 싶었다)




그래도 씬 스틸러들이 너무 많아서 보는 재미는 여러모로 있는 영화다.


특히 안희연 검사역을 맡은 배우 김소진.







한강식을 잡으려고 태수에게 접근하면서 시종일관 깔짝~ 깔짝~ 사투리를 써가며 간보는 모습이

미우면서도 굉장히 매력있었다.

(감독의 말로는 임은정 검사를 모델로 만든 캐릭터라고 한다)


그녀가 이 영화의 진정한 킹일 듯.



그리고 태수의 아내(임상희) 역으로 나온 김아중.





개인적으로 '미녀는 괴로워' 이후로 극혐하는 배우가 됐는데

본작에선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태수에게 아주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특히 선거캠프에서 태수의 손을 잡는게 어찌나 매력있던지)


이런 여자를 만나야 할텐데..


영화 정보도 별로 보지 않고 고른 영화라서 김아중이 나온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는데 정말 깜짝 놀랬다.



마지막으로 태수의 동생(박시연) 으로 나온 정은채.





배역이 배역이라 맡은 역할도 많이 없고 대사도 별로 없지만

그녀가 스크린에 등장하면 멍- 하니 봤다.


연기도 잘하고 예쁘니까.

(정우성이 정은채의 딜리버리를 반의 반의 반의 반만 닮았어도...........)


한동안 정은채의 영화를 다 몰아서 다운 받아볼 듯.




나머지

 김의성이나 고아라 정도는 애교지 뭐.








끝으로

결말만 잘 짓고 정우성만 없었다면 괜찮았을 영화가 될 뻔했다.

(그러고보면 명 대사도 별로 없군)











+

이 영화에도 최근까지 내가 머릿속에 저장해 두고 되뇌던

'만약은 없다' 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 번 사는 인생

떳떳하고 충실하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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